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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서관/선사·고조선

[스크랩] 금문(金文)에서 들어난 조선(朝鮮)과 한(韓)의 역사

by hwawoon 2013. 7. 14.

 

 

 

금문(金文)에서 들어난 조선(朝鮮)과 한()의 역사

 

역사는 국력에 의해서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의해서 입증되는 것이다.

 

 

. 서론

 

우리들은 지금 급변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 이 동아시아 문화권은 공히 한자문화권이란 동질성을 가지는데, 그만큼 우리생활 속에서 많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한자문화권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는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中國), 지금 세계의 초대강국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한자문화권을 형성하는 중국의 역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역사가 우리민족의 역사와 서로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과 한국은 서로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정통성은 중국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동이민족이라는 한민족에게 있는 것일까? 이는 중국과의 역사적인 주체성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를 가리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정통성과 주체성을 바로 가리지 못한다면, 힘에 의한 역사왜곡 전쟁은 계속되어 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과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의 문제점을 동아시아의 고대문자인 갑골문과 금문을 통해 역사적인 정통성의 난제를 풀어냄으로서 그 어려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시대의 역사적인 정통성은 그 역사를 구성하는 언어와 문자에 있다. 언어는 인간이성이 말로서 나오는 것이며, 문자는 그 인간이성을 글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시대의 언어문자를 살펴보면, 진정한 역사적인 정통성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를 구분해낼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 문명을 주도하며 이끌어왔던 언어문자는 한자(漢字)이다. 우리는 이 한자의 고대문자를 면밀히 살펴, 동아시아의 역사적 정통성과 주체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한자의 고대문자에는 갑골문과 금문이 있다.

 

지금부터 살펴볼 갑골문(胛骨文)과 금문(金文)은 초기에는 한자의 발전단계 중 일부로서 고대 한자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 갑골문과 금문 역시 한문학(漢文學)의 한 분야로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갑골문과 금문은 초기의 연구에 있어서 사료적인 가치보다는 문자의 고석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 왔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꾸준한 연구결과는 갑골문과 금문이 역사적인 사실을 실증할 만한 사료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 증명됐다. 우리는 이 고대문자를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인 정통성과 주체성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를 구분해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갑골문과 금문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삼황오제의 역사적인 정통성의 의미부여와, 그리고 또한 우리민족의 역사성이 담긴 조선(朝鮮)과 한()이라는 고대문자를 바로 해석해 봄으로서, 이 고대문자가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아보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갑골문과 금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해야 한다.

 

. 갑골문과 금문이란 무엇일까?

 

1. 갑골문이란

 

현재 한자의 원형으로 정의 내리고 있는 갑골문(甲骨文)''''에 원시 문자의 회화적 요소를 지닌 표시를 기록한 것이 고대유적 등에서 발굴됨으로 인해 문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갑골문을 통해 기원전 1,500년경부터 1,000년 무렵까지 있었던 중국 고대 은()나라의 정치종교적인 특성과 이 시기에 있었던 전쟁과 같은 국가중대사를 갑골문을 통해 점()으로 풀어 국가운명을 결정하였던 사실 등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대 은()나라의 실체를 갑골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한자의 기원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갑골문의 갑골(甲骨)에 있어서 '()'은 거북의 배 껍질을 나타내고, '()'은 소와 같은 짐승의 어깨뼈나 넓적다리뼈를 나타낸다. 이 갑골(甲骨)에 고대문자를 기록한 것이 바로 갑골문이다. 이 갑골문의 갑골은 그 자체가 아주 딱딱하기 때문에 그 표면에 글자를 새기기 위해서는 청동(靑銅)과 같은 금속이나 경옥(硬玉)과 같은 단단한 칼날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갑골문의 서체는 대체로 가늘고 긴 특징을 나타낸다. 또한 갑골문은 사물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문자화했기 때문에 상형문자(象形文字)의 특징을 드러내기도 하며, 현재 갑골문은 대략 4,000여 자 정도를 확인된다. 이 갑골문은 단순한 문자학(文字學)뿐만 아니라, 고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또한 이 갑골문을 통해 금문과 전서로의 변화를 확인하면, 중국과 한민족의 역사발전의 진행과정을 잘 알 수 있다.

