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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삼국~남북국379

[백제/유적]무령왕 탄생지 무령왕 탄생지 ★ 무령왕의 출생지 : 무령왕 지석과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이 섬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 규슈 쓰쿠시의 가카라시마(加唐島)에는 무령왕이 태어났다고 전해내려오는 동굴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3.
[백제/고분유물]무령왕릉 지석(왕) 무령왕릉 지석(왕) ★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 :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25대 왕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 연대가 표기되어 삼국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유물이다. 국보 163호.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3.
[백제]무령왕릉 발굴(1971) 무령왕릉 발굴 현장(1971) ★ 무령왕릉(武寧王陵) :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1971년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으로 축조연대를 알 수 있어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었으며, 중국 남조 양나라의 양식과 유사한 벽돌무덤이다. 또한, 지석을 비롯한 금제관식, 석수 등, 2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무령왕릉은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물 대부분은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2.
[백제]무령왕릉 복원도(그래픽) 무령왕릉 복원도(그래픽) ★ 무령왕릉(武寧王陵) :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1971년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으로 축조연대를 알 수 있어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었으며, 중국 남조 양나라의 양식과 유사한 벽돌무덤이다. 또한, 지석을 비롯한 금제관식, 석수 등, 2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무령왕릉은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물 대부분은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2.
[백제/고분유물]무령왕릉 동탁은잔 무령왕릉 동탁은잔 ★ 무령왕릉 동탁은잔(銅托銀盞) :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잔. 동합금제 받침과 은제 잔과 뚜껑을 조합한 것이다. 받침과 잔, 뚜껑에는 연꽃, 용, 봉황 등이 새겨져 있으며 불교 및 도교적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2.
[백제]무령왕릉의 목관(복제품) 무령왕릉의 목관(복제품) ★ 무령왕릉 목관 :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를 안치한 목관(木棺). 일본 규슈 지방의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졌다. 금송은 고대 일본에서 신성한 나무로 여겨 불단이나 지배층의 장례에 이용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1.
[백제/고분유물]무령왕 금동 신발 무령왕 금동 신발 ★ 무령왕 금동신발(武寧王 金銅飾履) : 금동신발은 삼국시대 왕릉급 고분에서 출토되는 장례용 껴묻거리(副葬品)로 무령왕릉에서는 왕과 왕비의 금동신발이 발견되었다. 왕의 신발은 발등을 덮는 2개의 측판과 1개의 바닥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안쪽에는 은판, 바깥쪽에는 맞새김(透彫)한 금동판을 덧대었다. 정으로 두드려 육각무늬를 만들고 그 안에는 맞새김으로 꽃무늬와 봉황무늬를 표현하고 달개(步搖)를 달았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1.
[백제/고분]무령왕릉의 구조 무령왕릉의 구조 ★ 무령왕릉(武寧王陵) :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1971년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으로 축조연대를 알 수 있어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었으며, 중국 남조 양나라의 양식과 유사한 벽돌무덤이다. 또한, 지석을 비롯한 금제관식, 석수 등, 2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무령왕릉은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물 대부분은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4. 1.
[백제/고분유물]무령왕의 금제관식 무령왕의 금제관식 ★ 무령왕 금제관식(武寧王 金製冠飾) :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 국보 제154호, 국립 공주박물관 소장.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31.
[백제]무령왕릉 석수 무령왕릉 석수 ★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 :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돌 동물상(石獸). 진묘수(鎭墓獸)라고도 한다. 무덤을 수호하는 관념적인 조각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되었다. 높이 30.8cm, 길이 49cm, 너비 22cm로 발굴 당시 통로 중앙에서 밖을 향하여 놓여 있었다. 국보 제162호,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31.
[백제/고분]무령왕릉(내부) 무령왕릉(내부) ★ 무령왕릉(武寧王陵) :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1971년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으로 축조연대를 알 수 있어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었으며, 중국 남조 양나라의 양식과 유사한 벽돌무덤이다. 또한, 지석을 비롯한 금제관식, 석수 등, 2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무령왕릉은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물 대부분은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30.
[백제/건축]몽촌토성의 목책(복원) 몽촌토성의 목책(복원) ★ 서울 몽촌토성(夢村土城) : 삼국시대 백제의 성(城).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2동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4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백제 초기에 현재 서울 지역을 수비하는 토성이었으며,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의 주성(主城)으로 추정한다. 동쪽에 흙으로 쌓은 흔적이 남아 있으며, 목책(木柵) 구조와 방비용 해자(垓子)등이 발견되었다. 토성에서 움집터와 독무덤, 무기, 백제 토기, 생활 도구, 중국 서진(西晉)의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297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30.
