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24 [남북국/신라중대/문화예술] 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 ★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 은 신라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때, 신라의 승려 혜초가 인도 5국(五國) 부근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그 행적을 적은 여행기. 혜초는 4년간(723~727)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을 여행하였다. 왕오천축국전은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여행기이다. 현재는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만이 남아 있는데, 훼손된 부분이 많다.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원록에게서 구매한 7,000점의 유물 중에 섞여 있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2024. 8. 21. [남북국/신라하대/불상] 철원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철원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불상 뒷면에 새겨진 명문 ★ 철원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鐵原 到彼岸寺 鐵造 毘盧遮▽那佛 坐像) :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도선대사가 창건한 도피안사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불상 뒤편에 명문이 있너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다(신라 경문왕 5년, 865년). 신라 말~고려초에 유행했던 철불로 대좌까지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얼굴이 갸름하고 표정은 인자하며, 머리카락은 작은 소라 모양이다.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이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이며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대좌는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국보 제63호. 2024. 8. 13. [남북국/신라하대/유적] 청해진 유적 청해진 유적 ★ 청해진(淸海鎭) : 신라 하대 흥덕왕 3년(828) 장보고(張保皐)의 요청에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의 장도에 설치하였던 진(鎭)이다. 초기에는 해적을 방비하기 위한 군사거점이었으나, 이후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으로서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렸다. 장보고가 살해당한 뒤 폐지되었고 주민들도 이주시켰다. 2019. 6. 30. [남북국/신라하대/유적] 적산법화원 적산법화원 ★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때 장보고가 당나라 산둥성 등주(登州)의 신라인 거주지인 적산촌(赤山村)에 세운 불교 사찰. 이후 이곳은 신라인의 구심점이 되었고, 장보고는 무역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당나라 무종(845년)때 불교 탄압으로 파손되었다. 1998년 한중 우호를 기념하여 중국 정부는 법화원을 중건하였다. 경내에 장보고기념관과 장보고 동상이 있다. 2019. 6. 30. [남북국/신라하대/국제관계] 장보고의 해상 무역로 장보고의 해상 무역로 ★ 장보고(張保皐, ?~846년) :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 한미한 출신으로 친구 정년과 당으로 건너가 군인으로 출사하여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았다. 흥덕왕 3년(828년) 신라로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일을 막았다.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당과 일본, 발해, 탐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많은 이익을 취하고 큰 세력을 이루었다. 또, 산둥성에 사는 신라인들을 지원하여 사찰 법화원(法華院) 건립을 도왔으며, 노예가 된 신라인들을 해방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후 신라의 왕위 다툼에 뛰어들어다. 김우징(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추대하였고, 김우징은 장보고의 딸을 태자비로 맞겠다고 약속하였다.. 2019. 6. 30. [남북국/신라하대/인물] 장보고 장보고 ★ 장보고(張保皐, ?~846년) : 신라의 무장이자 해상 호족. 한미한 출신으로 친구 정년과 당으로 건너가 군인으로 출사하여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았다. 흥덕왕 3년(828년) 신라로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일을 막았다. 서남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당과 일본, 발해, 탐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많은 이익을 취하고 큰 세력을 이루었다. 또, 산둥성에 사는 신라인들을 지원하여 사찰 법화원(法華院) 건립을 도왔으며, 노예가 된 신라인들을 해방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후 신라의 왕위 다툼에 뛰어들어다. 김우징(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추대하였고, 김우징은 장보고의 딸을 태자비로 맞겠다고 약속하였다. 신무왕이 .. 2019. 6. 29. [남북국/신라하대/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탑(僧塔)으로, 쌍봉사를 창건한 철감선사 도윤(798~868)의 승탑이다. 선사가 입적한 경문왕 8년(868)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틀을 마련한 철감선사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화강암 재질에 높이는 2.3m. 8각 원당 형식(圓堂形式)에 조각이 정교하고 치밀하다. 기단부와 탑신부는 상태가 양호하지만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사라진 상태이다. 신라 중하대의 승탑 중 될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국보 제 57호. 2019. 6. 28. [남북국/신라중하대/정치행정] 신라 민정 문서 신라 민정 문서 ★ 신라 민정 문서 : 신라 민정 문서 또는 신라 장적(新羅帳籍)이라고도 한다. 신라 서원경(西原京, 현 청주시) 지방 4개 촌의 장적(帳籍)이다. 마을의 면적, 인구, 논밭, 가축, 유실수 등의 면적과 수량을 기록하였다. 당시 촌락의 경제 상황과 국가의 세무 행정, 신라의 율령 정치와 신라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 문서의 작성 시기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는데, 경덕왕 14년(755) 설 헌덕왕 7년(815) 설 등이 있다. 1933년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東大寺 正倉院)에 소장된 의 책갑을 수리할 때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종이 중에서 발견하였다. 2019. 6. 28. [남북국/신라하대/] 명당도 명당도 ★ 명당도(明堂圖) :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인 곳을 그린 그림. 궁궐을 짓거나 왕실의 묏자리를 정할 때, 이 그림을 참고하였다. 2019. 6. 26. [남북국/신라하대/인물] 도선(道詵) 도선(道詵) ★ 도선(道詵, 827~898) :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 속성(俗姓)은 김(金)씨. 영암 출신으로,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혜철대사에게 수학하고 구계(具戒)를 받았다. 승려로서도 명성이 높았으나 음양풍수설(풍수지리)의 대가로서 더 유명했다. 당에 유학하여 풍수학을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예언가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송악(개성)에서 고려 태조(왕건)가 탄생할 것을 예언한 일이 유명했다. 