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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건축] 팔달문(八達門) 팔달문(八達門)  ★ 팔달문(八達門) : 화성의 남문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이 많이 오갔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추었으며,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2013년 해체・수리하였다. 보물 제 402호. 2024. 11. 21.
과유불급 過猶不及 과유불급 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의미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어느날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자장은 뛰어나지만 매사에 지나친 면이 많고 자하는 부족한 것이 많구나.”  “자장이 더 낫군요?” “아니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은 법이다(過猶不及).”  공자는 치우침 없는 중용과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 출처 : 논어 선진편(論語 先進篇)  - 한자풀이 과(過) : 지나다유(猶) : 같다불(不) : 아니다급(及) : 미치다 논어(論語)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공자의 제자와 문인들이 편찬했다. 공자(孔子 B.C. 551년 ~ B.C. 479년)  고대 중국 춘추시.. 2024. 11. 20.
해넘이 142 해넘이 1422024년 11월 19일 2024. 11. 19.
공중누각 空中樓閣 공중누각 空中樓閣     허공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근거나 토대가 없는 생각이나 사물, 현실성 없는 일, 알맹이 없는 글이나 이론 등을 말한다.   중국 산동성 (山東省) 앞바다에 나타난 신기루     송(宋)의 학자 심괄의 저서 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등주(登州)는 사면이 바다와 접한 곳이다. 봄과 여름에는 멀리 하늘 위에 성과 시장, 누각(城市樓閣)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를 해시(海市)라고 한다.”  이것은 빛의 굴절에 의해 나타나는 “신기루”로,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보이거나 바다 한가운데서 육지가 보이기도 한다. 현대인에게는 단순한 자연현상이겠지만 옛날 사람에게는 신비롭기 그지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훗날 청(淸)의 학자 적호(翟灝)의 저서 에는 이렇.. 2024. 11. 19.
곡학아세 曲學阿世 곡학아세 曲學阿世    그릇된 학문으로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학문의 정도(正道) 벗어나 시류에 영합하여 출세에 학문을 이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곡학아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친일사학자 이병도.일제강점기에 출세를 위해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하였다.일왕(日王)으로부터 일등 공신 훈장을 받았다.    한(漢)의 6대 황제 경제(景帝, B.C. 157 ~ 141년)는 즉위하자 자신을 보좌할 인재를 찾기 시작했다. 경제는 산동(山東)의 원고생(轅固生)이라는 문인을 등용하기로 결정했다.    원고생은 90세 노인이었지만 강직하고 대쪽 같은 성품이라 권력 앞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경제의 신하들은 원고생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 2024. 11. 18.
고침안면 高枕安眠 고침안면 高枕安眠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하게 잔다는 의미로, 근심걱정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221년) 중국은 여러나라로 갈라진 혼란의 시대였다. 그 중 연(燕) ․ 위(魏) ․ 제(齊) ․ 조(趙) ․ 진(秦) ․ 초(楚) ․ 한(韓), 일곱 나라가 패권을 다투었다(戰國七雄).   전국칠웅(戰國七雄)    이 시대 세객(說客)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여러나라를 돌며 자신의 이상과 능력을 펼칠 기회를 잡고자 했다. 장의는 강대국으로 떠오른 진나라를 여섯 나라가 상국으로 섬기는 연횡책을 주장했고, 소진은 여섯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의는 진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섯 나라의 왕들을 위협했다. 장의는 .. 2024. 11. 17.
[조선후기/인물/실학자] 최한기 최한기  ★ 최한기(崔漢綺, 1803~1879)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지리학자, 철학자, 사상가, 저술가이다. 기 철학론과 기 우위론을 제창하였고, 김정호 등과 함께 지도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2024. 11. 17.
고복격양 鼓腹擊壤 고복격양 鼓腹擊壤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는 의미로,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의 신화 속의 성군(聖君) 요(堯)동아시아에서 훌륭한 군주의 표상이다(그림 출처 : 위키백과)     먼 옛날 중국에 훌륭한 임금으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민심을 살피러 잠행을 나섰다. 어느 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요 임금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지내는 것은         立我烝民(입아증민)모두 임금님의 지극한 은덕이라네      莫匪爾極(막비이극)우리는 아는 것이 없지만                 不識不知(불식부지)임금님이 정하신대로 살면 된다네      順帝之則(순제지측)    요 임금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거리로 들어서자 백발의 노인이 한.. 2024. 11. 16.
