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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근대513

[개화기/유물유적]독립문 독립문 ★ 독립문(獨立門) : 조선 후기의 건축물. 1896년 11월에 착공되어 1897년에 완공되었다.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이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영은문을 무너뜨리고 그 터에 지은 문. 독립문 전면에는 영은문이 서 있던 기둥돌이 함께 남아 있다. 서재필의 주도로 건립되었으며, 서재필의 원작을 배경으로 아파나시 세레딘 사바틴(Середин-Cабатин)이 설계하고 심의석이 시공 감독하였다. 현판은 김가진의 작품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2020. 8. 1.
[근대/유적유물]옛 러시아 공사관 옛 러시아 공사관 ★ 옛 러시아 공사관 : 개화기 러시아 공사관 건물.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 준공되었다. 서울 4대문 안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동의 고지대에 있었으며, 당시 미국과 유럽 각국의 공사관보다 규모가 컸다. 6.25 전쟁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고, 현재는 외벽 일부와 3층 전망탑만 남아 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고종과 순종이 이곳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1897)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적 제 253호. 2020. 7. 29.
[개화기/정변및사건]아관파천 당시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일본의 시위 아관파천 중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일본의 시위 아관파천 중 러시아가 조선의 이권을 독차지하자 일본은 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고종을 환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아관파천(俄館播遷) :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 2020. 7. 29.
[개화기/정변및사건]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의 방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의 방 ★ 아관파천(俄館播遷) :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 2020. 7. 29.
[개화기/정변및사건]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과 대신들(아관파천)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과 대신들 (아관파천) ★ 아관파천(俄館播遷) :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 2020. 7. 28.
[근대/열강의침략]거문도 사건 당시의 섬 주민과 영국인 거문도 사건 당시의 섬 주민과 영국인 ★ 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 : 고종 2년(1885) 영국이 러시아 견제를 위해 조선의 전라도에 있는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 사건. 청의 중재로 영국 함대는 1887년(고종 24년) 거문도에서 철수했다. 2020. 7. 28.
[근대/항일의병운동] 문석봉 문석봉 ★ 문석봉(文錫鳳, 1851~1896) : 개항기 경복궁 오위장, 공주부 진잠 등을 역임한 의병장. 갑오개혁(1894) 이후 변복령과 단발령 등 제도 개편에 반대하고 항일의병을 일으켰으며, 을미사변 직후에도 의병을 일으켰다. 2020. 7. 28.
[근대/항일의병운동] 을미의병 기념탑 을미의병 기념탑 ★ 을미의병(乙未義兵) : 1895년에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에 의해 암살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유생들이 임금을 위하여 힘쓰고 임금을 위한 의리를 주장한다는 근왕창의(勤王倡義)를 내걸고 친일 내각의 타도와 일본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항일 의병. 1896년 3월 이후 의병활동은 점차 누그러지고, 1896년 5월 24일 고종의 해산 칙유문(勅諭文) 발표로 을미의진은 대부분 해산했으나 경북 지역의 의병들은 서로 연합하여 8월까지 활동하였다. 2020. 7. 27.
[근대/항일의병운동] 을미의병 을미의병 ★ 을미의병(乙未義兵) : 1895년에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에 의해 암살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한 유생들이 임금을 위하여 힘쓰고 임금을 위한 의리를 주장한다는 근왕창의(勤王倡義)를 내걸고 친일 내각의 타도와 일본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항일 의병. 1896년 3월 이후 의병활동은 점차 누그러지고, 1896년 5월 24일 고종의 해산 칙유문(勅諭文) 발표로 을미의진은 대부분 해산했으나 경북 지역의 의병들은 서로 연합하여 8월까지 활동하였다. 2020. 7. 27.
[근대/정변및사건] 단발령 칙령 단발령 칙령 ★ 단발령(斷髮令) : 김홍집 내각이 고종 32년(1895)에 공포한 을미개혁안 중 하나로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내용의 고종의 칙령. 유학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1897년(건양 2년) 일단 철회되었으나, 1900년(광무 4년) 이후 다시 부활하여 전국적으로 단행되었다. 2020. 7. 27.