헌강왕이 그를 초빙하여 법문을 들었으며,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또한, 고려 태조를 비롯한 고려조의 왕들도 그를 극진히 모셨다. 저서로 ,, 등이 있다. 2019. 6. 26. [남북국/신라하대/불교유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 대승불교 경전 중 하나로 줄여서 이라고도 부른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발견되었다. 제2층 탑신부에 있던 금동제 사리외함(舍利外函)에서 여러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와 함께 나왔다. 8세기에 인쇄한 목판본으로,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로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국보 126-6호. 불국사성보박물관 소장. 2019. 6. 26. [통일신라]화랑세기 필사본 화랑세기 필사본 * 화랑세기(花郞世記) : 김대문이 저술한 신라시대 화랑도의 우두머리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한 책. 성덕왕 재위기간 중 저술(702~737). 현재 진본은 전하지 않으나, 재야사학자 박창화가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필사본이 있음. 필사본은 위서 논란이 .. 2019. 6. 25. [남북국/신라하대/인물] 최치원 최치원 ★ 최치원(崔致遠, 857~908년 이후?) :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 6두품 출신으로 당에 유학하여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귀국하여 조정에 중용되어 외교 문서를 작성하고 여러 문장을 지었다. 이후 진성여왕에게 존왕적 정치 이념을 담은 개혁안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阿飡) 관등을 받았으나, 진골 귀족들의 반대에 시행되지 못했다. 진골 세력의 견제와 혼란스러운 신라의 상황에 좌절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908년까지 생존해 있었으나,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2019. 6. 25. [남북국/신라하대/] 장보고의 무역선(복원) 장보고의 무역선(복원) ★ 장보고의 무역선 : 조운선보다 큰 200~300t의 대형 선박이었고 선저에 용골을 부착하여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또, 나침반으로 이용하여 항해하였다. 엔닌이 쓴 ''에는 장보고가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빠른 선단을 보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9. 6. 24. [남북국/신라중대/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義城 塔里里 五層石塔)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남북국시대 신라중대(통일신라)의 석탑으로 현재까지 거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탑과 목탑의 특징이 모두 드러나는 독특한 양식으로 모전석탑으로 분류한다. 또,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와 같은 모습이어서 통일신라 전기(중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구조는 낮은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 (塔身) 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돌 위의 장식은 흔적만 남아있다. 몸돌은 목조건물을 모방하여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1층에는 감실이 있다. 지붕돌은 돌은 깍아서 짜맞추었는데, 4층과 5층은 돌 하나로 깍아 만들었다. 탑은 응회암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9.6m이다... 2019. 6. 23. [통일신라]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국보 제 57호 통일신라, 남북국 시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 소재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6. 23. [남북국/신라하대/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漆谷 松林寺 五層塼塔) : 신라 하대(통일신라)의 오층전탑으로 9세기 남북국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경상북도 칠곡군 송림사에 있다. 탑을 해체·수리할 때(1959)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송림사 대웅전 앞에 서있는 5층 전탑(塼塔)으로,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기단(基壇)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은 모두 벽돌로 쌓아올렸고, 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가 거의 비슷하여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지만 지붕돌이 넓은 편이어서 안정되어 보인다. 꼭대기에는 금동제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 해체·수리할 때 복원하여 만든 모조품이다. 보물 제18.. 2019. 6. 22. [남북국/신라하대/불상] 석조 약사여래불 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조 약사여래불 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릉곡에 있던 모습(조선고적도보) ★ 석조 약사불 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8~9세기 신라 하대의 약사불 좌상. 본래 경주 남산 삼릉계에 있었는데, 1915년에 서울로 옮겨졌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머리는 나발이고 이마에 백호 구멍이 있으며 표정은 근엄하다. 풍만한 몸에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쳤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에는 약합을 쥐고 있다. 광배는 타원형의 거신광(擧身光)으로 두줄 선은로 두광과 신광을 새겼다. 내부에는 화불(化佛), 외부에는 화염문(火焰文)을 새겼다. 대좌는 3단으로, 상·하단은 연화좌, 중단은 8각의 면석에 향로와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높이 3m 4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19. 6. 21. [남북국/신라중대/탑]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봉감모전오층석탑)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봉감모전오층석탑) 수리전 수리 후 ★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英陽 山海里 五層模塼石塔)(봉감모전오층석탑) : 남북국 시대 신라의 오층 모전석탑.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의 강가의 밭 가운데에 있다. 축조 방식과 구조 등을 보아 신라중대(통일신라)의 탑으로 주정한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붉은색 이암 계통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으며,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몸돌에는 감실(龕室)이 있고, 2층부터 몸돌 가운데가 돌출되어 띠를 두른 듯한 모습이다. 지붕돌은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며, 처마의 너비는 좁아져 있다. 모전석탑 중에 원.. 2019. 6. 16. [남북국/신라하대/고분] 경주 원성왕릉 무인상 경주 원성왕릉 무인상 ★ 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일괄 (慶州 元聖王陵 石像 및 石柱一括) : 경주 원성왕릉(괘릉) 입구 좌·우에 석상들이 한쌍씩 배치되어 있다. 문·무인 4점, 사자상 4점, 석주 2점으로 총 10점이다. 무인상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신라가 서역과도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매우 역동적이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1427호. 2019. 6. 15.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