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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신라중하대/불상] 신라 중하대(통일신라시대)의 약사여래상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신라 중하대(통일신라시대)의 약사여래상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약사여래(藥師如來) : 대승불교의 부처 중 하나로,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이다. 질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 재앙을 소멸시키고 수면을 연장시키며, 부처의 원만행을 닦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에서 대중의 큰 지지를 받았다. 신라시대부터 약사신앙이 대중화 된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약사전에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2024. 7. 23.
해넘이 140 해넘이 1402024년 6월 12일 2024. 7. 21.
[신라중대/정치행정] 집사부의 강화 집사부의 강화 ★ 집사부(執事部) : 651년(진덕 여왕 5년) 신라에서 설치된 국왕 직속의 최고 행정 기관이다. 중앙행정관청 14부가 속했으며 국가의 정책 전반을 관장하였다. 신라 중대에 집사부의 우두머리 시중의 권한을 강화하고 상대등의 기능을 축소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였다. 2024. 7. 8.
[남북국/신라중하대/불교유물유적] 석굴암 제 7 감실 보살상 석굴암 제 7 감실 보살상 ★ 석굴암 감실 조각상 : 나한상(부처의 10대 제자) 위에 10개의 작은 감실이 있는데, 안에 작은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다. 조각상은 유마거사상이 1개, 보살상이 8개 있다. 원래 10개였으나, 대한제국 때 일본인이 제1감실과 제10감실에 있던 조각상 2개를 반출해서 사라졌다. 지금은 그 자리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2024. 7. 3.
[고려전기/인물] 고려 태조 왕건(王建) 고려 태조 왕건(王建)  ★ 왕건(王建, 877~943년, 재위 918~943년) : 송악(松嶽, 개성)의 호족 출신으로 후삼국 시대 태봉의 장군이자 고려를 건국한 고려의 초대 국왕. 고려 태조(高麗 太祖). 896년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태봉의 세력을 넓히는데 공을 많이 세워, 최고 지위인 시중(侍中)에 올랐다. 918년 궁예의 독단과 전횡에 불만을 품은 호족들의 지지를 받아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이후 후백제와 치열하게 세력을 다투었다. 935년 신라 경순왕이 투항하여 신라를 합병하였고, 936년 내분으로 혼란에 빠진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통일 후에 호족과의 융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북진정책을 추진하였다. 2024. 6. 28.
[고려/정치행정] 고려의 지방관제 고려의 지방관제 2024. 6. 26.
[고려/정치행정] 고려의 중앙관제 고려의 중앙관제 2024. 6. 25.
[조선전기/능묘] 건원릉 벌초 건원릉 벌초 ★ 건원릉(健元陵) : 조선의 제1대 왕인 태조의 능묘로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이다. 태종 8년(1408)에 9월에 조성되었다. 동구릉(東九陵) 중 일부, 사적 제193호.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東九陵)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왕릉군. 191만 5891㎡에 달하는 구역에는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이 있다. 사적 제193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적 제193호.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 2024. 6. 25.
[고려전기/국제] 고려 전기의 동아시아 정세 고려 전기의 동아시아 정세 2024. 6. 24.
[고려]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발전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발전 2024. 6. 23.
[고려전기] 고려전기 연표 고려전기 연표 2024. 6. 22.
[일제강점기/민속] 병의 치유를 비는 제당(祭堂) 병의 치유를 비는 제당(祭堂)  병의 치유를 비는 제당(祭堂). 문에는 병을 쫓는 무장(武將)이 그려져 있다  노인은 자신의 신경통을 낫게 해달라고 5일동안 제당에서 빌었다(1919) 2024. 6. 20.
[일제강점기/의학] 콜레라 검역 3 콜레라 검역 3  임시 격리병사, 황해도 겸이포  채변 검사, 서울  환자 소독 및 시체 운반   사체 및 오물 소각, 경상남도 함양  콜레라 검역에 참여한 일본인 경찰과 헌병 2024. 6. 19.
[고려전기/국제] 고려 전기의 세계(11세기) 고려 전기의 세계(11세기) 2024. 6. 19.
