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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18

[개화기/정치행정]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양요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양요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 :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대한제국의 추존왕. 아들인 고종 즉위 후(1864) 섭정으로 국정을 이끌었고, 과감한 내정 개혁으로 전제 왕권 강화와 세도정치 철폐, 기득권 제한을 이루어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실각 후 재집권을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하였고, 임오군란(1882)때 청으로 납치되기도 하였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2023. 2. 24.
[근대/정치행정]19세기 조선의 사회 혼란 19세기 조선의 사회 혼란 ★ 세도 정치(勢道政治) : 조선 왕조의 외척이 된 가문이 왕의 위임(委任)을 받아 정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던 정치. 순조 즉위 이후(1800년) 본격화되어 정치 기강과 삼정(정전, 군정, 환곡)이 문란이 극심해져 사회 혼란이 심화되었다. 2023. 2. 23.
[근대/대한제국및황실]명성황후 영정 명성황후 영정 ★ 명성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1895)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 고종의 정비로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하고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다. 임오군란 일본 견제를 위해 청의 지원에 의존하였으나 청일전쟁 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했다. 처음에는 개항에 미온적이었으나, 점진적인 개화시책을 통해 친일 성향을 띤 급진 개화파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과 주조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공모에 의해 일본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다(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사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2020. 7. 25.
[근대/정변및사건]청에 납치된 흥선대원군과 위안스카이 청에 납치된 흥선대원군과 위안스카이 ★ 갑신정변(甲申政變) :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홍영식 등 개화당이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척족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 한 무력 정변. 개화당은 우정국 낙성식 때 정변을 일으키고 14개조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민씨 정권은 청의 위안스카이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청 군대를 불러들였고, 일본에 의존한 개화당의 정변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조선을 일본과 한성 조약을 체결하고, 청 ․ 일은 텐진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에서 철수하였다.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22.
[근대/정변및사건] 일본 공사관원들 일본 공사관원들 ★ 임오군란 때 인천으로 도주, 일본에 도착한 하나부사 공사와 공사관원 일행. 하나부사 공사는 군함과 군대를 이끌로 다시 인천에 상륙하였다. ★ 임오군란(壬午軍亂) : 고종 19년(1882) 6월 9일 훈련도감 구식 군인들의 군료분쟁(軍料紛爭)에서 발단한 정변. 군인들은 일본공사관과 개화파 관료들을 공격하였고 대원군이 재집권하였다.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청나라군이 개입하여 사태를 진압하였고, 곧 일본군도 조선에 상륙하였다. 청의 개입으로 대원군을 실각하고 청나라로 납치되었으다. 이후 조선은 청과 을, 일본과 및 을 체결하였고, 조선은 청과 일본의 각축장이 되었다. 2020. 7. 19.
[개화기/흥선대원군집권기]원납전 원납전 ★ 원납전(願納錢) :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해 받아들인 기부금. 관리들은 재력에 따라 납부하게 하고, 많은 돈을 기부하는 상민에게 벼슬을 주기도 했으며, 여러 가지 명목으로 징수하였다. 징수 과정에서 많은 폐혜를 유발하여 이라 불기리도 했다. 1873년 폐지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6.
[개화기/흥선대원군집권기]당백전 당백전 ★ 당백전(當百錢) : 고종 3년(1866년)에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부족한 국가 재원을 채우기 위해 주조한 화폐로, 법정 가치는 일반 상평통보의 100배에 해당하였으나, 실제 가치는 일반 상평통보의 5 ~ 6배 가치에 불과하였다. 경복궁을 중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주조에 들어가 그해 10월부터 사용하였다. 당시 화폐가치가 무려 20% 이상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자 이듬해 주조를 중단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6.
[근대/정치]대전회통 대전회통 ★ 대전회통(大典會通) : 고종 2년(1865)에 조두순(趙斗淳)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법전. 육전조례와 함께 조선왕조 5백 년을 통한 마지막 법령집으로, 조선시대 법령의 종합판이다. 2020. 7. 14.
