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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3567

[조선후기/건축] 화홍문(수원화성) 화홍문(수원화성)  ★ 화홍문(수원화성) : 대천(大川)이 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북수문을 내고 그 위에 세운 누각. 북수문은 7칸짜리 홍예문으로 만들었다. 2024. 12. 9.
[조선후기/건축] 포루(수원화성) 포루(수원화성)  ★ 포루(수원화성) : 골출시킨 성벽의 내부에서 적을 공격하도록 한 군사 시설물. 각 층에 군사가 머물고 3층에서는 불랑기포를 쏠 수 있다. 2024. 12. 8.
[조선후기/건축] 서남암문(수원화성) 서남암문(수원화성) ★ 서남암문(수원화성) : 적들을 알지 못하나 평상시에는 백성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용도’라는 화양루의 매복로와 연결된다. 2024. 12. 7.
동북공심돈(수원화성) 동북공심돈(수원화성)  ★ 동북공심돈(수원화성) : 적을 살피는 척후시설로 화성에만 있는 시설물. 3층을 잇는 나선형 구조로 ‘소라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24. 12. 6.
[조선후기/건축] 봉돈(수원화성) 봉돈(수원화성)  ★ 봉돈(수원화성) : 봉화 연기를 피우는 돈대. 보통 때는 남쪽의 한 굴뚝에서만, 위급할 때에는 다섯 굴뚝 모두에서 연기를 피웠다. 2024. 12. 5.
[조선후기/건축] 팔달문(八達門) 팔달문(八達門)  ★ 팔달문(八達門) : 화성의 남문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이 많이 오갔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추었으며,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2013년 해체・수리하였다. 보물 제 402호. 2024. 11. 21.
[조선후기/인물/실학자] 최한기 최한기  ★ 최한기(崔漢綺, 1803~1879)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지리학자, 철학자, 사상가, 저술가이다. 기 철학론과 기 우위론을 제창하였고, 김정호 등과 함께 지도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2024. 11. 17.
[삼국문화의일본전파/고구려] 강서대묘와 다카마쓰 고분의 사신도(청룡) 강서대묘와 다카마쓰 고분의 사신도(청룡)   ★ 사신도(四神圖) :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함께 그린 그림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많이 나타난다. 무덤의 사방을 수호하는 영물(靈物)로서 많이 그렸으며, 도교(道敎)의 영향을 보여준다. 쌍영총의 창룡도(蒼龍圖)와 강서대묘의 사신도가 가장 우수하고 유명하다.  ★ 강서대묘(江西大墓) : 북한의 남포특별시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의 벽화 고분으로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이다(기저 지름 약 51.6m, 높이 8.86m). 외방 구조의 굴식 돌방 무덤으로 모줄임천정이다. 널방에 벽에 사신도(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다. 축조 시기는 7세기로 추정한다. ★ 다카마쓰 고분(高松塚古墳) : 일본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촌에 위치한 고분으로 7세.. 2024. 10. 26.
[삼국의대외교류] 아프랍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인 아프랍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인 ★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Afrasiab Painting) : 1965년 우즈베키스탄의 옛 사마르칸트 지역에서 발굴된 스키타이-소그드의 대표적인 예술 유적으로, 7세기 중반의 것으로 추정한다. 서쪽 벽화의 중앙 부분에서 고구려인 두 명이 발견되었다. 고구려 특유의 복식인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찬 모습이다. 2024. 10. 25.
[삼국문화의일본전파/신라] 신라와 일본의 금동가위 신라와 일본의 금동가위  동궁과 월지(안압지)의 금동가위(왼쪽)일본 쇼쇼인의 금동가위(오른쪽) 2024. 10. 23.
[청동기시대] 한국과 일본의 교류(손잡이 달린 항아리) 한국과 일본의 교류(손잡이 달린 항아리)  경기도 수석리 유적 출토 손잡이 달린 항아리(왼쪽)일본 사가현 스치우 유적 출토 손잡이 달린 항아리(오른쪽) 2024. 10. 22.
[고려] 개경의 궁궐 배치 추정도 개경의 궁궐 배치 추정도 2024. 10. 21.
[삼국문화의일본전파/백제] 백제의 청동거울과 일본의 청동거울 백제의 청동거울과 일본의 청동거울  공주 무령왕릉 출토 청동거울(의자손수대경, 6세기전반)(왼쪽)일본 간논야마 고분 출토 청동거울(6세기 후반)(오른쪽) 2024. 10. 21.
