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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화국6

[현대/민주주의발전/제1공화국]경향신문 폐간 사건 경향신문 폐간 사건 경향신문 폐간 조치 알리는 벽보를 읽는 시민들(1959. 4. 30, 서울 경향일보 사옥 앞) ★ 경향신문 폐간 사건(京鄕新聞廢刊事件) : 1959년 대한민국 신문 의 칼럼 '여적'(餘滴)에 실린 글로 인해 관련자들이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되고 경향신문이 폐간 명령을 받은 사건. 여적 필화 사건(餘滴筆禍事件)이라고도 한다. 은 무기명 칼럼으로 선거가 제 역할 하지 못하면 진정한 다수의 의사를 강제로 전달하는 폭력 혁명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론적이지만 뼈가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당시 가톨릭 재단이 소유한 경향신문은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에 비판적이었다. 이 칼럼으로 편집국장과 사장, 필자로 밝혀진 민주당 국회의원 주요한 등이 기소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허위사실 보도와 폭.. 2021. 8. 18.
[현대/민주주의발전/제1공화국]4.19 혁명 승리 후 계엄군의 탱크에 올라 환호하는 시민들 4.19 혁명 승리 후 계엄군의 탱크에 올라 환호하는 시민들 ★ 4·19 혁명(四一九革命) : 4월 혁명(四月革命)이라고도 한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공권력과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야부정선거와 개표조작을 자행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대규모의 시위를 일으켰다. 3·15 마산의거에 참여한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에 보도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발포 이후 시위대.. 2021. 7. 25.
[현대/민주주의발전/제1공화국]제 4대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가 걸린 서울 시내(1960) 제 4대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가 걸린 서울 시내(1960)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2021. 7. 24.
[현대/민주주의발전/제1공화국]제 3대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1956) 제 3대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1956)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2021. 7. 23.
[현대/민주주의발전/제1공화국]진보당 사건 진보당 사건 ★ 진보당사건(進步黨事件) : 조봉암사건(曺奉岩事件)이라고도 한다. 1959년 7월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들을 국가변란, 간첩죄 혐의로 체포하여 조봉암을 사형 집행한 사건. 제2대, 3대 대통령선거(1952년, 1956년)에서 많은 표를 얻은 조봉암이 1956년 11월 10일 진보당을 결성하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이것에 정치적 위협을 느낀 이승만은 1956년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조봉암을 공산당원이고, 진보당 결성을 북한과 내통한 정부 전복 행위라 주장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사건 인지보고’를 하였다. 1958년 1월 민의원 총선거를 4개월 앞두고 서울시 경찰국은 진보당 간부들을 체포하고 조봉암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하였다. 1958년 10월 25일 조봉암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2021. 7. 2.
[현대/민주주의발전/제1공화국]사사오입 개헌 사사오입 개헌 사사오입 개헌안이 통과되자 이철승 의원(민주당)이 단상에 올라가 국회부의장 최준수의 멱살을 잡았다. ★ 사사오입 개헌(四捨五入改憲) : 대한민국의 제1공화국 시절의 집권 세력이었던 자유당이 사사오입(四捨五入, 반올림)을 내세워 당시 정족수 미달이었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대한민국 헌법 제3호가 제정된 사건. 1954년 5월 20일, 자유당은 이승만의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27일, 국회 표결 결과 '재적의원 2/3이 찬성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가결정족수(可決定足數) 136명에서 한 명이 모자란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국회부의장 최순.. 2021.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