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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근대513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한용운 한용운 ★ 한용운(韓龍雲, 1879~1944) :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으며, 불교 개혁과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신간회 창설하고 활동하기도 했다. 광복을 1년을 앞둔 1944년 병사하였다. 저서로 , 등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2021. 2. 7.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조명하 조명하 ★ 조명하(趙明河, 1905~1928) :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공무원(읍서기)로 잠시 일하다가 일본에 유학하던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타이완에 들렀다(1927). 일왕의 장인 일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가 타이완에 방문했을 때 독을 바른 단검으로 찔렀으며(1928년 5월 14일), 구니요시는 이듬해 1월 독이 퍼져 사망하였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10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당시 24세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021. 2. 7.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이봉창 이봉창 ★ 이봉창(李奉昌, 1900~1932)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10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상인으로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의 단원이 되었다. 1932년 일본에 건너가 쇼와 일왕을 폭탄으로 저격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1월 8일).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이 언도되었으며, 1932년 10월 10일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광복 후 유해를 봉환하여 1946년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 의사화 함께 안장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2021. 2. 6.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양기탁 양기탁 ★ 양기탁(梁起鐸, 1871~1938) : 한국의 언론인, 독립 운동가. 대한제국 때부터 애국계몽운동을 하였고 독립협회와 신민회 등의 창건에 참여하였으며,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1910년 이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였다. 1938년 중국에서 병사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유해를 봉환하여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2021. 2. 6.
[일제강점기/친일파] 최린 최린 ★ 최린(崔麟, 1878~1958) :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3.1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변절했다. 광복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병보석을 풀여났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선전기관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한 뒤 행방을 알려지지 않았다. 1958년 사망하였다. 2021. 2. 5.
[일제강점기/친일파] 최남선 최남선 ★ 최남선(崔南善, 1890~1957) : 한국의 문화운동가.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1907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인하여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여러개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이후에도 잡지를 발간하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총독부의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로 변절하였다. 1957년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2021. 2. 5.
[근대/독립운동가] 안창호 안창호 ★ 안창호(安昌浩, 1878~1938) : 대한제국의 교육개혁운동가 겸 애국계몽운동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 독립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해산 후 교육운동을 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독립 운동을 하였다. 특히 교육과 실력 양성 운동을 활발히 하여 점진학교, 대성학교, 동명학원을 설립하였다.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일본 영사관 경찰의 불심검문에 체포되어 송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형문을 받고 출옥 직후 고문 후유증과 여러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2021. 2. 4.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손병희 손병희 ★ 손병희(孫秉熙, 1861~1922) : 천도교(동학)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1882년 동학에 입도하고 3년 뒤, 최시형의 수제자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관군에 맞서 싸웠으나, 동학농민혁명 실패로 무너진 동학의 재건과 포교 활동에 큰 공을 세워 1897년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다. 이후 개화 사상을 받아들여 근대화 운동을 펼치다가, 정부의 동학 탄압을 피해 1901년 일본으로 망명하여 메이지유신으로 변화한 일본을 보고 단체를 조직하여 개화운동을 하였다.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1906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천도교 재부의 친일 인사를 내보내고 교육과 출판 사업을 하였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2021. 2. 4.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나석주 나석주 ★ 나석주(羅錫疇, 1892~1926) : 한국의 독립운동가. 황해도 출신으로 23세에 만주로 건너가 북간도 나자구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20년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면장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피신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한단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당시 경무국장)의 경호관이 되고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6년 국내로 들어와 12월 28일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일본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총으로 자결을 시도하다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2021. 2. 3.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익상 김익상 ★ 김익상(金益相, 1895~1943) : 한국의 독립운동가. 평양의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교직에 종사하던 중, 1920년 중국의 펑톈(奉天)지점으로 전근갔다가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암살을 계획하고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하여 1921년 조선총독부 청사 비서실에 폭탄을 던졌으나 암살은 실패하고, 베이징으로 망명하였다. 1922년 중국에 시찰온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암살하고자 동료들과 권총으로 사격하고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여 체포되었다. 일본 나가사키로 호송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0년 복역한 뒤 1943년 출소, 귀국하였으나 다시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 2021. 2. 3.