계명구도 鷄鳴狗盜 계명구도 鷄鳴狗盜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내는 도둑이라는 뜻으로 사소한 잔재주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사공자로 이름을 떨쳤던 맹상군(孟嘗君)은 세상의 인재들과 교류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글 잘하는 선비부터 잡기에 능한 사람까지 신분에 개의치 않고 재주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맹상군의 손님이 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鷄鳴)과 개 가죽을 덮어 쓰고 물건을 훔치는 도둑(狗盜)도 있었다.    어느날 맹상군은 진나라 소양왕(秦 昭襄王)이 재상이 되어 줄 것을 청했다(B.C. 289년). 맹상군은 내키지 않았지만 제나라와 진나라의 관계를 생각해서 수락하고 진나라로 떠났다. 이때 식객 몇 명이 따라갔는데 그 중에는 닭 울음 소리를 .. 2024. 11. 15.
계륵 鷄肋 계륵 鷄肋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살이 적고 먹기 불편하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닭갈비처럼 별로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말(219년), 조조(曹操)는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차지하자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지세가 험한데다가 유비군은 보급로를 끊고 정면 대결은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전투다운 전투도 못한 채 조조군의 사기만 떨어져 갔다.    조조는 지지부진한 상황도 싫고 한중에 별 미련도 없어 철군하고 싶었지만 빈손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 그 날 저녁이 닭고기였는데 살도 별로 없고 먹기도 불편한 닭갈비가 꼭 한중 땅 같았다.     그때 하후돈이 들어와 암호를 무엇으로 할지 문자 조조는 “.. 2024. 11. 14.
계군일학 鷄群一鶴 계군일학 鷄群一鶴     닭의 무리 사이의 한 마리 학이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있음을 말한다.    죽림칠현도(이명기 작,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명인 혜강(嵇岡)은 위나라의 중산대부(中散大夫)였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을 당했다. 그때 혜강의 아들 혜소(嵇紹, ? ~ 308년)는 열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이였다. 혜소는 총명하고 뛰어난 청년으로 자라났다.    혜소의 재주를 아낀 중신 산도는 그를 무제(사마염)에게 천거했다.   “폐하, 혜소가 비록 죄인의 자식이기는 하나 총명하고 박학함이 춘추시대 진나라의 대부 극결에 뒤지지 않습니다. 혜소를 비서랑(秘書郞)으로 하심이 어떠할지요.”  무제는 산도의 추천을 받아들여 혜소를 비서랑 보다.. 2024. 11. 13.
해넘이 141 해넘이 1412024년 11월 5일 2024. 11. 7.
계구우후 鷄口牛後 계구우후 鷄口牛後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큰 집단의 말단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진나라(秦)가 강성해지자 주변 나라들을 진의 압박을 막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당시 동주(東周)은 출신 유세객 소진(蘇秦)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을 주장했으나 왕들은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기 않고 연나라(燕)의 왕에게 합종책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연나라 왕은 그에게 벼슬을 내려주었다.    그 후 소진은 여러 나라를 돌며 합종책을 설파하며 동맹을 맺도록 했는데 한나라(韓)를 방문했다. 소진은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에게 이렇게.. 2024. 10. 30.
경원 敬遠 경원 敬遠    공경하되 가까이하지 않거나 공경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꺼리고 멀리함을 뜻한다.  공자(孔子)     어느날 공자(孔子)의 제자 번지(樊遲)가 물었다.   “스승님, 지(知)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자 힘쓰고 혼령(魂靈)과 신(神)에 대해 존경하되 멀리한다면(敬鬼神而遠之) 그것을 지(知)라 할 수 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도 사람들은 점과 운세를 보는데 옛날에는 오죽했을까? 옛날 사람들 대부분은 귀신의 존재를 믿었고 미신에 의존했다. 당시의 고달픈 삶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자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현실을 중요시했다.   오늘날 경원(敬遠)은 존경한다는 의미는 퇴색하고 꺼.. 2024. 10. 29.
경국지색 傾國之色 경국지색 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의 미인이라는 뜻으로 미모(美貌)가 매우 뛰어난 여인을 의미한다.  영화 의 한 장면여주인공 샤오메이(장쯔이)가 가인곡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    중국 한무제(漢武帝)때 협률도위(음악을 관장하는 벼슬) 이연년(李延年)은 무제에게 가인곡(佳人曲)이라는 노래를 지어 올렸다.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北方有佳人 북방유가인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 미인              絶世而獨立 절세이독립 눈길 한 번에 성이 기울고                 一顧傾人城 일고경인성 눈길 두 번에 나라 기우네                 再顧傾人國 재고경인국 어찌 나라 기우는 것을 모르오리마는    寧不知傾國 영불지경국 아름다운 이는 다시 얻기 .. 2024. 10. 28.
