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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근대525

[일제강점기/사회운동] 어린이 창간호 어린이 창간호 ★ 어린이 : 방정환이 1923년에 창간한 한국 최초의 어린이 잡지. 월간지.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가난한 민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였으나, 여러 작가들의 동화(童話)를 실어 한국 아동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34년 발간이 중지되었다. 2021. 3. 17.
[일제강점기/사상과학문]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박은식이 1920년에 집필하고, 상하이의 유신사(維新社)에서 간행한 한국의 항일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서.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에 의하여 쓰인 한국 최초의 독립운동사 개설서로 와 함께 민족주의사학이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2021. 3. 16.
[일제강점기/사상과학문] 조선상고사 조선상고사 ★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 신채호가 저술한 한국 상고사에 관한 역사서. 총론은 1924년에 완성되었으며, 1930년의 발간에 이어 1931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그 내용이 불완전하여 연재를 중지하고 수정하여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실현되지 못했다. 연재는 계속되어 신채호 사후인 1948년에 총 12편의 단행본으로 종로서원에서 출간되었다. 2021. 3. 16.
[일제강점기/병참기지화정책]군사훈련을 받는 여학생들 군사훈련을 받는 여학생들 ★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이후 전시 체제가 본격화하면서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여학생들도 교련, 무도(武道), 총잡기, 열병 등을 훈련받았다. 2021. 3. 16.
[일제강점기/일제의탄압과만행] 위안부 위안부 ★ 위안부(慰安婦, いあんふ) :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 위안부는 한국인이 가장 많았으며, 중국인,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일본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여성도 있었다.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 보고관의 보고서에서는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2021. 3. 15.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 한인애국단의 활동 한인애국단의 활동 ★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 1931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 김구가 일본의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조직한 독립운동단체. 이봉창 의거(1932), 윤봉길 의거(1932) 등의 활동을 하하며 일본에 저항하였다. 거사 이후 1936년까지 언론을 통해 이봉창·윤봉길 등에 대한 추모 활동을 하였고,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2021. 3. 15.
일제강점기 한일 노동자의 임금 비교 일제강점기 한일 노동자의 임금 비교 2021. 3. 14.
[일제강점기/노동운동]원산 총파업 원산 총파업 ★ 원산 총파업(元山 總罷業) : 1929년 1월 13일부터 4월 6일까지 원산시에서 있었던 총파업. 영국계 기업 문평 라이징선 제유회사의 일본인 감독의 폭력이 발단이 되어 원산 지역 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으로 발전하였으며, 3개월을 넘게 지속되었다. 조선총독부의 대대적인 검속과 노동조합의 분열로 일단락 되었다. 표면적으로 파업이었지만 일제의 반노동 정책에 따라 지역의 모든 사회 제반 계층이 양 편으로 나뉘어 싸운 대규모 투쟁이었다. 2021. 3. 14.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 한국 광복군 편제 한국 광복군 편제 ★ 한국 광복군(韓國 光復軍) :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 국군.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만주 독립군 등이 연합하여 1940년 9월 결성하여되었다.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각군의 통수권을 인수하여 통합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영국군과 버마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CIA의 전신인 OSS의 특별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OSS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1946년 귀국하였다. 2021. 3. 13.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 조선의용군의 이동 경로 조선의용군의 이동 경로 ★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Korean Volunteers Army) : 조선항일의용군(朝鮮抗日義勇隊), 국제여단(國際旅團)이라고도 불렀다. 대장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로 1938년 10월 10일 중국 후베이성 한커우(漢口, 현재 우한)에서 결성된 독립군이다. 조선민족전위동맹 산하의 단체로 분류된다.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중국 본토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게릴라전과 선전업무를 맡기도 했다. 1941년 의용대 일부가 화북으로 이동하여 분열되자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으로 개칭하였으며, 1942년 김원봉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자 의용대의 일부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고, 김원봉은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2021. 3. 13.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 신흥무관학교의 영농 작업 신흥무관학교의 영농 작업 ★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 1911년 서간도(길림성 통화시 류하현)에서 개교한 독립군 양성 기관. 현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의 전신.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 광복군 등에 참여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며 민족 해방에 크게 기여했다. 2021. 3. 13.
