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13 [개화기]수어장대(19세기말) 수어장대(19세기말) ★ 수어장대(守禦將臺)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시설이다.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현재 건물은 1896년에 다시 고쳐 세운 것으로 인조 대에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호. 2020. 9. 18. [조선중기/병자호란] 병자창의록 병자창의록 ★ 병자창의록(丙子倡義錄) :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호남 지방의 의사(義士)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 영조 46년(1770)에 간행되었다. 정식 명칭은 병자호란창의록(丙子胡亂倡義錄)>이다. 2020. 5. 29. [조선중기/병자호란] 심양관(瀋陽館) 심양관(瀋陽館) ★ 심양관(瀋陽館) : 병자호란 후 ‘정축맹약(1637, 인조 15)’에 따라 청에 인질로 보낸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머물렀던 처소 겸 집무소. 현재는 철거되었으나, ‘고려관호동(高麗館胡同)’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위 사진은 철거되기 도서관으로 사용될 때의 모습이다. 2020. 4. 7. [중국사&북방민족/명청]아담 샬 아담 샬 ★ 요한 아담 샬 폰 벨(Johann Adam Schall von Bell, 1591~1666) :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로 흔히 아담 샬이라 부른다. 1622년 중국으로 건너와 명나라에서 벼슬을 받았으며, 천문학와 역학에 뛰어나 역서(曆書)인 시헌력(時憲曆)의 편찬, 대포 제조 등을 지도하.. 2020. 2. 7. [조선후기/학문과사상/실학] 아담 샬 아담 샬 ★ 요한 아담 샬 폰 벨(Johann Adam Schall von Bell, 1591~1666) :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로 흔히 아담 샬이라 부른다. 1622년 중국으로 건너와 명나라에서 벼슬을 받았으며, 천문학와 역학에 뛰어나 역서(曆書)인 시헌력(時憲曆)의 편찬, 대포 제조 등을 지도하였다. 청나라 초기에 선교, 학문 등에서 활동하고 베이징 천문대장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청나라 학자들의 모함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 왔던 조선의 소현세자와 교류하며 천문 지식과 기독교 교리를 전해 주기도 했다. 2019. 11. 16. [조선중기/인물]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 서울 어린이 대공원 네덜란드 알크마르 ★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 ; Jan Jansz Weltevree)(1595~?) : 네덜란드 인으로 인조 4년(1627) 제주도에 표착한 뒤 관헌에 붙잡혀 한양으로 호송되었다. 이후 후년도감에서 일하며 총포 제작을 지도하였다. 유럽인 최초로 조선에 귀화하여 조선 여인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으며, 병자호란에 참여하였다. 서울 어린이 대공원과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 알크마르에 동상을 세웠다. 2019. 10. 30. [조선중기/병자호란] 청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영화 '최종병기 활' 中) 청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 영화 '최종병기 활' 中 한 장면 ★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의 숭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다(1636년 12월).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1637년 2월). 인조는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하였다(삼전도의 굴욕). 동아시아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전쟁 포로로 수십 만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막심하였다. 2019. 10. 29. [조선/병자호란]병자호란창의록(丙子胡亂倡義錄) 병자호란창의록 (丙子胡亂倡義錄) ★ 병자호란창의록(丙子胡亂倡義錄) : 병자호란 때(1636) 호남의 의사들이 의거한 사적을 기록한 역사서.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10. 29. [조선/유적] 남한산성 남한산성 ★ 남한산성(南漢山城) :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백제의 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증축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이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0여일간 항전하다 항복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사적 제 57호.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대한민국 경기도 남한산 소재. 2019. 10. 28. [조선중기/병자호란] 삼전도비(三田渡碑) 삼전도비(三田渡碑) ★ 삼전도비(三田渡碑) : 병자호란 때 승리한 숭덕제가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다. 조선이 청나라의 신하국이 되어 조공을 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이다.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사적 제 101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소재47번지(당시 경기도 삼전도). 2019. 10. 27. [조선중기/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삼전도의 굴욕 ★ 삼전도의 굴욕(三田渡의 屈辱) :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가 농성 59일만에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숭덕제)에게 항복하고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행한 것(1637년 2월 24일, 정축년 음력 1월 30일). 조선의 실록에는 정축하성(丁丑下城 : 정축년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다)라고 짧게 기록해 놓았다. 2019. 10. 27. [조선중기/병자호란] 인조의 피신과 삼전도 항복 인조의 피신과 삼전도 항복 ★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의 숭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다(1636년 12월).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1637년 2월). 인조는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하였다(삼전도의 굴욕). 동아시아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전쟁 포로로 수십 만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막심하였다.★ 삼전도의 굴욕(三田渡의 屈.. 2017. 3. 22. [조선중기/호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정묘호란(丁卯胡亂) : 인조 5년(1627)에 후금(後金, 이후 청淸으로 국호를 바꿈)이 조선을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인조 즉위 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추진하였고, 명(明)을 지원하였다. 또, 이괄의 잔당이 후금으로 도망하여 광해군 폐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조선을 칠 것을 주장하였다. 명과 조선 사이에 고립된 후금은 마침내 조선을 침략하였다(1627). 조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저항하였으며, 승리한 지역도 있었다. 명과 전쟁 중이였던 후금은 조선이 자신들의 배후를 공격할 것을 염려하여 강화를 제의하였고, 1627년 4월 조강화가 성립하였다. 이후 조선은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 2017. 1.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