[조선중기/인물] 강홍립 강홍립 후금-명 전쟁에 참전한 강홍립과 조선군 후금에 항복하는 강홍립과 조선군 ★ 강홍립(姜弘立, 1560~1627) : 조선의 문관, 군인. 광해군 때 명나라에 지원병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후금(청나라)의 교전을 피하다가 투항했다. 출전 전에 추금에 투항하라는 광해군의 밀지를 받고 참전하였으며,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성사시켰다. 인조반정(1623)으로 광혜군이 폐위되고, 이괄의 난(1624)을 주도했던 한윤과 한택 형제가 후금에 투항하여 강홍립 휘하로 들어가 정묘호란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정묘호란(1627) 때 막후에서 외교수완을 발휘하여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 데 일조하였다. 정묘호란 중에 병사하였으며(1627) 묘는 서울시 관안구 난향동에 있다. 2024. 10. 21.
[삼국문화의일본전파/신라] 신라의 금관과 일본의 금동관 신라의 금관과 일본의 금동관  ★ 왼쪽부터 황남대총 북분 금관,  경상북도 상주 출토 금동관, 일본 군마현 긴칸즈카 고분 출토 금동관 2024. 10. 20.
[삼국문화의일본전파/고구려] 법륭사(호류지) 금당 벽화 법륭사(호류지) 금당 벽화   ★ 법륭사 금당 벽화 (法隆寺 金堂 壁畵) : 고구려의 승려 담징(曇徵)이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는 벽화. 금당 벽에는 석가정토·아미타정토·약사정토·미륵정토와 여러 보살도 등이 그려져 있다. 벽화는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등 다양한 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사방불 사상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한국계 화가의 참여 가능성도 높으며, 고구려의 담징이 그렸다고 구전되는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알 수 있다. ★ 담징(曇徵, 579~631) :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이다. 오경(五經)과 채화(彩畵)에 능하였다. 영양왕 때(614)에 일본에 가서 오경 · 채화 · 공예를 가르치고 종이 · 먹 · 칠 · 맷돌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일본 법.. 2024. 10. 17.
[삼국문화의일본전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고류지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고류지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왼쪽)과 고류지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오른쪽)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일제 때 밀반출되어 출토지가 불분명하다. 삼국 시대 불상 중에서 대표적인 예로서 조형적으로 매우 우수한 작품으로, 6~7세기 동양 불교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일본 교토시 고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해 삼국과 한반도의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83호.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고류지(広隆寺)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木彫彌勒菩薩半跏思惟像) : 일본 고류지(광륭사)에 있는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일본의 국보 1호이다... 2024. 10. 16.
[삼국시대/가야] 가야연맹의 멸망 가야연맹의 멸망 ★ 가야연맹의 멸망 : 4세기말, 고구려의 침입으로 금관가야가 쇠락해져 가야연맹은 한동안 혼란스러웠으나, 5세기 후반, 내륙(고령)의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주도권을 잡고 후기가야연맹을 형성하였다. 대가야는 낙동강과 김해만 대신 섬진강 유역을 장악하고 새로운 무역항으로 이용하였으며, 삼국과 왜, 중국의 남제에도 사신을 보내었다(479). 그러나,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가야연맹의 소국들이 멸망해갔으며, 532년 금관가야에 신라에 항복하여 멸망하고 562년 대가야마저 신라에 정복되어 멸망하여, 가야연맹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24. 10. 13.
[삼국시대/가야/철기] 철제 찰갑으로 무장한 가야 무사(복원) 철제 찰갑으로 무장한 가야 무사(복원)  ★ 찰갑(札甲, lamellar armour) : 미늘 갑옷이라고도 한다. 금속, 뼈, 가죽 등으로 만든 작은 미늘(小札) 조각들을 이어붙여서 만든 갑옷.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찰갑을 사용하였으나,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4세기 경 철제 판갑을 이용하다가 5세기 초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뒤부터 점차 찰갑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찰갑은 일본으로도 전래되었다. 2024. 10. 5.
[삼국시대/가야/고분]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高靈 池山洞 三十二號墳 出土 金銅冠) : 5세기 대가야에서 제작한 금동관이다. 얇은 동판을 두드려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도금하였다. 중앙의 넓적한 판 위에 X자형의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매우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며, 신라 및 백제의 관모(冠帽)에 비해 고유성이 강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한민국의 보물 제2018호. 2024.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