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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4

광일미구 曠日彌久 광일미구 曠日彌久    오랫동안 쓸데없이 시간만 보낸다는 뜻이다.  세월아 네월아~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조나라(趙) 혜문왕(惠文王)때 연나라(燕)가 조나라를 침략하자 혜문왕과 신하들은 대책을 강구했다. 재상 평원군(平原君)의 의견대로 조나라는 제나라(齊)에 성읍(城邑) 셋을 내어주고 명장 전단(田單)을 보내달라 청하기로 했다.    전단(田單)은 연나라가 조나라를 침입했을 때 소뿔에 칼을 매고 꼬리에는 기름 적신 갈대를 매달아 소를 적진에 돌진시킨 화우지계(火牛之計)로 연나라를 물리친 연나라의 명장이었다.  장군 조사(趙奢)는 이 일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어찌하여 우리나라를 지키는 데 남의 손을 빌린단 말입니까? 전단이 아무리 명장이라지만 조나라에도 좋은 장수과 군사들은 많습니다. 제게 맡.. 2024. 11. 24.
관포지교 管鮑之交 관포지교 管鮑之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을 이르는 말로 시류나 정세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우정을 일컫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사람인 관중과 포숙아는 매우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제나라(齊)의 관리로 관중은 공자 규(糾)를, 포숙아는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小白)을 모시는 측근이었다.    어느날 제나라의 임금이자 규와 소백의 아버지인 양공(襄公)이 사촌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살해되자(B.C.686년) 관중은 규와 함께 노나라(魯)로 포숙아는 소백을 따라 거나라(莒)로 망명했다.    다음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규와 소백은 먼저 제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차지하려 하였다. 관중과 포숙아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적이 되었다. 결국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돌아가 왕위에 올.. 2024. 11. 22.
과전이하 瓜田李下 과전이하 瓜田李下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진출처 : 예장통합뉴스)    전국시대(戰國時代) 제나라(薺) 위왕 때의 일이다(B.C.370년). 당시 주파호(周破湖)라는 간신이 9년동안 권력을 잡고 전횡을 일삼고 있었다.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주파호를 내치고 북곽(北郭)과 같은 어진 이를 등용하기를 간하였다.   그러자 주파호는 우희와 주파호가 간통했다며 모함했고 우희는 옥에 갇히고 말았다. 위왕의 명을 받고 이 사건을 조사하던 관리는 이미 주파호의 뇌물을 받고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없는 죄까지 꾸며대었다.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자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물어보자 우희는 이렇게 .. 2024. 11. 21.
견토지쟁 犬免之爭 견토지쟁 犬免之爭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으로 둘이 싸우는 사이에 제 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보는 것을 뜻하며, 쓸데없는 싸움을 뜻하기도 한다.   (사진출처 : 대전일보)    전국시대 제 나라(齊)에는 순우곤(淳宇髡 )이라는 세객(說客)이 있었다. 제나라 왕이 위나라(魏)를 치고 싶다는 뜻을 비치자 순우곤은 이렇게 말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명견(名犬)과 동곽준(東郭浚)이라는 날랜 토끼가 있었습니다. 한자로는 동곽준을 잡으려 쫓아갔지만 토끼가 너무 빨라 잡을 수가 없었지요. 둘은 산을 세바퀴 돌고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더니 둘 다 지쳐 죽고 말았답니다. 죽은 개와 토끼를 발견한 농부(田父)는 횡재(之功)를 했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가 대치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백성도 .. 2024.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