[백제/국제관계]무령왕대 백제의 해양 활동 무령왕대 백제의 해양 활동 ★ 백제의 해양 활동 : 백제는 건국 초기부터 멸망할 때까지 활발한 해양 활동을 하였다. 한성 백제 시대에는 서해를 통해 중국과 직접 교류하였고, 한강 유역을 잃은 후에는 서남해 항로를 이용하여 남조(양)와 교류하였다. 왜(倭)와는 경제적 교류를 넘어 정치 및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 무령왕(武寧王, 461(2)~523, 재위 501 ~ 52) : 백제의 제25대 국왕. 출생에 대해 상반된 기록이 있는데, 동성왕의 아들이라는 것과, 비유왕 또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것이 있다. 동성왕의 뒤를 이어 백제의 25대 왕으로 즉위하였으며, 왕관을 강화하고 중국의 남조의 양나라와 교류하였다. 한강 유역을 잃고 천도한 뒤 백제의 중흥을 이끈 군주로 평가받는다. 저작권에 .. 2019. 3. 30.
[백제/국제관계]백제의 해양 진출(한성백제) 백제의 해양 진출(한성백제) ★ 백제의 해양 활동 : 백제는 건국 초기부터 멸망할 때까지 활발한 해양 활동을 하였다. 한성 백제 시대에는 서해를 통해 중국과 직접 교류하였고, 한강 유역을 잃은 후에는 서남해 항로를 이용하여 남조(양)와 교류하였다. 왜(倭)와는 경제적 교류를 넘어 정치 및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9.
[백제/정치]백제의 천도 백제의 천도 ★ 백제의 천도 : 백제는 5세기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잃고 475년 웅진(공주)로 수도를 옮겼으며, 538년 성왕대에 수도를 다시 사비(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9.
[백제]칠지도 하사 칠지도 하사 ※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9.
[백제/공예]칠지도 칠지도 ★ 칠지도(七支刀) :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인 철제 칼. 길이 74.9cm의 양 옆으로 모두 6개의 가지가 뻗은 모양으로 앞면에 35자, 뒷면에 27자의 금상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한다. 한국 역사학계는 칠지도가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일본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에 대한 증거라 주장하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8.
[백제/건축]몽촌토성(夢村土城) 몽촌토성(夢村土城) ★ 서울 몽촌토성(夢村土城) : 삼국시대 백제의 성(城).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2동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4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백제 초기에 현재 서울 지역을 수비하는 토성이었으며,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의 주성(主城)으로 추정한다. 동쪽에 흙으로 쌓은 흔적이 남아 있으며, 목책(木柵) 구조와 방비용 해자(垓子)등이 발견되었다. 토성에서 움집터와 독무덤, 무기, 백제 토기, 생활 도구, 중국 서진(西晉)의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297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8.
[백제/정치]소서노의 남하와 백제의 건국 소서노의 남하와 백제의 건국 ★ 소서노(召西奴, BC 66년~BC 6년) :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왕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동명성왕(주몽)의 두 번째 부인. 부여를 떠나 졸본에 정착한 주몽과 혼인하였으며,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이후 부여에 남아있던 주몽의 아들 유리(유리명왕)이 고구려에 오자, 주몽과 결별하고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8.
[백제/고분]석촌동 제4호분 석촌동 제4호분 ★ 서울 석촌동 고분군(石村洞 古墳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백제 초기의 무덤군. 3세기 중엽에서 4세기 경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는 90여기의 고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과 난개발 등으로 훼손되어 4기의 돌무지무덤과 흑무덤 1기, 토광묘 2기가 있다. 현재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중이다. 석촌동의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의 무덤 양식과 유사하여 백제 건국 세력이 고구려계 이주민임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 석촌동 제4호분 : 3단으로 쌓은 돌무지무덤으로 바깥쪽에 돌을 쌓고 내부에 흙을 채운 백제식 돌무지무덤으로 3단 정상부에는 굴식 돌방(橫穴式石室)이 윤곽만 상징적으로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 변의 길이 17.2m, 전체 높이는 2.1m이다. 고분 전체를 돌로.. 2019.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