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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2320

[조선후기/사상과학문] 실학(實學) 실학(實學) ★ 실학(實學) :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대두된 일련의 현실개혁적 조선 유학의 학풍. 성리학이 관념적인 것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을 비판하며 양반 사대부 중심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근대 이후 실학은 개화 사상으로 계승되었다. 2019. 11. 6.
[조선후기/사상과학문/실학] 북학파(北學派) 북학파(北學派)  ★ 북학파(北學派) : 조선 후기 실학의 한 유파로 중상학파라고도 한하여 이들의 사상은 이용후생(利用厚生)으로 요약된다. 상업의 발전의 중요성과 청과의 교역 확대 등을 주장하였다. 상공업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상품의 유통과 생산수단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 11. 6.
[조선후기/인물/실학자] 정약용(丁若鏞) 정약용(丁若鏞)  ★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중농학파(경세치용학파) 실학자로 실학을 집대성하였으며, 거중기를 만드는 등 과학에도 뛰어났다. 토지를 공동 소유하고 이를 공동경작, 공동 분배하자는 여전론을 주장하였다. 2019. 11. 6.
[조선후기/대외관계] 연행사(燕行使) 연행사(燕行使)   ★ 연행사(燕行使) : 조선이 청나라에 보낸 사신(使臣) 및 사절단. 청의 도읍인 연경(燕京, 베이징)에 가는 사신을 의미하며, 1637년(인조 15년)부터 1893년(고종 30년)까지 256년에 걸쳐 총 507회 파견되었다. 2019. 11. 5.
[조선/대외관계]조선시대 연행로 조선시대 연행로 ★ 연행사(燕行使) : 조선이 청나라에 보낸 사신(使臣) 및 사절단. 청의 도읍인 연경(燕京, 베이징)에 가는 사신을 의미하며, 1637년(인조 15년)부터 1893년(고종 30년)까지 256년에 걸쳐 총 507회 파견되었다.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11. 5.
[조선/대외관계]조선 통신사의 길 조선 통신사의 길 ★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 일반적으로 개화기 이전까지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으로 통신사라고도 부른다.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11. 5.
[조선/대외관계] 조선 통신사 조선 통신사    ★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 개화기 이전까지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으로 통신사라고도 부른다. 2019. 11. 5.
[조선/대외관계] 조선 통신사 환대도 조선 통신사 환대도 ★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 일반적으로 개화기 이전까지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으로 통신사라고도 부른다. 2019. 11. 5.
[조선중후기/사회] 공명첩(空名帖) 공명첩(空名帖)  ★ 공명첩(空名帖) : 임진왜란 때 시작하여 조선 중 ․ 후기에 나라의 재정을 보충하려고 부유층으로부터 돈이나 곡식을 받고 팔았던 허직(명예직) 임명장(벼슬 문서). 벼슬을 내리는 공명고신첩(空名告身帖), 천인을 양인이 되게 하는 공명면천첩(空名免賤帖, 노비면천첩), 향리에게 역을 면제하는 공명면향첩(空名免鄕帖) 등이 있었다.  공명첩 판매는 조선 후기 신분질서 해체에 일조하였다. 2019. 11. 4.
[조선후기/대외관계] 백두산정계비 백두산 정계비 백두산 정계비    백두산 정계비의 자리에 세워진 백비(白碑)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 1712년(숙종 38, 강희 51)에 청 제국과 조선국의 백두산 일대 국경을 정하기 위하여 세워진 경계표지물로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남동쪽으로 약 4 km 떨어진 곳에 세웠다. 비문에는 “(중략) … 이곳에 이르러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므로, 분수령 상에 돌에 새겨 명기한다.”고 새겼다. 19세기 후반에는 비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간도 귀속 문제가 불거졌으며, 1909년 일본과 청국의 간도협약으로 간도 일대는 중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 비는 1931년 사라졌는데, 일본군이 철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9. 11. 4.
[조선후기/건축]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 ★ 화서문(華西門) : 화성의 서문.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홍예 위에 1층 문루와 팔작지붕을 세웠으며, 흥인지문(동대문)처럼 한쪽모서리가 열린 옹성을 둘러세웠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주며. 창룡문처럼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 감독관과 우두머리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화서문 북쪽 모서리에 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렸으며, 외벽에는 .. 2019. 11. 3.
