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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2320

[남북국/발해/정치행정] 발해의 3성 6부제 발해의 3성 6부제      발해의 3성 6부제    당의 3성 6부제 ★ 발해의 3성 6부제 : 발해는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였으나, 그 명칭과 운영을 달리하여 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 3성 6부제(三省六部制) : 과거 중국 왕조의 중앙 정치 제도이다. 이는 주변국에도 영향을 끼쳐 발해, 고려, 과거 베트남 왕조 등 중국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앙 정치 제도에도 적용되었다. 2019. 7. 6.
[남북국/발해/정치행정] 발해의 지방 제도 발해의 지방 제도   ★ 발해의 지방제도 : 전국을 5경(京) · 15부(府) · 62주(주)로 구분하고 있었다. 5경은 발해의 왕족 및 고구려 계통의 귀족들의 필요에 의해 설치되었고, 15부는 지방행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아래 62주를 거느리고 다스렸다. 2019. 7. 6.
[남북국/발해] 발해의 건국(지도) 발해의 건국    ★ 발해의 건국(渤海, 698~926) : 고구려가 멸망한(668) 뒤 유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영주(榮州)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거란인 등 여러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 696년 당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거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걸걸중상이 이동 중 전사하자 대조영은 무리를 이끌로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을 무찌르고 동모산 일대(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자치주)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振)이라 하였다(698). 대조영은 고구려 계승을 천명하고 천통(天統)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 2019. 7. 5.
[남북국/발해] 발해의 건국 발해의 건국  ★ 발해의 건국(渤海, 698~926) : 고구려가 멸망한(668) 뒤 유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영주(榮州)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거란인 등 여러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 696년 당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거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걸걸중상이 이동 중 전사하자 대조영은 무리를 이끌로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을 무찌르고 동모산 일대(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자치주)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振)이라 하였다(698). 대조영은 고구려 계승을 천명하고 천통(天統)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였.. 2019. 7. 5.
[남북국/발해] 발해의 건국과 발전 발해의 건국과 발전   ★ 발해(渤海, 698~926) :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연합하여 동모산 일대에 세운 나라. 대조영(高王)은 천손임을 자처하고 독자적 연호를 제정하였고, 무왕과 문왕대에 당, 신라, 일본과 외교와 무역을 하였다. 선왕대에 요동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지방제도를 정비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에서는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926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1116년까지 발해 부흥운동이 이어졌으나 모두 실패하고 요나라와 금나라에 병합되었다. 2019. 7. 5.
[신라중하대/유물]주령구(酒令具)(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 주령구(酒令具)(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   복제품   실물(소실)  ★ 주령구(酒令具) : 1975년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정사각형 면 6개와 점추이 육각형 면 8개로 이루어진 14면체 주사위. 각 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어 신라인들의 음주 습관과 풍류를 보여준다. 출토된 진품은 유물 보존 처리 도중 불타버렸고, 복제품만 남아있다.  ★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과 月池)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경주 월성의 별궁 터. 신라 멸망 이후 안압지(雁鴨池)로 불렀다가, 발굴 조사 후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월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 14년(67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m 지점에 조성하였고, 5년 후(679년) 별궁인 동궁을 건축하였다. 1970년대부터.. 2019. 7. 4.
[남북국/시니라중대/고분]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경주 태종무열왕릉비의 귀부와 이수(위), 이수(아래)★ 경주 태종무열왕릉비(慶州 太宗武烈王陵碑) : 무열왕릉에 있는 신라 중기(7세기)에 건립된 신라 태종무열왕의 능비(陵碑). 현재 비신(碑身)은 현재 없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귀부(龜趺)의 길이 약 3.33m, 폭 2.54m, 이수(螭首)의 높이 약 1.1m이다. 귀부는 장방형의 기석(基石) 위에 얹혀 있고, 머리를 높이 든 거북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수는 6룡(龍)이 서로 능을 향해 구부리고 있는 모습으로 윤곽을 이룬다. 이수 중앙에는 김인문(金仁問)의 글씨로 전하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전서(篆書)로 양각되어 있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신라 석조예술의 우수.. 2019. 7. 4.
