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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186

[신라상대/정치행정]경주 남산 신성비 경주 남산 신성비 ★ 경주 남산 신성비(慶州南山新城碑) : 신라 진평왕 13년(591) 신라 도성인 경주의 남산에 산성(남산 신성)을 쌓을 때 축성 공사와 관련한 내용을 새겨 세운 비석. 지금까지 총 10개의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각 비문의 내용과 형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축성 시기, 공사 구간, 공사 인원, 관리자의 책임 여부 등이 기록되어 있다. 2023. 5. 1.
[신라중하대/고분]김유신 묘 십이지상 탁본(호랑이) 김유신 묘 십이지상 탁본(호랑이) ★ 김유신묘(金庾信墓) : 신라의 장군이자 재상이었던 김유신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분. 신라중대(통일신라)의 고분으로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이다. 봉분 자락에 면석과 탱석을 24개씩 사용한 호석 구조이며, 회랑을 따라 난간석을 둘렀다. 탱석에는 십이지신상을 부조로 새겼다. 8~9세기 신라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김유신묘가 아니라 신라 45대 왕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 소재. 사적 제 21호. 2023. 4. 15.
[신라/정치행정]울진 봉평리 신라비(탁본) 울진 봉평리 신라비(탁본) ★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비석. 1988년 발견되었다. 비무 일부가 마모되어 정확한 판독은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장방형의 자연 화강암에 한 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예서풍의 10행 398자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작으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하다. 비문의 내용은 당시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지역 주민과의 분쟁과 이 처리 과정 및 결과 등이다. 6세기 신라의 영토, 율령체제, 왕권의 한계, 관료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국보 제242호. 2023. 4. 9.
[신라/정치행정]포항 냉수리 신라비 포항 냉수리 신라비 ★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 : 경상북도 영일군(현재 포항시)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석비.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89년에 발견되었다. 자연석의 앞면, 뒷면, 윗면 삼면에 글을 새겼으며, 앞면 12행 152자, 뒷면 7행 59자, 윗면 5행 20자 등 총 231자가 쓰여져 있다. 비문은 지증왕을 비롯한 신라 6부의 대표 7명이 주민의 재산 상속 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다. 국보 제264호.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사무소 마당에 있다. 2023. 4. 7.
[신라/유적]경주역사유적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와 대릉원지구 ★ 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 : 2000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대한민국의 세계유산으로 경주시 일대의 신라 유적,유물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월성지구(月城地區), 황룡사지구(黃龍寺地區), 산성지구(山城地區), 남산지구(南山地區), 대릉원지구(大陵苑地區)의 5개 지구로 나뉜다. 2023. 3. 27.
[신라/유적]경주 월성(상상도) 경주 월성(상상도) ★ 경주 월성(慶州 月城)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시대에 궁궐.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 또는 반월성이라 불렀다. 2017년부터 발굴조사중이다. 101년(파사왕 22)에 건립되었다는 기록과 달리 4~5세기 경에 완공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적 제16호. 2023. 3. 26.
[백제/유적]서울 풍납동 토성 유적의 창고 유구 서울 풍납동 토성 유적의 창고 유구 ★ 서울 풍납동 토성 (서울 風納洞 土城) : 백제시대 초기(한성백제) 한강변에 흙으로 쌓은 평지성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백제의 왕성유적이다. 서울 송파구에 있다. 원래는 둘레는 3.5㎞에 달하는 대규모 토성이었으나, 한강과 맞닿은 서쪽 성벽이 유실되어 지금은 2.1km정도만 남아있다. 토성 내부에서 발굴조사에서 중요 유구와 수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한성백제기 최고 상류층 사용 주요시설이 확인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31.
[백제/국제관계]백강 전투(白江戰鬪) 백강 전투(白江戰鬪) ★ 백강 전투(白江戰鬪) : 663년 백강(현재 금강 하구)에서 벌어진 백제·왜의 연합군과 당·신라의 연합군이 벌인 전투.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하자 유민들은 부흥운동을 벌였고, 백제와 긴밀한 관계였던 왜(倭)는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였으며, 663년 대규모의 수군을 파병하였으나, 백강(금강 하구)에서 나당엽합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전멸하였다. 내분과 왜의 원군마저 패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결국 실패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6.
[백제/정치]백제의 멸망 백제의 멸망 ★ 백제의 멸망 :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사건.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3.
[백제/고분]의자왕 가묘 의자왕 가묘 ★ 의자왕 가묘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군 내에 조성된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 ★ 의자왕(義慈王, 599~660, 재위 641 ~ 660) : 백제의 제 31대 왕이자 마지막 왕.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젊은 시절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칭송받았으나 말년에 방탕과 실정을 일삼았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왕족들과 함께 당나라 낙양으로 끌려갔다. ★ 부여융(扶餘隆, 615~682) : 백제의 왕족이자 당나라 장군으로 의자왕의 아들 중 한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에 귀순하여 백제 부흥운동 토벌에 협조하고 당나라의 백제군공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백제 유민들을 약탈하였다. 당나라에서 광록대부 태.. 2022. 12. 17.
[백제/고분벽화]동하총(능산리 1호분) 백호도 동하총(능산리 1호분) 백호도 ★ 동하총(東下塚, 능산리 1호분)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 중 하나로 백제에서 보기 드문 벽화고분이다. 화강암과 편마암을 다듬어 축조한 굴식돌방무덤이며 널방 벽에는 사신도(四神圖)가 천정에는 인동과 연꽃 구름 등이 그려져 있다. 백제 사비시대(538~660)에 축조되었으며 고분군 서쪽에서는 백제 왕실 절로 추정되는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6.
[백제/고분]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후기 고분들로 사비의 외곽성인 나성 밖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여러차례 발굴이 이루어졌다.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 부여)에 조성되었으며, 20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중에 벽화고분인 동하총(능산리 1호분)이 있다. 고분 왼쪽에는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가 있으며, 1993년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으며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 사적 제 14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3.
[백제/유물]부여 목간(扶餘木簡) 부여 목간(扶餘木簡) ★ 부여목간(扶餘木簡) :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된 목간. 백제의 행정구역과 호구조가, 도랼형 등이 표기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1.
[백제/불교미술]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禮山 花田里 石造四面佛像)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조사면불상으로 백제의 유일한 사면불(四面佛)이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보이는 여래좌상이,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다. 서면과 북면은 머리가 많이 훼손되었고 4면 모두 손이 유실되었다. 불상 모두 머리부분에 불꽃과 연꽃무의 광배가 있다. 성왕이 무령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령왕릉이 완성된 뒤인 527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794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0.
[백제/정치]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백제왕 즉위 기사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백제왕 즉위 기사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1. 29.
[백제/건축]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후) 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후)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5.
[백제/건축]미륵사지 석탑 서탑 복원안 미륵사지 석탑 서탑 복원안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4.
[백제/건축]미륵사지 석탑 서탑 입면도(복원전) 미륵사지 석탑 서탑 입면도(복원전)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3.
[고구려/고분]방앗간(안악 3호분) 방앗간(안악 3호분)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6.
[고구려/고분]마굿간(안악 3호분) 마굿간(안악 3호분)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