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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근대525

[근대/국제관계]병인양요 격문 병인양요 격문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8.
[근대/국제관계]병인양요 병인양요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8.
[근대/국제관계]로즈 제독(프랑스) 로즈 제독(프랑스) ★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Pierre-Gustave Roze, 1812~1882) : 프랑스의 해군 제독. 병인양요 때 조선 공격을 지휘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7.
[근대/열강의침략] 리델 신부 리델 신부 ★ 펠릭스클레르 리델(Félix-Clair Ridel, 1830~1884) :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이자 천주교 조선교구의 6대교구장이며 트라키아 필리포폴리스의 명의 주교였다. 철종 12년(1861) 동료 신부들과 조선에 들어와 천주교 전도에 힘썼다. 병인박해(1866)에서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3명 중 하나였으며, 조선을 탈출하여 프랑스 극동함대(極東艦隊)의 사령관 제독에게 프랑스 신부들의 처형소식을 전하고 생존한 신부 두 명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 함대를 출항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2020. 7. 7.
[근대/정치]절두산 천주교 성지 절두산 천주교 성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 절두산 천주교 성지(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 한강의 동북쪽 강변에 있는 양화나루와 잠두봉 일원. 원래 나루터 양화진(楊花津)을 낀 명승지로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꼭 유람선을 띄웠다고 전해져 온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楊花津)까지 올라왔다가 돌아갔고,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하여 1만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그 뒤로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 , 병인양요(1871) 등의 사건으로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다. 1966년 순교 1.. 2020. 7. 7.
[근대/정치]병인박해 병인박해 ★ 병인박해(丙寅迫害) : 조선 말기(고종 3년, 1866)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 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고도 하며, 당시 6천여 명의 평신도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선교사 등이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선교사 리델은 청나라로 탈출해 천진 주재 프랑스 함대사령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에게 박해 소식을 전했고 이는 그해 11월 발생한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7.
[근대/사회와문화]이양선 이양선 ★ 이양선(異樣船) : 조선 후기에 조선 연안 지역에 출몰했던 정체불명의 배들을 가리키는 표현. 모양이 동양 세계의 배와 달리 특이한 모양이다 하여 이양선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황당선(荒唐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종류와 국적에 상관없이 낯선 배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유럽을 비롯한 서양의 함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6.
[근대/사상과학문]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 동경대전(東經大全) : 최제우가 한문으로 쓴 동학의 경전. 최제우가 사형될 때 이 책도 불태워졌으나 후계자이자 동학의 제2세 교조 최시형이 1880년(고종 17년) 비밀리에 간행했다. 사대주를 지양하고 사상적 근대화를 촉진시킨 것을 평가받는다. ★ 용담유사(龍潭遺詞) : 동학의 교조 최제우가 교리 대중화를 위해 한글 가사체로 종교 · 철학 · 정치 사상을 기록한 책이다. 2세 교주 최시형이 1881년에 간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6.
[근대/사상과학문]최시형 최시형 ★ 최시형(崔時亨, 1827~1898) : 조선의 종교인, 교육자, 사상가이자 동학의 제2대 교주. 과 를 발간하는 등, 교리를 정리하고 포교와 교조신원 운동을 펼쳤으며, 동학농민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우금치 전투 패배 후, 관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5.
[근대/인물]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 :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대한제국의 추존왕. 아들인 고종 즉위 후(1864) 섭정으로 국정을 이끌었고, 과감한 내정 개혁으로 전제 왕권 강화와 세도정치 철폐, 기득권 제한을 이루어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실각 후 재집권을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하였고, 임오군란(1882)때 청으로 납치되기도 하였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5.
[근대/대한제국및황실]덕수궁 배치도 덕수궁 배치도 ★ 덕수궁(德壽宮) :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1907년(순종 1) 순종 즉위 후 궁호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개명되었다. 1611년 ~ 1615년에는 조선의 정궁이었고 1897년 ~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다. 원래는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임시로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광해군이과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였다. 1897년(고종 34)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궁궐다운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큰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여러 전각을 중건하였다. 원래의 면적은 현재보다 넓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 사적 .. 2020. 7. 4.
[근대/경제]맹인 점집 광고 맹인 점집 광고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4.
[근대/경제]대구약령시(1,900년 전후) 대구약령시(1,900년 전후) ★ 대구 약령시(大邱藥令市) : 조선 후기(1658)에 개시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구의 한약재 시장. 조선 후기 경상감영 내 객사 주변에서 열렸고, 대구읍성이 철거된 후 1908년에 약전골목(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발생 때부터 8·15 광복 후 얼마 동안까지 봄, 가을에 연 계절시장이었고, 현대에 이르러 상설시장으로 변모하였다. 매년 5월 대구광역시청이 주관하는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2020. 7. 4.
[근대/건축]덕수궁 석조전 동관 덕수궁 석조전 동관 ★ 덕수궁 석조전 동관(德壽宮 石造殿 東官) : 대한제국기 동안에 지어진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3충 석조 건물이다. 구한말 총세무사 브라운의 권유로 영국인 하딩(J. R. Harding)이 설계하고 심의석(한국인), 사바틴(러시아인), 오가와(일본인), 데이비슨(영국인) 등이 감독으로 1900년 기공하여 1909년 준공했다. 그리스 건축을 조형(祖型)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이른바 콜로니얼 스타일(식민지 양식) 건물로서 같은 모양의 건물이 18세기 이후 영국 식민지의 여러 곳에 세워진 바 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집무실과 외국사신들의 접견실로 사용할 목적에서 지어졌는데, 지하는 시종들이 대기하고, 1층 황제의 접견실, 2층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 2020. 7. 3.
[근대/대한제국및황실]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 덕수궁 중화전(德壽宮 中和殿) : 덕수궁의 정전(正殿). 1902년 지었으나, 1904년 화재로 다시 지었다.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원래 중화전 주변으로 회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으며, 현재 중화문 동쪽에 일부가 남아 있다. 보물 819호.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3.
[근대]동십자각 동십자각 위 : 밖, 아래 : 안 ★ 동십자각(東十字閣) : 경복궁 동남쪽 모서리에 설치했던 망루. 서십자각과 짝으로 이루었으나 서집자각은 1915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사적 117호(경복궁 부속). 2020. 7. 3.
[근대]숙정문의 모습 숙정문의 모습 ★ 숙정문(肅靖門) : 숙청문(肅淸門)으로도 불린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북쪽의 대문이다.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1.12 사태 이후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였다가 2006년 개방하였다. 2020. 7. 2.
[개화기]돈의문의 모습(1880년대) 돈의문의 모습(1880년대) ★ 돈의문(敦義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이다. 근대 이후부터 서대문(西大門)으로도 불린다.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으나 1915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현재 돈의문 자리에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2020. 7. 2.
[근대]숭례문의 모습 숭례문의 모습 ★ 숭례문(崇禮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남쪽의 대문으로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태조 5년(1369)에 준공하였고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현재의 숭례문은 2008년 방화로 불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2013). 2020. 7. 2.
[근대/대한제국및황실]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 : 을미사변(1895)으로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장례를 치르는 국장(國葬)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광무 2년(1898)에 제작되었다. 규장각 소장. 2020.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