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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40

[남북국/발해/고분] 정효공주묘 묘지석 정효공주묘 묘지석  정효공주 묘지(실물)  정효공주 묘지(탁본) ★ 정효공주묘 묘지석(貞孝公主墓 墓誌石) :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 묘에서 발견된 묘지석. 묘실 안쪽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공주의 사망 시기 및 무덤의 축조연대(793) 등의 사실과 발해가 자주적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문왕의 존호(尊號)가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이었고, 대흥(大興)과 보력(寶曆)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문왕을 황상(皇上)이라 칭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2019. 7. 9.
[남북국/발해/공예] 발해 삼채 발해 삼채 ★ 발해삼채(渤海三彩) : 발해는 다양한 수공예품을 생산했는데 자기(瓷器)도 그 중 하나였으며, 주요 수출품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당삼채(唐三彩)의 영향을 받아 3가지 이상의 유약을 발라 구워낸 발해삼채(渤海三彩)를 생산하였다. 주로 갈색과 녹색이 오묘한 조화를 이뤄 은은한 멋을 내는 것이 발해 삼채의 특징이었다. 2019. 7. 8.
[남북국/발해/불교유물유적] 발해석등 발해석등  ★ 발해석등(渤海石燈) : 남북국시대 발해의 석등.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 제2절터에서 발견된 석등이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6.3m이다. 9세기 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며, 신라 중하대의 석등 양식에 영향을 받았고, 힘찬 느낌을 주는 연꽃 무늬는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였다. 중국 흑룡강성 영안시 소재. 2019. 7. 8.
[남북국/발해/불교유물유적] 발해 이불병좌상 발해 이불병좌상     ★ 발해 이불병좌상(渤海 二佛竝坐像) : 발해의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에서 발견된 이불병좌상. 응회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29㎝이다. 발해 건국 초기인 70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불상은 사각형 대좌 위에 나란히 앉아있고 양 옆에 협시 보살이 있다.  불상 뒤에 큰 주형 광배 2개가 있고, 머리 주변에는 연꽃무늬로 된 두광(頭光)이 조각되어 있다. 부처들이 입은 두꺼운 법의는 대좌아래로 늘어져 있다. 왼쪽 부처의 육계(肉髻)는 크고 둥글며, 머리는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얼굴은 약간 길지만 통통한 달걀형이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다. 오른쪽 부처의 얼굴이 부서져 있으나, 왼쪽 부터와 거의 같은 모습일 것으로 생각된다. 날카로운 광배와 두꺼운 법의, 양감이.. 2019. 7. 8.
[남북국/발해] 발해 부흥 운동 발해 부흥 운동 ★ 발해 부흥운동(渤海復興運動, 926~1116) : 발해 멸망(926) 이후, 발해 유민들은 이 발해의 고토(故土) 영역에서 후발해, 정안국, 흥료국, 대발해국 등의 나라를 세워 거란(요), 요진(금)에 대항하였다. 이들의 저항은 1116까지 이어졌으나 모두 실패하고, 발해의 영토는 요와 금에 병합되었다. 이후 일부 유민들은 고려(高麗)로 망명하였다. 2019. 7. 7.
[남북국/발해] 발해의 멸망 발해의 멸망  ★ 발해(渤海)의 멸망(926) : 10세기 초, 당시는 중원은 5대10국(五代十國), 한반도는 후삼국(後三國)으로 분열된 혼란의 시대였다. 916년 거란은 부족을 통일하고 대거란국(大契丹國)을 건국하였고, 발해와 대립하였다. 요동(遼東)을 두고 오랫동안 벌인 전쟁에서 발해가 패하여 요동을 빼앗겼으나, 924년 다시 요동을 탈환하는 등, 군사력이 건재하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말갈족이 이탈하고 지배층의 일부가 고려로 귀화하는 등 분열과 혼란이 이어졌다. 거란은 이 틈을 노려 요동 방어선을 우회해서 공격하여 발해의 수도(상경용천부)를 함락시켰으며, 발해는 멸망하였다(926). 2019. 7. 7.