[근대/정치]서원 철폐 서원 철폐 서원철폐령으로 묻힌 위패(창녕 관산서원) ★ 서원 철폐(書院 撤廢) : 조선 시대 말기 서원의 오랜 적폐(積弊)를 제거하기 위해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서원철폐령을 내려 대대적으로 서원을 정리하였다(1871). 전국에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통·폐합하였다. 비사액서원을 우선적으로 정리를 하였고, 사액서원이라도 첩설된 것과 불법을 횡행하는 서원은 모두 철폐되었다. 양반과 유학자들의 반발이 거셌으나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4.
[근대/정치]환곡제 개혁(사창제) 환곡제 개혁(사창제) 위 : 환곡제, 아래 : 사창제 ★ 환곡제(還穀制) : 조선 시대에 있었던 구휼제도(救恤制度) 가운데 하나로,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 주고 풍년·추수기에 되받는 진휼제도이다.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진대법(고국천왕 16년, 194)에서 시작되어 고령허 조선을 거쳐 시행되었으며, 조선 인조 때(1626) 상설제도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구휼보다 국비(國費) 충당, 관리들의 부정축재에 악용되고 고리대로 변질되어 폐단이 극심했다. 조선후기 삼정의 문란 중 가장 폐단이 심한 부분이 환곡제도였으며, 민란의 원인이 되었다. 흥선대원군 집권 후(고종 4, 1867), 환곡의 폐정을 시정, 대여 양곡의 회수 규칙을 엄하게 하여 이식은 1할로 고정했고, 사창(社倉)을 다시 두었다. ★ 사창제.. 2020. 7. 14.
[근대/정치]호포제 호포제 ★ 호포제(戶布制) : 가구(戶) 단위로 옷감(布)을 걷는 세금 제도.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양인 남성에게만 부과하던 군포를 양반을 포함한 모든 가구에 동등하게 군포를 부과하였다. 당시 삼정 문란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에게 크게 지지를 받았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3.
[근대/국제관계]척화비 척화비 ★ 척화비(斥和碑) : 신미양요 이후(고종 8년, 1871) 흥선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종로 네거리를 위시한 전국 교통 요충지 200여 개소에 세운 비석(碑石).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2.
[근대/사상과학문]베르뇌 신부 베르뇌 신부 ★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1814~1866)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선교사. 병인박해(1866) 때에 처형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이다. 2020. 7. 9.
[근대/대한제국및황실]남연군의 묘 남연군의 묘 ★ 남연군의 묘(南延君墓) :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788∼1822)의 묘.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다. 이곳에 있던 절 가야사를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하였다. 이하응의 차남 명복이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소재.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80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9.
[근대/인물]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 :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대한제국의 추존왕. 아들인 고종 즉위 후(1864) 섭정으로 국정을 이끌었고, 과감한 내정 개혁으로 전제 왕권 강화와 세도정치 철폐, 기득권 제한을 이루어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실각 후 재집권을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하였고, 임오군란(1882)때 청으로 납치되기도 하였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5.
[근대/정치]호포제의 시행 호포제의 시행 ★ 호포제(戶布制) : 가구(戶) 단위로 옷감(布)을 걷는 세금 제도.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양인 남성에게만 부과하던 군포를 양반을 포함한 모든 가구에 동등하게 군포를 부과하였다. 당시 삼정 문란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에게 크게 지지를 받았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7. 5. 12.
[조선후기/정치행정]세도정치 시기의 비변사 인사추천 횟수 세도정치 시기의 비변사 인사추천 횟수 ★ 비변사(備邊司) : 조선시대 군국기무(軍國機務)를 관장한 문무합의기구(文武合議機構). 원래는 전쟁 등의 비상시에 설치하는 임시 관청이었으나 명종 9년(1554)에 정규 관청이 되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국정 전반 아우르는 최고 기구가 되어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고종 1년(1864)에 비변사의 기능 확대가 국가행정체제를 문란하게 만든다 하여 업무 한계를 규정하고, 이듬해 폐지하였다. ★ 세도 정치(勢道政治 : 조선 왕조의 외척이 된 가문이 왕의 위임(委任)을 받아 정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던 정치. 순조 즉위 이후(1800년) 본격화되어 정치 기강과 삼정(정전, 군정, 환곡)이 문란이 극심해져 사회 혼란이 심화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2017. 5. 7.
[개화기/정치]개화기의 정치 개화기의 정치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7.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