[근대/정변및사건] 단발령 단발령 ★ 단발령(斷髮令) : 김홍집 내각이 고종 32년(1895)에 공포한 을미개혁안 중 하나로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내용의 고종의 칙령. 유학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1897년(건양 2년) 일단 철회되었으나, 1900년(광무 4년) 이후 다시 부활하여 전국적으로 단행되었다. 2020. 7. 26.
[개화기/열강의침략]명성황후 장례 행렬 명성황후 장례 행렬 ★ 명성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1895)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 고종의 정비로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하고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다. 임오군란 일본 견제를 위해 청의 지원에 의존하였으나 청일전쟁 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했다. 처음에는 개항에 미온적이었으나, 점진적인 개화시책을 통해 친일 성향을 띤 급진 개화파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과 주조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공모에 의해 일본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다(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사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2020. 7. 26.
[근대/대한제국및황실]명성황후 영정 명성황후 영정 ★ 명성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1895)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 고종의 정비로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하고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다. 임오군란 일본 견제를 위해 청의 지원에 의존하였으나 청일전쟁 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했다. 처음에는 개항에 미온적이었으나, 점진적인 개화시책을 통해 친일 성향을 띤 급진 개화파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과 주조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공모에 의해 일본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다(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사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2020. 7. 25.
[근대/정변및사건] 을미사변 을미사변 ★ 을미사변(乙未事變) :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가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휘 아래 일본군 한성 수비대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 등에게 암살된 사건. 2020. 7. 25.
[개화기/정치행정]군국기무처 군국기무처 ★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 1894년 1차 갑오개혁 때 만들어진 관청으로 여러 가지 개혁안을 추진하였다. 2020. 7. 25.
[개화기/열강의침략]청일 전쟁 풍자화 청일 전쟁 풍자화 ★ 청일 전쟁(淸日戰爭) :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인 전쟁. 전쟁은 일본이 승리하였고 청 ․ 일 양국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일본은 더욱 노골적으로 조선 침략을 추진하였다. 또한, 일본에 배상금 2억 냥(兩)을 지불하였고, 랴오둥 반도·타이완, 펑후 제도 등을 할양 및 일본에 할양 및 통상상의 특권을 부여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24.
[근대/정변및사건] 사발통문 사발통문 ★ 사발통문(沙鉢通文) : 어떤 일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 이름을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삥 돌려 적어, 같은 뜻을 가진 다른 사람을 모으기 위해 널리 알리는 문서. 조선 후기에 주로 쓰였으며, 정치적 행동을 조직하는 데 자주 활용되자, 조선 정부는 임오군란이 일어난 뒤부터는 사발통문을 돌리기만 해도 역모로 처벌했다. 특히 동학 농민 운동 때 동학군들이 사용하였던 통문이 유명하다. 1893년 11월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현재 정읍군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 등 20명이 모여 고부 농민 항쟁을 계획하고 그 결의를 서명하여 각 리의 집강에게 돌렸는데, 1968년 12월 세상에 공개되면서 고부농민항쟁이 혁명적 거사 계획에서 치밀하게 진행되었음을 알려주게 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 2020. 7. 24.
[근대/정변및사건] 우금치 전투에 패해 체포된 농민군 우금치 전투에 패해 체포된 농민군 ★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 : 동학 농민 운동 때 일어난 대전투로 이 전투에서 농민군이 결정적으로 패배하여 농민군 해산과 진압의 원인이 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24.
[개화기/정변및사건]체포된 전봉준 체포된 전봉준 ★ 전봉준(全琫準, 1855~1895) : 조선의 농민 운동가이자 동학의 종교 지도자, 동학 농민 운동 당시의 남접의 지도자. 녹두장군(綠豆將軍)으로 불리기도 했다. 1894년 2월 탐관오리 고부 군수 조병갑을 몰아내고 1차 봉기를 주도하였으나 조정의 회유책으로 해산했다가, 3월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李容泰)가 동학 농민군과 농민을 처단하자 다시 봉기를 일으켰다. 옛 부하의 밀고로 체포되어 1895년 4월 처형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23.
[근대/정변및사건] 집강소 집강소 ★ 집강소(執綱所) : 전주 화약 이후 동학 농민군이 전라도 일대에 조직한 농민 자치 조직.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뒤 난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나라와 일본군의 철병을 원한 조선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후 호남 지방 각 군현에 설치하여 중요한 재판이 있을 때 농민들이 참여할수있는 농민 자치 기구이자 개혁 기구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