[조선후기/건축] 장안문(長安門) 장안문(長安門)   ★ 장안문(長安門) : 수원 화성의 북문.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 양식의 2층 문루가 있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한국 전쟁 때 파괴되어 1975년 복원하였다. 2019. 11. 3.
[조선후기/건축] 창룡문(蒼龍門) 창룡문(蒼龍門) ★ 창룡문(蒼龍門) : 화성의 동문. 창(蒼)은 푸른색을 뜻하므로 ‘동쪽을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한다.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럽게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 역할을 한다. 문 안쪽의 넓은 공터는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홍예 위에 1층 문루를 세우고 팔작지붕이다. 옹성은 서울의 흥인지문(동대문)처럼 한쪽 모서리를 열어둔 형태다. 옹성 안 석축에는 당시의 공사 감독관과 석공 우두머리 이름을 새긴 실명판이 남아 있다. 한국 전쟁 때 문루가 파괴되어 1976년에 복원했다. 2019. 11. 3.
[조선/과학기술] 거중기 거중기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거중기 설계도  거중기 복원 모형 ★ 거중기(擧重器) :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사용된 복합 도르래. 정약용이 고안하였으며 화성성역의궤에 설계도가 실려 있다. 2019. 11. 3.
[조선후기/문화예술] 규장각도 규장각도 ★ 규장각도(奎章閣圖) : 정조가 창설한 규장각을 그린 그림으로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규장각(奎章閣) : 조선 후기의 왕실 학문 연구 기관이자 왕실 도서관.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顧命) ․ 유교(遺敎) ․ 선보(璿譜) 등을 보관하고 수집하였다. 정조 때 규장각을 설치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문치주의와 문화국가를 추구하였으며 탕평책을 비롯한 각종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였다. 2019. 11. 2.
[조선후기/정치] 탕평비(蕩平碑) 탕평비(蕩平碑) ★ 탕평비(蕩平碑) : 조선 영조 때 탕평책을 수립하고 세운 비석으로 성균관 입구에 건립하였다(1742, 영조 18). 현재 성균관 대학교 내에 보관되어 있다.★ 탕평책(蕩平策) : 조선 영조가 당파 싸움을 막기 위해 당파간의 세력 균형을 위해 추진한 정책. 왕권을 강화하고 붕당 세력을 억제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후대인 정조 대에도 이어졌다. 2019. 11. 1.
[조선후기/정치] 탕평채(蕩平菜) 탕평채(蕩平菜)  ★ 탕평채(蕩平菜) : 한국의 궁중요리의 하나. 영조는 탕평책을 수립하고 붕당의 과도한 대립과 정쟁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탕평책의 경륜을 펼치는 자리에서 올린 음식이 탕평채이다. 탕평채 재료의 4가지 색(흰색,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은 각 당파를 상징하며 여러 재료가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것을 탕평책의 상징으로 삼았다. 2019. 11. 1.
[조선후기/인물/왕] 영조(英祖) 영조(英祖)  ★ 영조(英祖, 1694~177, 재위 1724~1776) : 조선의 21대 왕. 붕당 정치를 억제하는 탕평책, 악형 폐지, 서적 간행 등의 개혁 정책을 펼쳤다. 정조와 더불어 조선의 중흥을 이끈 왕으로 평가받는다. 2019. 11. 1.
[조선후기/인물/왕] 정조(正祖) 정조(正祖) ★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 : 조선 제22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생부 사도세자(장조)가 임오화변으로 죽은 뒤 요절한 효장 세자(영조의 장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 조선의 중흥을 이룬 왕으로 평가받는다. 2019. 11. 1.
[조선후기/농업] 모내기(이앙법) 모내기(이앙법)     ★ 모내기(이앙법移秧法) : 모판(못자리)에서 싹을 틔운 모를 논에 심는 농작법. 고려시대부터 시행되었으나, 가뭄으로 농사를 망칠 수 있어 조선 초기에는 금지하였다. 양란 이후 숙종 때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되며 보급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널리 보급되었다. 2019.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