 

2. 금문이란

 

 

 

        

 

 

 

 

 

 

 

금문(金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중국 고대글자로서 갑골문(甲骨文)과 함께 한자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한문서체이다. 이 금문(金文)은 갑골문보다 폭넓은 지역과 많은 발굴 등이 이루어져 다양한 서체(書體)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 금문은 주로 청동(靑銅)과 같은 금속에 넓고 굵은 서체로 주조된 특징으로 인해 금석학(金石學)의 시원과 함께 원시 한자 서체의 또 다른 한 축을 나타내게 되고, 고대 주()나라의 다양한 문화까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금문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악기류(樂器類)의 쇠북[]이나 예기류(禮器類)의 솥[]의 이름에서 유래해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금문은 은()나라, ()나라, 그리고 철기(鐵器) 시대인 한()나라 때까지 발견되어 고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전 문명의 발전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금문은 오랜 시기의 변천과정을 통해 다양한 서체의 특징이 나타남으로서, 갑골문보다 더 동아시아의 고대 역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금문에 새겨진 내용은 주조된 청동 기물의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표시하거나 주조된 연원이나 기물의 주인 등을 표시했고, 또한 전반적인 당시의 상황인 전쟁이나 제례(祭禮), 계약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정치나 사회문화 등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동아시아 신화 속의 삼황오제

 

삼황이란

 

 

 

                염제 신농                             황제 헌원                                   태호 복희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삼황에 대해서는 7종의 설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중국의 고대사서십팔사략에 나오는 복희, 신농, 황제를 주로 말한다. 이 삼황은 맨 처음 세 명의 왕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연속적인 세 명의 왕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각각 인류 문명에 필요한 획기적인 발명을 통해 후세에 큰 모범이 되었기에 삼황”(三皇)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삼황의 첫 째인 복희는 태호(太昊 : 큰 하늘)라 불렸으며,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사냥법과 불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복희의 뒤를 이어 염제 신농의 시대가 온다. 염제(炎帝 : 불꽃 임금)신농은 태양신이자 농업의 신으로 농경과 상업을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뒤이어 염제 신농의 자리를 이은 것이 바로 황제 헌원(軒轅)이다. 헌원은 사람들에게 집짓는 법과 옷 짜는 법을 가르쳤으며, 수레를 발명했다. 헌원은 글자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천문과 역산을 시작하고, 의료술을 시작한 황제였다. 그리고 황제 이후 황제의 다섯 자손이 세상을 다스리는 오제의 시대가 온다.

 

2. 오제란

 

오제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일치하는 설이 없지만 주로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그중 중국의 고대사서 십팔사략에서 나오는 황제의 뒤를 이은 다섯 자손인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요 도당, 제순 유우 등을 말한다. 소호 금천(少昊 金天)은 황제의 아들로 황제가 승천한 후 바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봉황이 날아들어 소호의 정치를 도왔다고 한다. 이 소호의 뒤를 이은 것은 전욱 고양(顓頊 高陽)으로, 전욱은 소호의 형의 아들이었다. 전욱 고양은 엄격한 법을 세워 하늘과 땅의 구별을 확실히 하고, 인간 세상에서도 주종관계, 남녀관계 등을 확실히 세웠다고 한다. 이 전욱 고양은 바로 조선(朝鮮)과 한민족(韓民族)의 우리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 전욱의 뒤를 이은 것은 소호 금천의 아들인 제곡 고신(帝嚳 高辛)이었다. 그는 음악의 신으로, 각종 악기와 음악을 만들어 백성들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제요 도당과 제순 유우는 성군을 칭송할 때 관용적으로 쓰이는 요순임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삼황오제가 중국 신화 속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이들을 동이(東夷)나 한민족으로 간주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삼황오제가 동이였다는 중국의 사료들이 일부 존재한다. 중국의 사료 고사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 복희, 제준(帝俊), 제곡(帝嚳), 제순(帝舜), 소호(少昊) 그리고 설()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의 선조)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고사변(古史辯)-]

 

이처럼 이 동이라는 존재를 모두 한민족으로 보는 역사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 진()나라 이전의 동이와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한민족이 속해 있는 동이는 한나라 이후의 동이이기 때문에, 진나라 이전의 개념인 삼황오제의 동이 여부와 한민족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강단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민족의 역사서삼국사기에는, 신라인과 가야인은 그 조상을 소호 금천씨라고 했고, 고구려인은 그 조상을 제곡 고신씨 또는 전욱 고양씨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금문 속에 나타난 조선(朝鮮)과 한()의 의미

 

우리민족은 스스로 위대한 한민족이라 자처하며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한민족의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며, 또한 조선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한국의 한()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전혀 모른다. 이는 바로 우리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죽어있는 식물인간과도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조선(朝鮮)과 한()이라는 말의 역사적인 전후배경을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이 조선(朝鮮)이라는 말을 우리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조선은 4500년 전에 있었던 중국의 삼황오제 시대가 바로 조선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삼황오제의 시대를 연 분이 바로 신농(神農)이라는 것이다. 이 조선과 신농의 역사적인 관계는 금문(金文)의 해석으로 풀어진다.