[신라중대/인물] 태종무열왕(김춘추) 태종무열왕(김춘추)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3~661년, 재위 654~661년)은 신라(新羅)의 제29대 임금으오 이름은 김춘추(金春秋)이다. 진평왕의 차녀 성골 천명공주와 진골인 이찬 김용수의 아들로 진골(眞骨)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 · 진덕여왕(眞德女王) 대에 국정 전반,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나 ․ 장 연합을 결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을 하다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되어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이후 660년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 재위 8년만에 붕어(崩御)하였다. 시호는 무열(武烈), 호(廟號)는 태종(太宗)으로 한국 최초로 묘호를 사용하였다. 생.. 2019. 7. 4.
[남북국/신라하대/국제관계] 장보고의 해상 무역로 장보고의 해상 무역로 ★ 장보고(張保皐, ?~846년) :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 한미한 출신으로 친구 정년과 당으로 건너가 군인으로 출사하여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았다. 흥덕왕 3년(828년) 신라로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일을 막았다.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당과 일본, 발해, 탐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많은 이익을 취하고 큰 세력을 이루었다. 또, 산둥성에 사는 신라인들을 지원하여 사찰 법화원(法華院) 건립을 도왔으며, 노예가 된 신라인들을 해방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후 신라의 왕위 다툼에 뛰어들어다. 김우징(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추대하였고, 김우징은 장보고의 딸을 태자비로 맞겠다고 약속하였다.. 2019. 6. 30.
[남북국/신라하대/유적] 적산법화원 적산법화원     ★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때 장보고가 당나라 산둥성 등주(登州)의 신라인 거주지인 적산촌(赤山村)에 세운 불교 사찰. 이후 이곳은 신라인의 구심점이 되었고, 장보고는 무역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당나라 무종(845년)때 불교 탄압으로 파손되었다. 1998년 한중 우호를 기념하여 중국 정부는 법화원을 중건하였다. 경내에 장보고기념관과 장보고 동상이 있다. 2019. 6. 30.
[남북국/신라하대/유적] 청해진 유적 청해진 유적   ★ 청해진(淸海鎭) : 신라 하대 흥덕왕 3년(828) 장보고(張保皐)의 요청에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의 장도에 설치하였던 진(鎭)이다. 초기에는 해적을 방비하기 위한 군사거점이었으나, 이후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으로서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렸다. 장보고가 살해당한 뒤 폐지되었고 주민들도 이주시켰다. 2019. 6. 30.
[신라/인물]의상(義湘) 의상(義湘) ★ 의상(義湘, 625~702) : 신라 중대의 왕족 출신 승려, 신라 중대의 작가이자 철학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중국화엄종 제2대 조사인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이어받았다.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시조이다. 호는 해동화엄시조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이다. 2019. 6. 29.
[남북국/신라하대/인물] 장보고 장보고  ★ 장보고(張保皐, ?~846년) :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 한미한 출신으로 친구 정년과 당으로 건너가 군인으로 출사하여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았다. 흥덕왕 3년(828년) 신라로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일을 막았다.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당과 일본, 발해, 탐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많은 이익을 취하고 큰 세력을 이루었다. 또, 산둥성에 사는 신라인들을 지원하여 사찰 법화원(法華院) 건립을 도왔으며, 노예가 된 신라인들을 해방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후 신라의 왕위 다툼에 뛰어들어다. 김우징(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추대하였고, 김우징은 장보고의 딸을 태자비로 맞겠다고 약속하였다. 신무왕이 .. 2019. 6. 29.
[남북국/신라중하대/정치행정] 신라 민정 문서 신라 민정 문서   ★ 신라 민정 문서 : 신라 민정 문서 또는 신라 장적(新羅帳籍)이라고도 한다. 신라 서원경(西原京, 현 청주시) 지방 4개 촌의 장적(帳籍)이다. 마을의 면적, 인구, 논밭, 가축, 유실수 등의 면적과 수량을 기록하였다. 당시 촌락의 경제 상황과 국가의 세무 행정, 신라의 율령 정치와 신라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 문서의 작성 시기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는데, 경덕왕 14년(755) 설 헌덕왕 7년(815) 설 등이 있다.  1933년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東大寺 正倉院)에 소장된 의 책갑을 수리할 때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종이 중에서 발견하였다. 2019. 6. 28.