[일제강점기/일제의탄압과만행] 신사참배를 거부한 종교인을 처형하는 일본군 신사참배를 거부한 종교인을 처형하는 일본군 ★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강요 : 일본 제국이 식민지, 특히 한국에 신사를 세운 뒤 한국인에게 참배하도록 강제한 일제 강점기의 정책. 일제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부터 신사참배를 장려하였으나 심하게 강용하지는 않았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 거부는 묵인하였다. 그러나, 1930년 후반에 중일 전쟁을 전후하여 기독교계 학교는 물론 교회의 성직자들에게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충돌이 일어났다. 일본은 신사참배에 거부하는 종교인과 학생들을 참수하기도 했다. 2021. 3. 12.
[일제강점기/독립운동]신간회 신간회 ★ 신간회(新幹會) : 1927년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종교계 세력들이 결집해서 창립한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로, 1931년까지 지속하였다. 합법적 단체로 국내외에 100여 개가 넘는 지회를 조직했고 회원도 많을 때는 4만여 명에 달했던 대규모 조직이었다. 원산총파업(1929)와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등의 여러 사회운동을 지원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민족주의 계열의 분열과 좌 ․ 우익의 갈등 등으로 1931년 단체를 해소하였다. 2021. 3. 12.
[일제강점기/일제의탄압과만행]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 : 1907년(융희 원년) 대한제국을 점령한 한국통감부가 서울에 건설한 형무소. 수많은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수감자가 3,000여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도 구치소와 교도소로 이용되었는데,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1987년 교도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고 옥사(獄舍)와 건물을 보존하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1992년 으로 개원하였으며, 이후 복원을 거쳐 사적으로 지정하고 1998년 으로 개관하였다. 사적 제 324호. 2021. 3. 11.
[일제강점기/독립운동] 3부의 통합 3부의 통합 2021. 3. 10.
[일제강점기/건축]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 일제강점기 부협의회 의원이며 포목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군산 신흥동에 지은 주택으로, 신흥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군산의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다. 가옥은 광복 후 적산가옥으로 호남제분(현재 한국제분)의 이용구 사장에게 넘어가 현재까지 한국제분의 소유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및 드라마 촬영에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의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있어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 183호로 등록되었다. 2021. 3. 10.
[일제강점기/체육스포츠] 베를린 올림에서 수상하는 손기정과 남승룡 베를린 올림에서 수상하는 손기정과 남승룡 ★ 손기정(孫基禎, 1912~2002) : 일제 강점기 때 활약한 한국인 육상 선수이자 체육인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육상 선수로 활약했으며,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마라톤 대회 13개에 참가했고 그 중 10개에서 우승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으로 일본 경찰의 감시와 탄압에 시달렸으며, 광복 후 여운형을 돕기도 했다. 이후 체육계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된 그리스 투구는 50년 간 베를린의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1986년 손기정에게 전달되었으며, 손기정은 이것을 국가에 기증하였다. 이 투구는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후에 그의 모.. 2021. 3. 9.
[근현대 / 스포츠] 남승룡 남승룡 ★ 남승룡(南昇龍, 1912~2001) : 일제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육상 선수. 어려서부터 육상에 소질을 보였으며,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철학을 공부하였다. 유학생활 중 여러 마라톤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하였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뽑혔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동메달을 땄다. 1위는 손기정이었다. 훗날 손기정이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게 그가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욱 부러웠다고 회고하였다. 광복 후 보스턴 마라톤 대회(1947)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2021. 3. 9.
[일제강점기/경제항일운동]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난 도시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난 도시 ★ 물산장려운동(物産奬勵運動) : 일제 강점기 1920년대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맞서 전개하였던 범국민적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 1920년대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로 일본에 대한 경제 예속이 심화되자 한국인들은 평양과 경성을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를 조직하고 실천과제로 경제계 진흥, 실업자 구제, 근검절약, 국산품애용 등을 내세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토산품(국산품) 가격이 폭등하고 상인과 자본가들의 이익만 늘어나자 사회주의 계열의 비판을 받았고, 일제의 탄압과 친일세력의 관여로 변질되어 쇠퇴하였다. 2021. 3. 8.
[일제강점기/경제수탈]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지 증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지 증가 ★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Oriental colonization Company) : 1908년 12월 18일에 설립된 일본의 기업. 일제가 조선의 경제 독점과 토지·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국책회사로 영국의 동인도 회사를 본뜬 식민지 수탈기관이다. 1945년 11월 10일 미군정에 의해 신조선회사로 개편되었다가, 1946년 2월 21일 신한공사(新韓公社)를 창립하였다. 2021.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