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제멸망4

[백제/국제관계]백강 전투(白江戰鬪) 백강 전투(白江戰鬪) ★ 백강 전투(白江戰鬪) : 663년 백강(현재 금강 하구)에서 벌어진 백제·왜의 연합군과 당·신라의 연합군이 벌인 전투.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하자 유민들은 부흥운동을 벌였고, 백제와 긴밀한 관계였던 왜(倭)는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였으며, 663년 대규모의 수군을 파병하였으나, 백강(금강 하구)에서 나당엽합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전멸하였다. 내분과 왜의 원군마저 패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결국 실패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6.
[백제/인물]계백 장군 묘 계백 장군 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소재 ★ 계백(階伯, ? ~ 660) : 백제 말기의 군인.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군사 5천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5만의 신라군과 네 차례의 전투를 벌인 끝에 백제군이 전멸하고 계백도 전사했다.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의 충신이라 불린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4.
[백제/고분]의자왕 가묘 의자왕 가묘 ★ 의자왕 가묘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군 내에 조성된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 ★ 의자왕(義慈王, 599~660, 재위 641 ~ 660) : 백제의 제 31대 왕이자 마지막 왕.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젊은 시절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칭송받았으나 말년에 방탕과 실정을 일삼았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왕족들과 함께 당나라 낙양으로 끌려갔다. ★ 부여융(扶餘隆, 615~682) : 백제의 왕족이자 당나라 장군으로 의자왕의 아들 중 한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에 귀순하여 백제 부흥운동 토벌에 협조하고 당나라의 백제군공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백제 유민들을 약탈하였다. 당나라에서 광록대부 태.. 2022. 12. 17.
[삼국시대]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 백제 부흥운동(百濟復興運動) : 백제가 660년에 패망한 후 유민들이 전개한 투쟁 운동. 신라가 백제를 정복하자 당나라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했으며, 의자왕을 당나라로 끌고 갔다.백제의 장군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거점으로 유민을 규합하였고, 왕족 복신(福信)과 승려 도침(道琛)은 주류성(周留城)에서 왜로부터 왕자 부여풍(豊)을 맞아 왕으로 삼아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내분으로 와해되었다. 백제 왕족인 부여융은 당나라 항복하여 당의 장군이 되어 백제 부흥군을 토벌하고 주류성을 함락하였으며(663), 이듬해(664) 임존성이 함락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 고구려 부흥운동(高句麗復興運動) : 고구려 멸망(668) 후 유민들이 전개한 투쟁 운동.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당으.. 2015.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