[남북국/신라하대/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탑(僧塔)으로, 쌍봉사를 창건한 철감선사 도윤(798~868)의 승탑이다. 선사가 입적한 경문왕 8년(868)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틀을 마련한 철감선사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화강암 재질에 높이는 2.3m. 8각 원당 형식(圓堂形式)에 조각이 정교하고 치밀하다. 기단부와 탑신부는 상태가 양호하지만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사라진 상태이다. 신라 중하대의 승탑 중 될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국보 제 57호. 2019. 6. 28.
[신라/인물]원효(元曉) 원효(元曉) ★ 원효(元曉, 617~686) : 삼국시대 신라의 고승이자 학자, 사상가, 작가, 시인, 정치가. 원효는 법명이고, 본래 성씨는 설씨(薛)이다. 청년 시절 태학에서 수학하고 화랑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후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당항성 근처 무덤가에서 잠이 들었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유학을 포기한다. 그 귀 민중에 불교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았다. 2019. 6. 28.
[남북국/신라중하대/고분]문관토용상(경주 용강동 고분 출토) 문관토용상(경주 용강동 고분 출토)  ★ 문관토용상(文官土俑像) :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토용(土俑). 용강동 고분은 7C 후반~8C 초반의 돌방무덤으로 여러 가지 토용이 발견되었다. 문관상은 서역인의 모습에 관복을 입고 홀(笏)을 들고 있다. 당시 신라는 서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2019. 6. 27.
[남북국/신라중대/공예] 상원사 동종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鐘)  ★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鐘)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의 구리 종. 신라 성덕왕대(725년)에 주조되었으며, 현존하는 한국의 최고 오래된 종이다. 천판의 명문에 의하면 휴도리(休道里)라는 귀부인이 기증했다고 한다. 무늬대[紋樣帶]는 당초문과 반원형으로 구획지은 속에 천인상으로서 장식되었고, 종신에는 당초문 띠를 바깥에 두른 연화문 당좌(撞座)와 병좌주악천인상(竝座奏樂天人象)을 두 군데 배치하고 있다. 높이 1.7m. 국보 제36호. 2019. 6. 27.
[남북국/신라중대/공예]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聖德大王神鍾 飛天像)  ★ 비천상(飛天像) : 벽화의 고분과 범종의 주물에 비천(飛天)을 표현한 상(像). 비천은 부처가 설법할 적에 부처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부처를 예찬하는 존재이다. 사찰 범종의 몸체 표면에 당좌(타종 부분) 위치 높이에, 비천상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 신라 중대에 만든 범종. 신라 경덕왕(35대, 742~765)이 부왕 성덕왕(33대, 702∼737)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하여, 혜공왕(36대, 765~780)이 완성하였다.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이라고도 부른다. 신라 중대 예술의 전성기 때 제작되었으며,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한다.  제작 후에 봉덕사(奉德寺)에 달았다가 조선 시대에 여러.. 2019. 6. 27.
[남북국/신라하대/인물] 도선(道詵) 도선(道詵) ★ 도선(道詵, 827~898) :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 속성(俗姓)은 김(金)씨. 영암 출신으로,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혜철대사에게 수학하고 구계(具戒)를 받았다.   승려로서도 명성이 높았으나 음양풍수설(풍수지리)의 대가로서 더 유명했다. 당에 유학하여 풍수학을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예언가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송악(개성)에서 고려 태조(왕건)가 탄생할 것을 예언한 일이 유명했다. 헌강왕이 그를 초빙하여 법문을 들었으며,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또한, 고려 태조를 비롯한 고려조의 왕들도 그를 극진히 모셨다.  저서로 ,, 등이 있다. 2019.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