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鷄肋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살이 적고 먹기 불편하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닭갈비처럼 별로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말(219년), 조조(曹操)는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차지하자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지세가 험한데다가 유비군은 보급로를 끊고 정면 대결은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전투다운 전투도 못한 채 조조군의 사기만 떨어져 갔다.
조조는 지지부진한 상황도 싫고 한중에 별 미련도 없어 철군하고 싶었지만 빈손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 그 날 저녁이 닭고기였는데 살도 별로 없고 먹기도 불편한 닭갈비가 꼭 한중 땅 같았다.
그때 하후돈이 들어와 암호를 무엇으로 할지 문자 조조는 “계륵(鷄肋)!”이라고 대답했다. 하후돈을 비롯한 부하들은 어리둥절하여 당황했지만 주부(主簿) 양수(楊修)가 짐을 꾸렸다.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양수는 이렇게 말했다.
“닭갈비는 먹자니 귀찮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 아니오? 지금 주군께서 한중을 닭갈비처럼 여기고 계시니 곧 철군을 명하실 것이오.”
그러자 모두 양수의 말이 일리 있다 여기고 병사들에게 철군 준비를 시켰다.
저녁을 먹고 조조는 진지를 돌아보다 군사들이 철수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하후돈에게 사정을 들은 조조는 양수의 총명함에 감탄했지만 두려움을 느껴,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양수를 죽이고 철군하라 명령했다.
이 일이 있는 뒤부터 계륵은 별로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이나 그러한 사람을 이르게 되었다.
- 출처 : 후한서 양수전(後漢書 楊修傳)
- 한자풀이
계(鷄) : 닭, 가금
륵(肋) : 갈빗대, 갈비
조조(曹操, 155년 ~ 220년 )
중국 후한 말기에 활약한 정치가이자 군인이다. 유비, 손권과 함께 삼국시대를 열었으며 영웅과 간웅(奸雄)이라는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나 현대에 들어 긍정적인 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조조의 아들 조비는 위나라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