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삼굴 狡免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해 놓아야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는, 난세의 현명한 처세술을 뜻하기도 한다.
도망갈 구멍을 파 놓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인가...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제나라(齊)의 명재상 맹상군(孟嘗君)은 식객을 후하게 대접하기로 유명해서 그의 집에는 식객 수천명이 있었다. 그 증 풍환이라는 식객이 있었는데, 그는 1년 동안 놀고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맹상군은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맹상군은 매우 부유했지만 그의 집에 눌러 앉아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돈이 부족했다. 맹상군은 영지(領地) 설(薛) 지역의 백성들에게 돈과 양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비용을 충당했다. 마침 원금과 이자를 받아야 할 때가 되자 풍환이 돈을 받아오겠다고 나서자 맹상군을 그를 보냈다.
풍환은 설 땅에 도착하자마자 맹상군에게 빚은 진 사람들은 불러보았다. 차용증을 모두 확인한 뒤 갚은 여력이 있는 사람은 날자를 연기해 주고 가난한 사람의 빚은 차용증을 태워 탕감해주었다. 설 땅의 백성들은 모두 맹상군의 덕을 칭송했다. 풍환이 돌아와 이일을 고하자 맹상군을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러나 풍환은 당당하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빚을 갚고 싶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빚 독촉을 해 보았자 도망치거나 나으리에 대한 원성만 높아질 뿐입니다. 차용증서를 태워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니 돈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훗날, 이 일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네 말이 옳네.”
맹상군은 풍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맹상군의 명성이 높아가자 제나라의 민왕은 그를 시기하여 맹상군은 재상직에서 물러났다. 수천명의 식객들은 맹상군이 권력을 잃자 모두 떠나고, 왁자지껄하던 집안에는 고요만이 맴돌았다. 그러나, 풍환만은 맹상군의 곁에 남아 영지인 설 땅까지 함게 갔다. 설 지역의 백성들은 맹상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맹상군은 풍환의 행동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맹상군이 그를 치하하자 풍환은 이렇게 대답했다
“교활한 토끼는 굴 셋을 파 놓는 법(교토삼굴, 狡免三窟)입니다. 이제 겨우 굴 하나를 팠을 뿐입니다. 나머지 굴 두 개를 파 드리겠습니다.”
맹상군을 풍환의 청한대로 수레에 진귀한 보물은 잔뜩 실어 진나라로 보냈다. 풍환은 진나라 왕을 만나 화려한 언변으로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라고 설득했다.
“제나라가 진나라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은 훌륭한 재상인 맹상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맹상군은 제나라 민왕의 미움을 사 재상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맹상군을 진나라의 재상으로 삼으신다면 진나라는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팽환의 설득에 넘어가 맹상군을 재상으로 임명하겠다고 마음먹고 수레에 황금과 예물을 잔뜩 실러 맹상군에게 보냈다.
진나라 왕을 구워삶은 팽환은 제나라 민왕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아뢰었다.
“지금 여러 나라는 패자가 되기 위해 천하의 인재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 진나라에서 맹상군이 재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금와 보물을 보내 그를 데려가려 합니다. 맹상군처럼 뛰어난 인재를 진나라에 빼앗긴다면 제나라는 큰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팽환의 말을 들은 민왕은 맹상군에게 사과하고 다시 재상으로 삼았으며 1천호의 봉읍을 더 내렸다.
맹상군은 팽환에게 깊이 감사했으며 그를 무한히 신뢰했다. 맹상군의 권력을 되찾자 그의 집은 다시 식객으로 들끓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팽환은 맹상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번 째 굴을 뚫었으니 이제 마지막 굴을 파겠습니다.”
팽환은 민왕을 구워삶아 맹상군의 영지 설 땅에 제나라의 종묘를 세우도록 했다. 왕실의 종묘가 있는 설 지역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종묘는 맹상군에게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맹상군은 평생 마음 편히 살 수 있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여러 나라들이 패권을 차지하려 싸웠고 인재들은 나라를 넘나들며 재능을 발휘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치에 몸 담았던 유세객과 문인, 귀족들은 작은 실수로 멸문을 당하기도 했기에 처세에 대한 성어와 이야기는 수없이 전해진다. “교토삼굴(狡免三窟)”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 출전 : 사기 맹상군열전(史記 孟嘗君列傳)
- 한자풀이
교(狡) : 교활하다, 영리하다
토(免) : 토끼
삼(三) : 셋
굴(窟) : 굴
- 유의어 : 교토삼혈(狡免三穴), 토영삼굴(兎營三窟)
- 속담 :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사기(史記)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 遷)이 지은 역사서로 신화시대부터 전한의 한무제(漢武帝) 때 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기의 서술 방식인 기전체는 동아시아에서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