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구도 鷄鳴狗盜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내는 도둑이라는 뜻으로 사소한 잔재주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사공자로 이름을 떨쳤던 맹상군(孟嘗君)은 세상의 인재들과 교류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글 잘하는 선비부터 잡기에 능한 사람까지 신분에 개의치 않고 재주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맹상군의 손님이 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鷄鳴)과 개 가죽을 덮어 쓰고 물건을 훔치는 도둑(狗盜)도 있었다.
어느날 맹상군은 진나라 소양왕(秦 昭襄王)이 재상이 되어 줄 것을 청했다(B.C. 289년). 맹상군은 내키지 않았지만 제나라와 진나라의 관계를 생각해서 수락하고 진나라로 떠났다. 이때 식객 몇 명이 따라갔는데 그 중에는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가죽을 쓰고 도둑질하는 좀도둑도 끼여 있었다.
맹상군은 소양왕을 알현하고 귀한 호백구(狐白裘)를 예물로 바쳤다. 소양왕은 맹상군은 재상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진나라 중신들은 다른 나라 사람에게 재상 자리를 맡길 수 없다고 반대했다. 소양왕은 맹상군을 재상에 임명하려던 생각을 포기했지만 돌려보낼 수 도 없었다. 혹시 맹상군이 원한을 품고 복수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양왕은 맹상군은 죽여버리기로 결정했다.
맹상군은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까 궁리하다가 소양왕의 애첩(愛妾)에게 왕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애첩은 왕에게 바친 것과 똑같은 호백구를 주면 그러겠노라고 했다.
호백구는 여우 겨드랑이 흰 털을 모아 만든 가죽옷으로 한 벌 만드는데 여우 수십 마리가 드는 값비싼 것이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비싼 호백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맹상군이 망연자실해 하자, 도둑이 개 가죽을 쓰고 소양왕의 처소에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왔다. 맹상군은 소양왕의 애첩에게 호백구를 주었고, 그녀는 왕에게 간청하여 맹상군 간신히 귀국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현대에 복원한 함곡관의 모습
맹상군 일행은 서둘러 진나라 국경인 함곡관(函谷關)으로 달려갔다. 한편 소양왕은 마음이 바뀌어 맹상군을 죽이려고 병사를 보냈다.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에 도착했지만 함곡관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첫 닭이 울어야 문을 여는데 아직 한밤중이었다. 그때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첫 닭의 소리를 내자 마을의 닭들이 따라 울었다. 함곡관의 병사들은 새벽이 온 줄 알고 함곡관의 문을 열었고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국경을 빠져나갔다.
- 출처 : 사기 맹상군 열전(史記 孟嘗君 列傳)
- 한자풀이
계(鷄) : 닭, 가금
명(鳴) : 울다, 날집승 소리를 내다
구(狗) : 개, 강아지
도(盜) : 도둑, 훔치다
사기(史記)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 遷)이 지은 역사서로 신화시대부터 전한의 한무제(漢武帝) 때 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기의 서술 방식인 기전체는 동아시아에서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