[남북국/발해/건축] 발해 치미 발해 치미  발해의 치미  고구려의 치미 ★ 발해 치미(渤海 鴟尾) : 상경 용천부의 제 1 절터에서 발견된 치미. 높이 87cm, 너비 39cm. 몸체에는 덩굴 무늬(당초문)이 장식되어 있고 선으로 짓을 장식하였고, 그 아래에는 5개의 꽃 무늬가 있다. 발해의 치미는 고구려의 치미와 형태나 문양 등이 유사하여,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했음을 보여준다.★ 치미(鴟尾) : 전근대 동아시아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 중국의 한(漢)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궁궐이나 불교 사원과 같은 규모가 크고 중요 건물에 설치하였다. 주로 점토로 제작하였고, 접합부에 홈을 파서 지붕에 설치하였다. 2019. 7. 7.
[남북국/발해/정치행정] 발해의 지방 제도 발해의 지방 제도   ★ 발해의 지방제도 : 전국을 5경(京) · 15부(府) · 62주(주)로 구분하고 있었다. 5경은 발해의 왕족 및 고구려 계통의 귀족들의 필요에 의해 설치되었고, 15부는 지방행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아래 62주를 거느리고 다스렸다. 2019. 7. 6.
[남북국/발해/정치행정] 발해의 3성 6부제 발해의 3성 6부제      발해의 3성 6부제    당의 3성 6부제 ★ 발해의 3성 6부제 : 발해는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였으나, 그 명칭과 운영을 달리하여 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 3성 6부제(三省六部制) : 과거 중국 왕조의 중앙 정치 제도이다. 이는 주변국에도 영향을 끼쳐 발해, 고려, 과거 베트남 왕조 등 중국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앙 정치 제도에도 적용되었다. 2019. 7. 6.
[남북국/발해/정치행정] 발해 5경(渤海 五京) 발해 5경(渤海 五京)  ★ 발해 5경(渤海 五京) : 발해의 행정 구역은 5경(京), 15부(府), 62주(州)로 조직되었다. 그 중 5경은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한 행정구역으로, 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 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가 있었다. 2019. 7. 6.
[남북국/발해] 발해의 건국과 발전 발해의 건국과 발전   ★ 발해(渤海, 698~926) :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연합하여 동모산 일대에 세운 나라. 대조영(高王)은 천손임을 자처하고 독자적 연호를 제정하였고, 무왕과 문왕대에 당, 신라, 일본과 외교와 무역을 하였다. 선왕대에 요동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지방제도를 정비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에서는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르기도 했다. 926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1116년까지 발해 부흥운동이 이어졌으나 모두 실패하고 요나라와 금나라에 병합되었다. 2019. 7. 5.
[남북국/발해] 발해의 건국 발해의 건국  ★ 발해의 건국(渤海, 698~926) : 고구려가 멸망한(668) 뒤 유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영주(榮州)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거란인 등 여러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 696년 당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거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걸걸중상이 이동 중 전사하자 대조영은 무리를 이끌로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을 무찌르고 동모산 일대(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자치주)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振)이라 하였다(698). 대조영은 고구려 계승을 천명하고 천통(天統)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였.. 2019. 7. 5.
[남북국/발해] 발해의 건국(지도) 발해의 건국    ★ 발해의 건국(渤海, 698~926) : 고구려가 멸망한(668) 뒤 유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영주(榮州)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거란인 등 여러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 696년 당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거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걸걸중상이 이동 중 전사하자 대조영은 무리를 이끌로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을 무찌르고 동모산 일대(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 자치주)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振)이라 하였다(698). 대조영은 고구려 계승을 천명하고 천통(天統)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 2019. 7. 5.
[남북국/발해] 동모 산성 터 동모 산성 터   ★ 동모산(東牟山) : 발해의 초기 도읍지로 알려져 있으며 대조영과 고구려 유민들이 이곳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현재의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둔화 시 일대로 추정된다. 2019. 2. 3.
발해와 신라의 무역 발해와 신라의 무역 2015. 11. 14.
발해 무역로 발해 무역로 2015. 11. 5.
발해의 3성 6부제 발해의 3성 6부제 발해의 3성 6부제 당의 3성 6부제 2015. 10. 28.
발해 지도 발해 지도 2015. 10. 27.
발해 상경성 발해 상경성 2015. 10. 22.
발해는 한국의 역사 출처 : 사이버 외교관 반크 2012.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