 

금문(金文)의 특징은 당시 지배계급의 성이나 이름, 관직명과 땅 이름, 혹은 간단한 그 시대의 역사적인 행위들에 대한 기록으로 만들어진다. 조선(朝鮮)이나 한()이라는 글자도 삼황오제 시대 지배 계층의 이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조선이라는 문자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1900년대 초 청()나라 말기, 장개석의 국민당 초기에 하북성 청원 남향에서 당우 삼과병명(唐虞 三戈兵銘)이라는 청동으로 만든 칼 세 자루가 발굴됐다. 이 칼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삼황오제시대 제왕들과 그 친족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동이족의 시조인 신농의 손자 전욱 고양(顫頊 高揚. 기원전 2467~2421)과 그의 아들, 그리고 또 3대에 걸친 손자들의 이름이 칼에 새겨져 나온다.

 

전욱(顓頊)은 고대 중국의 신화상의 제왕이다. 이름은 고양(高陽)이었고 고양씨(高陽氏)로도 부른다. 전욱 고양은 신농의 아들인 희화 주와 황제의 딸 상아 사이에서 태어난 오제의 한 명으로 소호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왕위에 올라 78년을 재위했다고 한다.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 어머니는 촉산씨(蜀山氏)의 딸인 창박(昌僕)이다. 창의는 황제의 아들이고 전욱은 바로 황제의 손자가 된다. 자식으로는 궁선(窮蝉)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욱 고양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이 세 자루의 칼 가운데 첫 번째 칼에서 전욱을 나타내는 조일주(祖日珠)에 바로 조선의 조()자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두 번째 칼에서 전욱의 자식대를 나타내는데, 이중 중부일계(中父日癸)는 전욱의 셋째 아들 중여 곤(衆餘 鯀)으로, 여기에서 조선의 선()자가 등장한다.

 

또한 세 번째 칼에서는 전욱의 손자들이 이름이 나오는데, 이중 형일계(兄日癸)에서 한국이라는 한민족의 한()자가 나온다. 이 한은 바로 삼왕오제의 7대인 순임금을 나타낸다. 이처럼 당우 삼과병명(唐虞 三戈兵銘)이라는 청동으로 만든 전욱 고양의 가문에서 나온 칼 세 자루에서 조선과 한의 역사적인 유래가 금문을 통해 바로 밝혀진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산동성 대문구(大汶口)에서 6~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레가락이 출토된다. 여기에서도 조선이라는 말이 또 다시 나온다. 내용은태산이 있는 산동성 곡부는 신농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이며, 이곳에서 신농의 딸 뉘조가 누에를 치기위해 양잠을 가르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뉘조는 신농의 딸이자 중국인의 시조 황제 헌원의 부인이다. 즉 신농이 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욱 고양은 바로 신농의 손자이다.

 

조선의 역사적인 의미를 찾는데 있어서 전욱 고양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전욱 고양의 정확한 이름자만 7자가 된다고 한다. 특히 고양의 첫 번째 이름 호미 조()에서 생겨난 네 번 째 배슬 이름 주()라는 글자에서 신농이 세운 나라 이름이 조선(朝鮮)이었다는 사실을 유추 가능케 할 수 있다. 전욱 고양의 이름 주()는 전욱 고양이 임금 자리에 않기 전, 당시 임금이었던 외삼촌이자 장인인 소호 김천이 내린 관직의 이름이다. 이 주()자는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글자이다. 신농의 손자인 고양이 역사에 등장함으로서 조선의 조()라는 최초의 글자가 처음으로 제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양의 셋째 아들 곤이라는 글자에서 선()이라는 글자가 등장하며, ()은 고조선 제 7대 임금인 순의 이름 글자에서 만들어진다. 이 조선(朝鮮)과 한()은 고양과 그의 아들 대에 생겨난 종묘제도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문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은 4300년 전의 중국고사서 산해경속에서도 등장한다. 산해경의 34편중 해내경(海內經)속에 24자 중에 조선이 나오는 것이다.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

유국명왈(有國名曰) 조선천독(朝鮮天毒)

기인수거(其人水居) 외인애지(偎人愛之)

 

