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구우후 鷄口牛後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큰 집단의 말단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진나라(秦)가 강성해지자 주변 나라들을 진의 압박을 막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당시 동주(東周)은 출신 유세객 소진(蘇秦)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을 주장했으나 왕들은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기 않고 연나라(燕)의 왕에게 합종책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연나라 왕은 그에게 벼슬을 내려주었다.
그 후 소진은 여러 나라를 돌며 합종책을 설파하며 동맹을 맺도록 했는데 한나라(韓)를 방문했다. 소진은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인데 싸워보지도 않고 진에 굴복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고 진나라는 상국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나라의 땅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옛말에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寧爲溪口 勿爲牛後)라는 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한나라 왕은 소진의 말에 찬동하여 합종책을 받아들였다.
소진은 위(魏) ‧ 조(趙) ‧ 제(齊) ‧ 초나라(楚)의 왕도 설득하여 합종책을 완성했으며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유럽에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Caesar)가 군대를 이끌고 시골마을 지나던 중이었다. 카이사르의 부하가 작은 마을의 촌장을 무시하자 카이사르는 “로마의 이인자가 되느니 작은 고을의 일인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 출처 : 사기 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
- 한자풀이
계(鷄) : 닭
구(口) : 입
우(牛) : 소
후(後) : 뒤, 끝
- 관련 고사성어 : 시오설(視吾舌)
사기(史記)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 遷)이 지은 역사서로 신화시대부터 전한의 한무제(漢武帝) 때 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기의 서술 방식인 기전체는 동아시아에서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었다.
소진(蘇秦, ? ~ 기원전 317년?)
동주(東周) 출신으로 귀곡자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여러 나라를 돌며 유세하다 연나라 왕에게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을 제안했다. 연나라를 비롯한 여러 왕을 설득하여 합종책을 실시하게 했다.
합종책(合縱策)
전국시대,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여섯 나라(한, 위, 제, 초, 연, 조) 가 손을 잡은 동맹 정책. 소진은 이 동맹의 총 책임자로 육국의 재상을 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