한국사사진자료실/조선737 [조선후기/문화예술] 규장각도 규장각도 ★ 규장각도(奎章閣圖) : 정조가 창설한 규장각을 그린 그림으로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규장각(奎章閣) : 조선 후기의 왕실 학문 연구 기관이자 왕실 도서관.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顧命) ․ 유교(遺敎) ․ 선보(璿譜) 등을 보관하고 수집하였다. 정조 때 규장각을 설치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문치주의와 문화국가를 추구하였으며 탕평책을 비롯한 각종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였다. 2019. 11. 2. [조선후기/인물/왕] 정조(正祖) 정조(正祖) ★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 : 조선 제22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생부 사도세자(장조)가 임오화변으로 죽은 뒤 요절한 효장 세자(영조의 장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 조선의 중흥을 이룬 왕으로 평가받는다. 2019. 11. 1. [조선후기/인물/왕] 영조(英祖) 영조(英祖) ★ 영조(英祖, 1694~177, 재위 1724~1776) : 조선의 21대 왕. 붕당 정치를 억제하는 탕평책, 악형 폐지, 서적 간행 등의 개혁 정책을 펼쳤다. 정조와 더불어 조선의 중흥을 이끈 왕으로 평가받는다. 2019. 11. 1. [조선후기/정치] 탕평채(蕩平菜) 탕평채(蕩平菜) ★ 탕평채(蕩平菜) : 한국의 궁중요리의 하나. 영조는 탕평책을 수립하고 붕당의 과도한 대립과 정쟁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탕평책의 경륜을 펼치는 자리에서 올린 음식이 탕평채이다. 탕평채 재료의 4가지 색(흰색,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은 각 당파를 상징하며 여러 재료가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것을 탕평책의 상징으로 삼았다. 2019. 11. 1. [조선후기/정치] 탕평비(蕩平碑) 탕평비(蕩平碑) ★ 탕평비(蕩平碑) : 조선 영조 때 탕평책을 수립하고 세운 비석으로 성균관 입구에 건립하였다(1742, 영조 18). 현재 성균관 대학교 내에 보관되어 있다.★ 탕평책(蕩平策) : 조선 영조가 당파 싸움을 막기 위해 당파간의 세력 균형을 위해 추진한 정책. 왕권을 강화하고 붕당 세력을 억제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후대인 정조 대에도 이어졌다. 2019. 11. 1. [조선/경제와 산업] 장시(場市) 장시(場市) ★ 장시(場市) : 조선시대에 정기적으로 개설된 시장으로 조선 태조가 한성에 천도한 후부터 본격화되었다. 한양(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장시가 열렸다. 정부에서는 장시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겼고, 또한 농본억상적(農本抑商的)인 사상도 작용하여 장시를 금지하려 하였으나, 지방의 여러 소도시에서는 정기적인 장시가 개설되어 지역마다 하나의 교역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상품화페 경제가 발달하면서 장시는 더욱 발달하였다. 2019. 10. 31. [조선후기/농업] 농종법과 견종법(골뿌림법) 농종법과 견종법(골뿌림법) ★ 농종법(壟種法) : 이랑(두둑)을 만들고 그 위에 씨를 뿌리는 파종법 ★ 골뿌림법(견종법) : 조선 후기부터 보급된 농사법으로 밭두둑을 높이 만들어 고랑에 씨를 뿌리는 농사법. 바람에 싹을 보호하고 수분과 거름의 흡수율이 높고 잡초 제거가 쉽다. 2019. 10. 31. [조선후기/농업] 모내기(이앙법) 모내기(이앙법) ★ 모내기(이앙법移秧法) : 모판(못자리)에서 싹을 틔운 모를 논에 심는 농작법. 고려시대부터 시행되었으나, 가뭄으로 농사를 망칠 수 있어 조선 초기에는 금지하였다. 양란 이후 숙종 때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되며 보급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널리 보급되었다. 2019. 10. 31. [조선/대외관계]안용복(安龍福) 안용복(安龍福) ★ 안용복(安龍福, ?~?) : 조선(17세기)의 어부이자 능로군(能櫓軍, 노젓는 병사). 어민들과 울릉도에 고기잡이를 나섰다가 일본인 어부에 납치되었으며(1693, 숙종 19), 호키국(돗토리현의 영지) 번주에게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鬱陵島非日本界)”라는 내용의 서계.. 2019. 10. 30. [조선중기/인물]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 서울 어린이 대공원 네덜란드 알크마르 ★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 ; Jan Jansz Weltevree)(1595~?) : 네덜란드 인으로 인조 4년(1627) 제주도에 표착한 뒤 관헌에 붙잡혀 한양으로 호송되었다. 이후 후년도감에서 일하며 총포 제작을 지도하였다. 유럽인 최초로 조선에 귀화하여 조선 여인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으며, 병자호란에 참여하였다. 서울 어린이 대공원과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 알크마르에 동상을 세웠다. 2019. 10. 30. [조선중기/인물] 허준(許浚) 허준(許浚) ★ 허준(許浚, 1539~1615) : 조선 중기의 의관 · 의학자.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임진왜란 종결 후, 각종 중국 의서와 기존 의서의 복원, 편찬 및 정리에 힘썼다. 2019. 