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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서관/선사·고조선

[스크랩] 此自是險瀆과 위만조선의 도읍

by hwawoon 2011. 11. 16.


한서 지리지 낙랑군條에 위만조선의 도읍이라고 생각되는 평양현이 없다. 
신채호선생께서는 패수현이 바로 평양현이라고 하셨지만 너무 이두글자에 집착하지 않으셨나 싶다.

한서 지리지를 잘뜯어보면 위만조선의 도읍은 낙랑군 평양현이 아니라 낙랑군 험독현이었다.
(어라 험독현이 요동군이 아니라 낙랑군에 있었다?)
前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遼東郡.. 險瀆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説是也
요동군..험독현 應劭는 험독이 조선의 임금 위만의 도읍이고 강물의 험함에 의지하였기에 험독이라고 이름하였다고 말했다. 臣瓚은 왕검성이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며 이것이 원래 험독이라고 했다. 師古는 瓚의 설명이 맞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此自是險瀆이다.
사전에 설명한 각각의 뜻을 살펴보고 문헌에 사용된 용례를 파악하여 위 한서지리지를 정확히 해석해보자.

1. 사전의 뜻

1) 此 
此는 此後(차후, 이후로), 彼此(피차, 그와 이 즉 서로), 如此(여차, 이와 같음)에서 보듯이 '이것'이라는 말이다.
 
2) 自是
自是는 사전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http://tc.wangchao.net.cn/baike/detail_174980.html 에서 펴왔음)
自是 zishi
1.自以爲是。 2.自然是;原來是。 3.從此。 4.猶只是。

  [naturally;of course]∶自然是
  衆人見他如此無禮,自是憤憤不平
  自是桃花貪結子,錯教人恨五更風(原來是)

  [self-conceited]∶自以爲是
  自見者不明,自是者不彰。——《老子》

  [from now on;from then on;henceforth;thereupon]∶從此
  自是指物作詩立就——王安石《傷仲永》
영어로 뜻이 해석되어 있으니 더이상 설명할 것은 없고 한서 지리지의 自是는 위 뜻 가운데 原來是에 가깝게 보인다. 

2. 문헌의 용례

此自是의 해석을 위해 그 용례를 살펴보고 난 뒤에 제대로 다시 해석해보도록 하자.
資治通鑑巻四十九
攻圍赤亭數十日  賢曰赤亭故城在今渭州襄武縣東南有赤亭水也按唐渭州漢隴西郡地漢武都唐階成州地此自是武都之赤亭非渭州之赤亭也
자치통감 권49
赤亭을 수십일동안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賢은 赤亭이 옛 城으로 현재의 渭州 襄武縣 동남쪽에 赤亭水가 있는곳이라고 했다. 按, 唐의 渭州는 漢의 隴西郡의 땅이고, 漢의 武都는 唐의 階成州의 땅인데 이곳이 원래 武都의 赤亭이지 渭州의 赤亭이 아니다.
여기서 此自是의 용법도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으며 此는 항상 '이것' 또는 '이곳'이므로 此는 漢武都唐階成州地를 가리킨다. 自是는 '원래'라는 뜻이다. 此는 그 뜻이 '이것'이므로 항상 此가 나온 문장 바로 앞에 나온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 당연하다.  
欽定大清一統志巻二十四 
宣化府
媯河  
自延慶州東北發源西流逕州城南又西逕懐來縣城南又西南流入桑乾河本古清夷水也今譌曰媯河...중략...按括地志媯水在懐戎本漢潘縣在今保安州西南界此自是清夷水遼史謂媯泉在可汗州城中宣鎮志謂出延慶海沱山皆不察懐戎之移治清夷而誤指也
선화부
규하(媯河)  
延慶州 東北으로부터 발원하여 서족으로 흘러 연경주 城의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懐來縣의 城 남쪽을 지나며 또한 서남쪽으로 흘러 桑乾河로 들어가는데 옛날의 淸夷水이다. 지금은 잘못하여 媯河라고 부른다...중략...按, 括地志에서 媯水는 懐戎에 있고 원래 漢의 潘縣이며 지금의 保安州 서남쪽 경계에 있다고 했는데 이곳이 원래 淸夷水이다. 遼史에 媯泉은 可汗州의 城中에 있다고 했다. 宣鎮志에는 延慶 海沱山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모두 懐戎의 清夷를 옮겨 설치한 것을 살피지 못하여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도 此는 '이곳'을 나타내녀 此가 나온 문장 바로 앞의 지명, 즉 보안주 서남쪽을 가리킨다. 이곳이 원래 청이수이고 규하는 옛날의 청이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禹貢指南卷三
陪尾山  水經陪尾山在江夏安陸縣東北  泗水注魯國卞縣東南陶虚西阜泗水出焉博物志曰泗出陪尾即斯阜也此自是魯國泗水之所出俗呼媯亭山偶名陪尾非安陸之陪尾山也
배미산(陪尾山) 水經에서는 陪尾山이 江夏 安陸縣의 동북쪽 있다고 했다. 泗水는 魯國에 물을 대는데 卞縣의 동남쪽 陶虛 서쪽 언덕에서 泗水가 나온다. 博物志에서는 泗水가 陪尾 즉 斯阜라고 했는데 이곳이 원래 魯國의 泗水가 나오는 곳이며 세속에서 媯亭山 또는 陪尾라고부르는 곳이고 安陸의 陪尾山이 아니다. 
 여기서도 역시 此는 此가 있는 문장 바로 앞의 斯阜를 가리킨다. 自是는 당연히 '원래'라는 뜻이다. 

3. 한서 지리지 해석

 이제 한서 지리지로 돌아가서 다시 해석해보자. 
 
遼東郡.. 險瀆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瓚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說是也
요동군.. 험독.. 
應劭는 조선의 임금 위만의 도읍이며 물의 험한것에 의지했기에 험독이라고 한다고 했다. 
臣瓚은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며 이곳이 원래 험독이라고 했다. 
師古는 臣瓚 니말이 맞다고 했다.

즉, 師古는 험독이 원래 낙랑군 험독현 위만의 도읍 왕검성이었지만 요동군으로 옮겼졌다고 말한 臣瓚의 말에 찬성한 것이며 應劭가 말한 요동군 험독현이 위만의 도읍이라는 말에 반대한 것이다. 

즉, (왕검성) = (패수의 동쪽) = (원래의 험독) = (낙랑군 험독) = (평양성)
이렇다... 

이는 위 청이수 즉 규하와 마찬가지로
원래 위만의 도읍인 험독현 평양 왕검성은 패수에 동쪽에 있었다.
그러다 漢으로 넘어가 낙랑군 험독현이 되었지만
고구려나 貊夷에 의해 빼앗겨 낙랑군 험독현이 되지 못하고 移治하여
요동군 험독현이 되었다. 

고구려가 낙랑군을 완전히 차지한게 313년이지만
그 이전인 동천왕 21년, 즉 247년에 이미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는건
위 가설을 뒷받침한다. 

중국에 한방먹은 동천왕이 서쪽으로부터 쳐들어오는 중국을 대비하기에는 패수의 동쪽에 있는 평양성이 제격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박구위瓠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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