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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고사성어

관포지교 管鮑之交

by hwawoon 2024. 11. 22.

 

관포지교 管鮑之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을 이르는 말로 시류나 정세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우정을 일컫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사람인 관중과 포숙아는 매우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제나라(齊)의 관리로 관중은 공자 규(糾)를, 포숙아는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小白)을 모시는 측근이었다.

 

  어느날 제나라의 임금이자 규와 소백의 아버지인 양공(襄公)이 사촌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살해되자(B.C.686년) 관중은 규와 함께 노나라(魯)로 포숙아는 소백을 따라 거나라(莒)로 망명했다.

 

  다음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규와 소백은 먼저 제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차지하려 하였다. 관중과 포숙아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적이 되었다. 결국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돌아가 왕위에 올라 환공(桓公)이 되어 규을 죽이고 관중을 압송했다.

 

  환공이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살려주기를 청했다.

  “전하, 관중은 저보다 몇 배 뛰어난 인재입니다. 전하가 제나라의 군주로 만족하신다면 신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를 재패하려 한다면 반드시 관중과 같은 걸출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관중을 살려 중히 쓰십시오.”

  환공은 포숙아의 조언을 듣고 관중을 살려 대부(大夫)로 임명했다.

 

  관중은 훌륭한 재상이었다.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선정을 베풀어 환공이 춘추시대의 패자(覇者)가 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관중은 평생 포숙아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깊은 우정을 품고 살았다. 후일 관중은 포숙아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할 때, 나는 항상 더 많은 이득을 차지했지만 포숙아는 나를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그를 궁지에 빠트려도 그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일을 하다보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번이나 벼슬자리에서 쫓겨났지만 그는 나를 무능하다 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이해해 주었다. 내가 싸움터에서 도망쳐도 그는 내게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牙也).”

- 출처 : 사기 관안열전(史記 管晏列傳), 열자 역명편(列子 力命篇)

 

 

- 한자풀이

관(管) : 대롱, 피리

포(鮑) : 절인 어물

지(之) : 가도, ~의

교(交) : 사귀다

 

- 유의어 : 문경지교(刎頸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교칠지교(膠漆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 반의어 : 시도지교(市道之交)

 

 

사기(史記)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 遷)이 지은 역사서로 신화시대부터 전한의 한무제(漢武帝) 때 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기의 서술 방식인 기전체는 동아시아에서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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