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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정책17

[근대/열강의침략] 병인양요 병인양요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2023. 6. 3.
[근대/열강의침략]어재연 어재연 ★ 어재연(魚在淵, 1823~1871) : 조선 말기의 무신. 1866년 회령 부사 등을 지냈고,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광성진을 수비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어재연을 순무중군에 임명하여 광성진을 수비케 하였다.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우세한 무기를 가진 미군에게 패했고 동생 어재순과 함께 전사하였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3.
[근대/국제관계]척화비 척화비 ★ 척화비(斥和碑) : 신미양요 이후(고종 8년, 1871) 흥선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종로 네거리를 위시한 전국 교통 요충지 200여 개소에 세운 비석(碑石).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2.
[근대/열강의침략]미군의 포로가 된 조선인(신미양요) 미군의 포로가 된 조선인 (신미양요) ★ 신미양요(辛未洋擾) : 고종 8년(1871)에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 전쟁. 미군은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의 책임과 통상 교섭을 명분으로 조선의 주요 수로였던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고 조선 측의 거부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탐침을 시도하여 교전이 일어났다. 3일간의 교전 결과 조선은 광성보가 함락되고 순무중군 어재연을 비롯한 수비 병력 대다수가 사망하였다. 미해군은 20일간 통상을 요구하며 주둔하였으나 조선의 완강한 쇄국 정책으로 아무런 협상을 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신미양요 이후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 정책을 강화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2.
[근대/열강의침략]신미양요 신미양요 ★ 신미양요(辛未洋擾) : 고종 8년(1871)에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 전쟁. 미군은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의 책임과 통상 교섭을 명분으로 조선의 주요 수로였던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고 조선 측의 거부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탐침을 시도하여 교전이 일어났다. 3일간의 교전 결과 조선은 광성보가 함락되고 순무중군 어재연을 비롯한 수비 병력 대다수가 사망하였다. 미해군은 20일간 통상을 요구하며 주둔하였으나 조선의 완강한 쇄국 정책으로 아무런 협상을 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신미양요 이후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 정책을 강화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2.
[근대/국방]강화 광성보 강화 광성보 ★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 강화도에 있는 조선시대 성곽시설.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고려 대몽항쟁기에 강화외성을 쌓은 후, 조선 후기에 고쳐 쌓으면서 광성보가 처음 설치되었다(효종 9년, 1658). 이후 숙종과 영조대에 돈대와 성을 증축하였다. 광성보는 신미양요(1781)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조선군 대부분이 순국하였다. 1970년대에 부서진 누각과 성 등을 복원하였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소재. 사적 제227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1.
[근대/열강의침략]로저스 사령관(미국) 로저스 사령관(미국) ★ 존 로저스(John Rodgers, 1812~1882) : 남북 전쟁 당시 북군 해군으로 활약한 미국의 군인. 신미양요 당시 미국 해군 아시아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1.
[근대/국방]강화 덕진진 강화 덕진진 ★ 강화 덕진진(江華 德津鎭) : 조선시대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로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병인양요 때(1866)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신미양요 때(1871)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누각과 포대 등을 복원하였다. 사적 제226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소재.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0.
[근대/열강의침략]제너럴셔먼호 사건 제너럴셔먼호 사건 ★ 제너럴셔먼호 사건 : 고종 3년(1866) (-號事件)은 미국 상선(商船)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행패를 부리자, 박규수의 지휘 하에 관민들의 저항으로 배는 소각되고, 선원들은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0.
[근대/대한제국및황실]남연군의 묘 남연군의 묘 ★ 남연군의 묘(南延君墓) :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788∼1822)의 묘.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다. 이곳에 있던 절 가야사를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하였다. 이하응의 차남 명복이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소재.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80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9.
[근대/인물]양헌수 양헌수 ★ 양헌수(梁憲洙, 1816~1888) : 조선 말의 무신. 이항로의 제자이자 최익현의 동기였다. 1866년 강화도에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오는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정족산성에 숨어있다가 프랑스 군대가 오자 일제히 공격해 프랑스군을 무찔렀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6명이 전사하고 30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그 뒤 황해도 병마절도사와 어영 대장 등을 지냈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에 반대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8.
[근대/국제관계]병인양요 격문 병인양요 격문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8.
[근대/국제관계]병인양요 병인양요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8.
[근대/정치]절두산 천주교 성지 절두산 천주교 성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 절두산 천주교 성지(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 한강의 동북쪽 강변에 있는 양화나루와 잠두봉 일원. 원래 나루터 양화진(楊花津)을 낀 명승지로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꼭 유람선을 띄웠다고 전해져 온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楊花津)까지 올라왔다가 돌아갔고,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하여 1만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그 뒤로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 , 병인양요(1871) 등의 사건으로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다. 1966년 순교 1.. 2020. 7. 7.
[근대/정치]병인박해 병인박해 ★ 병인박해(丙寅迫害) : 조선 말기(고종 3년, 1866)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 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고도 하며, 당시 6천여 명의 평신도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선교사 등이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선교사 리델은 청나라로 탈출해 천진 주재 프랑스 함대사령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에게 박해 소식을 전했고 이는 그해 11월 발생한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7.
[근대/인물]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 :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대한제국의 추존왕. 아들인 고종 즉위 후(1864) 섭정으로 국정을 이끌었고, 과감한 내정 개혁으로 전제 왕권 강화와 세도정치 철폐, 기득권 제한을 이루어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을 추진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실각 후 재집권을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하였고, 임오군란(1882)때 청으로 납치되기도 하였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5.
[근대/열강의침략]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 신미양요(辛未洋擾) : 고종 8년(1871)에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 전쟁. 미군은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의 책임과 통상 교섭을 명분으로 조선의 주요 수로였던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고 조선 측의 거부를 무시하고.. 2017.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