결초보은 結草報恩 결초보은 結草報恩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결초보은의 풀 수크령 (사진출처 : Treeinfo)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나라(晉) 문공(文公)의 휘하에는 위무자(魏武子)라는 뛰어난 장수가 있었다. 그는 전장에 나갈 때마다 두 아들 위기(魏顆)와 위과(魏錡)에게 자신이 죽거든 애첩(愛妾) 조희(祖姬)를 좋은 집에 개가(改嫁 : 재혼)시키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런데, 임종할 때에는 조희를 자신과 함께 순장(旬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에 왕족이나 귀족이 죽으면 첩(妾)이나 노비(奴婢)를 죽여 순장(旬葬)하곤 했다.  위기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조희를 순장시키려 했지만 위과는 반대하였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언제나 서모(庶母 :.. 2024. 10. 27.
견토지쟁 犬免之爭 견토지쟁 犬免之爭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으로 둘이 싸우는 사이에 제 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보는 것을 뜻하며, 쓸데없는 싸움을 뜻하기도 한다.   (사진출처 : 대전일보)    전국시대 제 나라(齊)에는 순우곤(淳宇髡 )이라는 세객(說客)이 있었다. 제나라 왕이 위나라(魏)를 치고 싶다는 뜻을 비치자 순우곤은 이렇게 말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명견(名犬)과 동곽준(東郭浚)이라는 날랜 토끼가 있었습니다. 한자로는 동곽준을 잡으려 쫓아갔지만 토끼가 너무 빨라 잡을 수가 없었지요. 둘은 산을 세바퀴 돌고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더니 둘 다 지쳐 죽고 말았답니다. 죽은 개와 토끼를 발견한 농부(田父)는 횡재(之功)를 했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가 대치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백성도 .. 2024. 10. 26.
[삼국문화의일본전파/고구려] 강서대묘와 다카마쓰 고분의 사신도(청룡) 강서대묘와 다카마쓰 고분의 사신도(청룡)   ★ 사신도(四神圖) :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함께 그린 그림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많이 나타난다. 무덤의 사방을 수호하는 영물(靈物)로서 많이 그렸으며, 도교(道敎)의 영향을 보여준다. 쌍영총의 창룡도(蒼龍圖)와 강서대묘의 사신도가 가장 우수하고 유명하다.  ★ 강서대묘(江西大墓) : 북한의 남포특별시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의 벽화 고분으로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이다(기저 지름 약 51.6m, 높이 8.86m). 외방 구조의 굴식 돌방 무덤으로 모줄임천정이다. 널방에 벽에 사신도(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다. 축조 시기는 7세기로 추정한다. ★ 다카마쓰 고분(高松塚古墳) : 일본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촌에 위치한 고분으로 7세.. 2024. 10. 26.
걸해골 乞骸骨 걸해골 乞骸骨     ‘해골을 빈다’는 뜻으로, 관료가 나이 들어 정사를 볼 수 없을 때 군주에게 물러나기를 청하는 말이다. 과거에 노신(老臣)이 은퇴할 때 쓰던 말이다.   항우의 책사 범증항우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버림받고 객사하고 말았다범증을 비롯한 많은 충신을 내친 항우는 천하제패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사진출처 : 초한지-천하대전)    진(秦)이 망하자 각지의 군웅들은 패자가 되고자 전쟁을 벌였다. 그중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와 한왕 유방(漢王 劉邦)은 가장 강력한 군웅이자 라이벌이었다. 두 군웅은 격렬하게 싸웠지만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방은 초나라의 도읍 팽성(彭成)을 공격하였다가 참패를 당하고 형양(螢陽)으로 도망쳤다. 군량마저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자 항우에게 휴.. 2024. 10. 25.
[삼국의대외교류] 아프랍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인 아프랍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인 ★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Afrasiab Painting) : 1965년 우즈베키스탄의 옛 사마르칸트 지역에서 발굴된 스키타이-소그드의 대표적인 예술 유적으로, 7세기 중반의 것으로 추정한다. 서쪽 벽화의 중앙 부분에서 고구려인 두 명이 발견되었다. 고구려 특유의 복식인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찬 모습이다. 2024. 10. 25.
건곤일척 乾坤一擲 건곤일척 乾坤一擲    ‘하늘과 땅을 걸고 한판 승부를 건다’는 뜻으로 운명을 걸고 승패를 겨루거나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결행함을 이른다.  영화 중 한 장면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진(秦)이 망하고 각지에서 군웅들이 일어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자가 초패왕 항우(초覇王 項羽)와 한왕 유방(漢王 劉邦)이었다. 두 군웅은 몇 년 동안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싸웠지만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홍구(鴻溝 : 현재 중국 하남성 소재)를 경계로 휴전을 하고 천하를 양분하기로 했다.    말머리를 돌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던 중 유방의 참모인 장량과 진평이 철군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한나라가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고 수많은 제후들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 2024. 10. 24.