[일제강점기] 님 웨일스 님 웨일스 ★ 님 웨일스(Nym Wales, 1907~1997) :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Helen Foster Snow). 미국의 저널리스트로, 님 웨일스는 필명이다. 1930년대 중국 혁명가들을 취재하여 저서를 남겼으며, 옌안(延安)에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을 취재하고 김산의 전기 을 저술하였다. 은 조직 보호를 위해 한동안 출판을 미뤄달라는 김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1941년 미국에서 펴냈다. 2021. 2. 2.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산 김산 ★ 김산(金山, 1905~1938) : 한국의 사회주의 혁명가, 항일독립투사, 아나키스트, 국제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 본명은 장지학 또는 장지락. 어려서부터 아나키스트로 활동하였고,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가 황포 군관학교와 중산 대학 경제학과에서 수학한 뒤, 중국 공산당과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만주, 일본, 북경, 광동 등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였다. 1941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가 김산의 전기 을 출간하였다. 2021. 2. 2.
[일제강점기/의열투쟁]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사건에 사용한 폭탄(모형)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사건에 사용한 폭탄(모형) (물통, 도시락 폭탄) ★ 훙커우 공원 사건(虹口公園事件) : 1932년 4월 29일 중화민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왕의 생일(천장절) 행사와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 중에 한국의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일본의 주요 인사 여러명이 죽고 다친 사건이다. 윤봉길 의사는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이 사건 이후 중국 국민당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2021. 1. 7.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윤봉길 윤봉길 ★ 윤봉길(尹奉吉, 1908~1932) : 한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시인 겸 저술가. 학교를 졸업한 뒤, 농촌계몽활동과 교육운동을 하였다. 1930년 중국으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연(천장절)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 요인 여러명이 죽고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사형을 선고받았고,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당시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이 넘는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인 청년 윤봉길이가 해냈다”며 극한했고,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2021. 1. 7.
[일제강점기/일제의탄압과만행]일제강점기의 종로 경찰서 일제강점기의 종로 경찰서 ★ 종로경찰서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이었다. 2021. 1. 6.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조소앙이 집필한 김상옥 의사의 전기 조소앙이 집필한 김상옥 의사의 전기 ★ 김상옥(金相玉, 1890~1923)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 이후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항일 단체인 을 결성하여 황동하고 를 발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2년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 뒤, 피신 중에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서울역 주변을 배회하다 일본 경찰에 포위되어 싸우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자결하였다. 2021. 1. 5.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권총과 인장 김상옥 의사의 권총과 인장 ★ 김상옥(金相玉, 1890~1923)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 이후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항일 단체인 을 결성하여 황동하고 를 발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2년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 뒤, 피신 중에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서울역 주변을 배회하다 일본 경찰에 포위되어 싸우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자결하였다. 2021. 1. 5.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장검 김상옥 의사의 장검 ★ 3.1운동 때 시위에 참여한 여학생을 해치려는 일본 순사를 물리치고 빼앗은 장검 (독립기념관 소장) ★ 김상옥(金相玉, 1890~1923)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 이후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항일 단체인 을 결성하여 황동하고 를 발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2년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 뒤, 피신 중에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서울역 주변을 배회하다 일본 경찰에 포위되어 싸우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자결하였다. 2021. 1. 4.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신문 보도 김상옥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신문 보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 김상옥(金相玉, 1890~1923)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 이후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항일 단체인 을 결성하여 황동하고 를 발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2년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 뒤, 피신 중에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서울역 주변을 배회하다 일본 경찰에 포위되어 싸우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자결하였다. 2021. 1. 4.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묘 김상옥 의사의 묘 김상옥 의사의 묘(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 김상옥(金相玉, 1890~1923)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 이후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항일 단체인 을 결성하여 황동하고 를 발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2년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그 뒤, 피신 중에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서울역 주변을 배회하다 일본 경찰에 포위되어 싸우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자결하였다. 2021.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