이 글은 동해의 안쪽, 북쪽 바닷가에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하늘이 기르는 그 사람들은 구주에 살며 모든 이웃나라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말하는 조선은 바로 지금의 중국 산동성 태산의 남쪽 땅 곡부를 가리킨다고 한다. 산해경은 분명히 4300년 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끝맺는 말

 

우리들은 지금 급변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중국과 함께 한자문화권이라는 언어문자적인 동질성을 갖고 같이 살아나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대사회의 역사관에 있어서 중국과의 깊은 역사적인 연관관계로 인해서, 이 역사의 정통성과 주체성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를 놓고 중국과 힘겨운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전쟁의 진행방향은 고대역사의 왜곡으로까지 크게 변질되고 있다. 이 역사왜곡은 바로 한중(韓中)의 지성(知性)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파는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학문에 있어서 양심을 파는 행위는 인격이 상실되는 비인간화로 변질되는 것이다. 바로 한중(韓中)은 고대 선조들과 미래 후손들에게 모두 비인간적인 사회건설을 지금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중은 이런 역사왜곡의 쓸데없는 소모전을 하루빨리 끝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은 인간들이 최초로 구사하는 역사적인 언어문자의 숨은 뜻으로 해결하여야만 한다.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한자의 원형인 금문과 갑골문에는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동아시아의 정통성과 주체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그 내용이 숨어있다. 금문과 갑골문에는 고대사회의 종교적인 특성과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 왕위 계승, 그리고 전반적인 제례(祭禮), 계약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 당시의 자세한 정치나 사회문화 등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고대 사회건설에는 한중 공히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신화적인 인물 등이 등장한다. 삼황은 중국의 고대사서십팔사략에 나오는 복희, 신농, 황제를 말하고, 오제는 황제의 뒤를 이은 다섯 자손인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요 도당, 제순 유우 등을 말한다. 이들은 바로 중국역사의 문을 연 시조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중국인이 아닌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금문을 통해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룬 나라가 바로 고조선(古朝鮮)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사료 고사변과 우리민족의 역사서 삼국사기 그리고 금문 등의 고문자를 파자하면 바로 그 뜻이 들어난다.

 

고조선은 문명은 6~7000년 전 중국의 산동성 대문구(大汶口)에서 발견된 물레가락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신농이 세운 나라임이 입증된다. 즉 중국의 삼황오제 시대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 증거는 1900년대 초 청()나라 말기, 장개석의 국민당 초기에 하북성 청원 남향에서 당우 삼과병명(唐虞 三戈兵銘)이라는 청동으로 만든 칼 세 자루가 새겨진 금문의 내용으로 또 다시 입증된다. 이 금문의 내용은 삼황오제시대 제왕들과 그 친족들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바로 동이족의 시조인 신농의 손자 전욱 고양(顫頊 高揚. 기원전 2467~2421)과 그의 아들, 그리고 또 3대에 걸친 손자들의 이름 등이다.

 

이 세 자루의 칼 가운데 첫 번째 칼에서 전욱을 나타내는 조일주(祖日珠)에 바로 조선의 조()자가 처음 등장하며, 두 번째 칼에서는 전욱의 자식대를 나타내는데, 이중 중부일계(中父日癸)는 전욱의 셋째 아들 중여 곤(衆餘 鯀)으로, 여기에서 조선의 선()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 번째 칼에서는 전욱의 손자들이 이름이 나오는데, 이중 형일계(兄日癸)에서 한국이라는 한민족의 한()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한은 바로 삼왕오제의 7대인 순임금을 나타낸다. 이처럼 당우 삼과병명(唐虞 三戈兵銘)이라는 청동으로 만든 전욱 고양의 가문의 역사에서 나온 칼 세 자루는 조선과 한민족의 역사적인 유래가 과연 무엇인지 그들의 종묘제도를 기록한 금문을 통해 바로 밝혀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은 4300년 전의 중국고사서 산해경속에서도 등장한다. 산해경의 34편중 해내경(海內經)속에 24자 중에 조선(朝鮮)이 나오는 것이다. 산해경은 분명히 4300년 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국력을 앞세워 역사왜곡을 날조하며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고대역사로부터 현대사까지의 모든 동아시아의 역사를 지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시조 삼황오제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민족의 역사임이 중국인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금문과 갑골문이라는 고문자와 그들이 만들어낸 사서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국력의 힘에 의해 날조되는 왜곡의 현상이 아니라, 항상 있는 그대로의 현상으로 들어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 자체도 미래후손들에게 있어서는 역시 역사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들의 역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끈임 없는 역사연구와 급변하는 세계화 속에서 국제적인 명분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출처 :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글쓴이 : 德光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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