개권유익 開卷有益 개권유익 開卷有益   책을 펼치면 유익하다는 의미로 독서를 권할 때 사용되는 성어이다. 송 태종(宋太宗, 재위 976~997)    송나라(宋) 태종(太宗)은 책읽기를 무척이나 즐겼으며 특히 역사서를 좋아하였다. 태종은 이방(李昉)을 비롯한 10여명의 학자에서 사서(辭書 : 백과사전)을 편찬할 것을 명하여, 7년 만에 빛을 보았다. 1천 권에 달하는 엄청난 사서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수많은 지식을 담고 있어 지금도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태종의 연호를 따서 이름 붙이고 매일같이 탐독하였다(나중에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고쳐 불렀다).   산더미 같은 정무를 보면서도 태종은 매일 3권 이상 읽었고, 3권을 다 읽지 못한 날은 쉴 때마다 읽었다. 보다 못한 신하들이 건강을 해칠까 말리자 이렇게 말하며 책.. 2024. 10. 23.
[삼국문화의일본전파/신라] 신라와 일본의 금동가위 신라와 일본의 금동가위  동궁과 월지(안압지)의 금동가위(왼쪽)일본 쇼쇼인의 금동가위(오른쪽) 2024. 10. 23.
간담상조 肝膽相照 간담상조 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마음을 터놓고 진심으로 사귀는 일, 또는 그러한 사이를 말한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문장가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은 매우 절친하여 사람들은 이 둘을 합쳐 한유(韓柳)라 부를 정도였다. 유종원(왼쪽), 한유(오른쪽)   유종원은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개혁적인 정치인이기도 했다. 귀족과 환관의 전횡을 막기 위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유주자사로 좌천되어 있던 중에, 그의 절친한 친구 유우석이 파주자사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파주는 몹시 외진 곳이어서 유우숙은 노모를 두고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친구의 딱한 사정을 들은 유종원은 자신의 임지와 유우석의 임지를 바꾸어 줄 것을 자청하며 상소를 올렸다. 유주.. 2024. 10. 22.
[청동기시대] 한국과 일본의 교류(손잡이 달린 항아리) 한국과 일본의 교류(손잡이 달린 항아리)  경기도 수석리 유적 출토 손잡이 달린 항아리(왼쪽)일본 사가현 스치우 유적 출토 손잡이 달린 항아리(오른쪽) 2024. 10. 22.
[고려] 개경의 궁궐 배치 추정도 개경의 궁궐 배치 추정도 2024. 10. 21.
[삼국문화의일본전파/백제] 백제의 청동거울과 일본의 청동거울 백제의 청동거울과 일본의 청동거울  공주 무령왕릉 출토 청동거울(의자손수대경, 6세기전반)(왼쪽)일본 간논야마 고분 출토 청동거울(6세기 후반)(오른쪽) 2024. 10. 21.
[조선중기/인물] 강홍립 강홍립 후금-명 전쟁에 참전한 강홍립과 조선군 후금에 항복하는 강홍립과 조선군 ★ 강홍립(姜弘立, 1560~1627) : 조선의 문관, 군인. 광해군 때 명나라에 지원병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후금(청나라)의 교전을 피하다가 투항했다. 출전 전에 추금에 투항하라는 광해군의 밀지를 받고 참전하였으며,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성사시켰다. 인조반정(1623)으로 광혜군이 폐위되고, 이괄의 난(1624)을 주도했던 한윤과 한택 형제가 후금에 투항하여 강홍립 휘하로 들어가 정묘호란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정묘호란(1627) 때 막후에서 외교수완을 발휘하여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 데 일조하였다. 정묘호란 중에 병사하였으며(1627) 묘는 서울시 관안구 난향동에 있다. 2024. 10. 21.
[지형/해안지형] 방파제 방파제  ★ 방파제(防波堤) :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거친 파도를 막아 항구 안의 수면을 잔잔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바다에 쌓은 둑. 2024. 10. 20.
[삼국문화의일본전파/신라] 신라의 금관과 일본의 금동관 신라의 금관과 일본의 금동관  ★ 왼쪽부터 황남대총 북분 금관,  경상북도 상주 출토 금동관, 일본 군마현 긴칸즈카 고분 출토 금동관 2024.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