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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2319

[조선후기/민중봉기] 조선 후기의 농민 봉기 조선 후기의 농민 봉기 2017. 3. 31.
세도정치와 외척 가문 세도정치와 외척 가문 2017. 3. 30.
[조선후기/경제/상업] 조선 후기의 상업 발달 조선 후기의 상업 발달 2017. 3. 29.
조선의 민속놀이와 민요 조선의 민속놀이와 민요 2017. 3. 28.
[조선후기/학문과사상] 실학의 발달 실학의 발달  ★ 실학(實學) :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대두된 일련의 현실개혁적 조선 유학의 학풍. 성리학이 관념적인 것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을 비판하며 양반 사대부 중심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근대 이후 실학은 개화 사상으로 계승되었다. 2017. 3. 27.
[조선후기/경제/농업] 조선후기의 농업(토지) 생산성 발달 조선후기의 농업(토지) 생산성 발달 2017. 3. 26.
[조선후기/학문과사상] 서양 문물의 전래 서양 문물의 전래 2017. 3. 25.
조선 후기의 신분제 동요 조선 후기의 신분제 동요 2017. 3. 24.
[조선후기/사회] 조선 후기 신분 구조의 변화(17세기, 대구지방) 조선 후기 신분 구조의 변화(17세기, 대구지방) 2017. 3. 23.
[조선중기/병자호란] 인조의 피신과 삼전도 항복 인조의 피신과 삼전도 항복  ★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의 숭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다(1636년 12월).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1637년 2월). 인조는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하였다(삼전도의 굴욕). 동아시아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전쟁 포로로 수십 만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막심하였다.★ 삼전도의 굴욕(三田渡의 屈.. 2017. 3. 22.
[조선후기/국제관계] 조선후기의 사행길 조선후기의 사행길   , 18세기말, 규장각 소장.    ★ 조선후기의 사행 : 조선은 청나라에 정기적으로 연행사(燕行使)라는 사신단을 보내었다. 주로 육로를 이용했는데, 거리는 1,200여km에 달했으며 50~60일이 걸렸다. 북경에는 5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정식 사절단 30명을 포함하여 전체 일행은 2~300명 정도였다.  ★ 사행(使行) : 근대 이전, 사신(使臣)이 되어 외국에 가는 일. 2017. 3. 21.
프랑스 선교사가 제작한 조선지도(간도) 프랑스 선교사가 제작한 조선지도(간도) 2017. 3. 20.
[조선후기/국제관계] 백두산 정계비의 위치 백두산정계비의 위치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 1712년(숙종 38, 강희 51)에 청 제국과 조선국의 백두산 일대 국경을 정하기 위하여 세워진 경계표지물로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남동쪽으로 약 4 km 떨어진 곳에 세웠다. 비문에는 “(중략) … 이곳에 이르러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므로, 분수령 상에 돌에 새겨 명기한다.”고 새겼다. 19세기 후반에는 비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간도 귀속 문제가 불거졌으며, 1909년 일본과 청국의 간도협약으로 간도 일대는 중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 비는 1931년 사라졌는데, 일본군이 철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 3. 19.
간도 지방 간도 지방 2017. 3. 18.
[조선후기/정치행정] 대동법의 확대 대동법의 확대  ★ 대동법(大同法) :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 광해군 때 시작하여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고종 때까지 시행되었다. 토지의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을, 쌀 생산이 어려운 지역은 삼베, 무명, 동전 등으로 납부하였다. 양반과 지주들의 반대에 경기도에서만 시행하다가, 점차 확대되어 100여년 후에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국가 수입이 증대되고 농민의 부담이 크게 줄었으며, 물품을 직접 부담하던 것을 관허상인 공인이 등장하여 대동미로 물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였다. 또 농민층의 분화를 촉진시켰고 나아가 신분 질서를 와해시켰다.   정기적인 공납인 상공은 대동법으로 대체되었으나, 비정기인 별공과 진.. 2017. 3. 17.
[조선후기/경제] 대동법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대동법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대동법(大同法) :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 광해군 때 시작하여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고종 때까지 시행되었다. 토지의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을, 쌀 생산이 어려운 지역은 삼베, 무명, 동전 등으로 납부하였다. 양반과 지주들의 반대에 경기도에서만 시행하다가, 점차 확대되어 100여년 후에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국가 수입이 증대되고 농민의 부담이 크게 줄었으며, 물품을 직접 부담하던 것을 관허상인 공인이 등장하여 대동미로 물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였다. 또 농민층의 분화를 촉진시켰고 나아가 신분 질서를 와해시켰다.   정기적인 공납인 상공은 대동법으로 대체되었으나, 비정.. 2017. 3. 16.
[조선후기/국제관계] 나선정벌 나선정벌  ★ 나선정벌(羅禪征伐) : 1652년부터 러시아가 코사크가 아무르강 이북의 청나라 영토를 점유하려 시도하여, 이후 청과 러시아 사이에 간헐전인 군사 충돌이 일어났다. 이때 청의 요청으로 조선은 1654년과 1658년, 2회에 걸쳐 조총부대와 군량 등을 지원하였다. 1686년에 청군이 알바진의 코사크 요새를 공략하고 1689년에 청과 러시아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분쟁을 종식하였다. 2017. 3. 15.
[조선중기/호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정묘호란(丁卯胡亂) : 인조 5년(1627)에 후금(後金, 이후 청淸으로 국호를 바꿈)이 조선을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인조 즉위 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추진하였고, 명(明)을 지원하였다. 또, 이괄의 잔당이 후금으로 도망하여 광해군 폐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조선을 칠 것을 주장하였다. 명과 조선 사이에 고립된 후금은 마침내 조선을 침략하였다(1627). 조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저항하였으며, 승리한 지역도 있었다. 명과 전쟁 중이였던 후금은 조선이 자신들의 배후를 공격할 것을 염려하여 강화를 제의하였고, 1627년 4월 조강화가 성립하였다. 이후 조선은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 2017. 1. 5.
후금과 청나라 후금과 청나라 후금 청나라 2017. 1. 4.
[조선중기/임진왜란] 임진왜란의 해전(이순신) 임진왜란의 해전(이순신)  ★ 이순신(李舜臣, 1545~1598) :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 문반 가문 출신으로 선조 9년(1576)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정3품)가 되었을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1592). 이후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여 왜군을 저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노량 해전에서 전사하였으며(1598), 사후에 고위관직에 추증 ․ 추봉되고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았다.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다. 2017.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