10. 30. [조선중기/병자호란] 청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영화 '최종병기 활' 中) 청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 영화 '최종병기 활' 中 한 장면 ★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의 숭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다(1636년 12월).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1637년 2월). 인조는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하였다(삼전도의 굴욕). 동아시아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전쟁 포로로 수십 만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막심하였다. 2019. 10. 29. [조선/병자호란]병자호란창의록(丙子胡亂倡義錄) 병자호란창의록 (丙子胡亂倡義錄) ★ 병자호란창의록(丙子胡亂倡義錄) : 병자호란 때(1636) 호남의 의사들이 의거한 사적을 기록한 역사서.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10. 29. [조선중기/임진왜란] 칠백의총(七百義塚) 칠백의총(七百義塚) ★ 칠백의총(七百義塚) :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 조헌, 영규 대사를 비롯한 700여 명의 의사가 묻힌 묘역.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소재, 대한민국의 사적 제105호. 2019. 10. 29. [조선중기/임진왜란] 곽재우 곽재우 ★ 곽재우(郭再祐, 1552~1617) :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왜군에게 전멸당하자, 당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스스로 의병을 조직하여 붉은 비단으로 된 갑옷을 입고 활동하여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백성들은 그를 ‘홍의장군’이라 불렀다. 여러번 승리한 공로로 찰방, 조방장 등을 지낸뒤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김덕령 등의 의병장이 무고로 희생되는 것과 영창대군의 죽음을 보고 은퇴하고 낙향하였다. 2019. 10. 28. [조선중기/임진왜란] 쇄미록(瑣尾錄) 쇄미록(瑣尾錄) ★ 쇄미록(瑣尾錄) : 보물 제 1096호.조선시대 학자 오희문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일기로 피란일기, 오희문 쇄미록(吳希文瑣尾錄)이라고도 한다. 2019. 10. 28. [조선중기/임진왜란] 난중일기 난중일기 ★ 난중일기(亂中日記) :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7년(1592~1598) 동안 군중에서 쓴 일기. 임진왜란이 발발부터 노량해전(1598)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 까지 2,539일간의 군중에서의 생활과 전란의 정세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적었다. 국보 제 76호.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2019. 10. 28. [조선/유적] 남한산성 남한산성 ★ 남한산성(南漢山城) :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백제의 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증축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이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0여일간 항전하다 항복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사적 제 57호.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대한민국 경기도 남한산 소재. 2019. 10. 28. [조선중기/병자호란] 삼전도비(三田渡碑) 삼전도비(三田渡碑) ★ 삼전도비(三田渡碑) : 병자호란 때 승리한 숭덕제가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다. 조선이 청나라의 신하국이 되어 조공을 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이다.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사적 제 101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소재47번지(당시 경기도 삼전도). 2019. 10. 27. [조선중기/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삼전도의 굴욕 ★ 삼전도의 굴욕(三田渡의 屈辱) :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가 농성 59일만에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숭덕제)에게 항복하고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행한 것(1637년 2월 24일, 정축년 음력 1월 30일). 조선의 실록에는 정축하성(丁丑下城 : 정축년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다)라고 짧게 기록해 놓았다. 2019. 10. 27.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3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