[일제강점기/의학] 콜레라 검역 2 콜레라 검역 2  환자 색출을 위한 호구조사, 전라남도 영광  교통 차단, 경기도 인천  격리 구역 내 식량 배급, 평안남도 대동군  격리 구역 내 끓인물 공급, 경상남도 진주   콜레라를 피해 산으로 피난간 주민들, 강원도 금화군 2024. 6. 18.
[일제강점기/의학] 콜레라 검역 콜레라 검역  선박 검역, 군산항  중국 입항자 검역, 평안북도 의주군 구룡포 감시소  기차 검역, 전라남도 목포역  여행자 검사, 경상남도 함안 2024. 6. 17.
[일제강점기/의학] 세균 검사 세균 검사   의료진이 콜레라 균을 검사하고 있다출처 : 대정8년 호열자병 방역지 2024. 6. 16.
[일제강점기/의학] 콜레라의 아시아 대륙 대유행(1919) 콜레라의 아시아 대륙 대유행(1919)  출처 : 대정8년 호열자병 방역지 2024. 6. 15.
[일제강점기/의학] 콜레라 환자 분포도(1919) 콜레라 환자 분포도(1919)  출처 : 대정8년 호열자병 방역지 2024. 6. 14.
[근대/의학] 약상(藥商) 약상(藥商) 2024. 6. 13.
[근대/의학] 한약방(韓藥房) 한약방(韓藥房) 2024. 6. 12.
[일제강점기/의학] 최초의 한의사 모임(1915) 최초의 한의사 모임(1915) 2024. 6. 11.
[일제강점기/의학] 지석영 신문 기사 지석영 신문 기사 지석영을 조선의 로 칭한 신문기사  (매일신보 1931. 1. 25) ★ 지석영(池錫永, 1855~1935) : 조선 시대 말기의 문신, 의사, 한글 학자. 대한제국의 문관, 의생, 정치인, 한글학자, 교육자, 저술가. 고종 20년(1883) 문과에 급제하였고, 종두법의 하나인 우두법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 ~ 1823) : 영국의 의사이다. 천연두 예방법인 우두법의 발견하고 천연두 백신을 만들었다. 1980년 세계보건총회(WHA)는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했다. 2024. 6. 10.
[일제강점기/민족말살정책] 신사참배 강요 신사참배 강요 ★ 신사참배 강요(神社參拜強要) : 일제강점기에 한국 곳곳에 신사를 세운 뒤 한국인에게 참배하도록 강제한 정책. 처음에는 강요하지 않았으나, 1930년대 일본이 대륙 침략을 획책하면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점차 강제적인 정책으로 변하였다. 2024. 5. 23.
[조선/정치] 사림 계보 사림 계보  ★ 사림(士林) :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유학을 공부하던 문인과 학자로서 고려 말 온건파 사대부를 계승했다. 15세기 이후 조선 중기 중앙 정계를 주도한 정치집단이다. 훈구파에 대립하여 사림파(士林派)라고 불리기도 하며, 유림(儒林)으로도 불린다. 2024. 5. 17.
[조선/정치] 붕당 계보 붕당 계보  ★ 붕당정치(朋黨政治) : 각 붕당들 사이의 공존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운영 형태. 붕당은 조선 중기 이후 특정한 지역적,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이다. 상호비판과 견제를 통한 균형과 공존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과도한 정쟁으로 폐단이 생겨나자, 조선 후기에 탕평론 등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에 세도정치가 등장하며 막을 내렸다. 2024. 5. 14.
[일제강점기/경제] 서민들의 농촌 취락(1930년대) 서민들의 농촌 취락(1930년대) 2024. 5. 14.
[조선/정치] 붕당 계보 붕당 계보       ★ 붕당정치(朋黨政治) : 각 붕당들 사이의 공존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운영 형태. 붕당은 조선 중기 이후 특정한 지역적,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이다. 상호비판과 견제를 통한 균형과 공존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과도한 정쟁으로 폐단이 생겨나자, 조선 후기에 탕평론 등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에 세도정치가 등장하며 막을 내렸다. 2024. 5. 13.
[일제강점기/문화] 양장을 한 여인 양장을 한 여인 2024. 5. 9.
[일제강점기] 돈의문(1910년대) 돈의문(1910년대) ★ 돈의문(敦義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이다. 근대 이후부터 서대문(西大門)으로도 불린다.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으나 1915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현재 돈의문 자리에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2024.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