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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언론]동아일보 창간호 동아일보 창간호 ★ 일제강점기의 동아일보 :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고, 이 정책의 일환으로 1920년 한국인 민간신문 발행을 허가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동아일보이다(1920년 창간). 초대 대표는 김성수였으며, , , 를 사시(社是)로 내세웠다. , , 등의 민족운동을 지원하였다. 으로 무기한 정간을 당하였고, 1940년 폐간되었다. 광복 후, 복간되었다. 2021. 2. 24.
[일제강점기/민족교육운동]조선민립대학기성회 조선민립대학기성회 ★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 :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반의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서 민족 대학 설립을 목표로 하였다. 1923년 를 결성하여 모금운동을 펼쳤으나, 일제의 방해와 탄압으로 실패하였다. 2021. 2. 24.
삼색이 삼색이 2021. 2. 23.
[일제강점기/실력양성운동] 문자보급운동 문자보급운동 ★ 문자보급운동 :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실력양성 운동으로 민족주의 계열이 주도하였다. 지식인과 학생들이 야학 설립을 통한 한글 교육과 민족정신 고양운동을 하였다. 조선일보의 문맹퇴치 운동,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 등이 이 운동의 일환이다. 이 운동이 민족교육운동을 확대되어 가자 일제는 1935년 금지하였다. 2021. 2. 23.
[일제강점기/실력양성운동] 브나로드 운동 브나로드 운동 ★ 브나로드 운동 : 1930년대 초에 일어난 한국의 학생 운동으로 농촌 계몽운동이다. 농촌에 학교를 세우고 성인을 위한 야학을 설치하여 문자와 수학 등의 기초 학문을 교육하였다.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문맹타파 운동을 전개하고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는 “민중속으로”라는 뜻의 러시아어이다. 2021. 2. 23.
[일제강점기/인적수탈] 강제 징병 강제 징병 ★ 일제강점기의 강제 징병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력 확보를 위해 많은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기 위해 1938년 을 제정하였고, 중일전쟁 이후 1938년부터 ‘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인을 입대시켰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1944년 징병제를 실시하여 한국 청년들은 전쟁으로 내몰았다. 2021. 2. 22.
[일제강점기/인적수탈] 강제 징용 강제 징용 ★ 일제강점기의 강제 징용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력 확보를 위해 많은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8년 을 공포하고 실시하였다. 한국 노동자들의 직업 선택권을 빼앗고 일본의 필요에 따라 강제 노동을 시켰다. 한국 노동자들은 사할린 섬이나 동남아시아, 남양군도 등에서 탄광, 군사기지 및 철도 건설에 동원되어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으며, 전후 전범으로 희생되기도 했다. 일본은 현재까지 일제의 강제징용을 부인하고 있다. 2021. 2. 22.
[일제강점기/경제수탈] 금속 공출 금속 공출 ★ 공출(供出) : 물자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고 할당받은 물자를 의무적으로 정부에 판매 또는 헌납하도록 강제하는 제도.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여 인적 ․ 물적 자원 수탈을 법제화하였고, 미곡(米穀)을 비롯한 식량과 금속류 등, 다양한 물자를 약탈하였다. 2021. 2. 22.
[일제강점기/경제수탈]일제의 식량 수탈 일제의 식량 수탈 산미증식계획으로 증산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항구에 쌓아놓은 모습 ★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 : 일제가 일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일본의 식량공급지로 만들고자 실시한 정책으로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실시되었다. 일제는 쌀 생산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증산량보다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 한국의 소작농이 몰락하고 화전민이 증가하였다. 일본에서는 쌀 가격 폭락으로 일본 농촌 경제가 악화되어 1934년 중단되었다. 2021. 2. 21.
[일제강점기/경제수탈] 남면북양 정책 남면북양 정책 ★ 남면북양 정책(南棉北羊政策) :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농민에게 강요한 정책으로 일본의 공업 원료 증산 정책이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면화를 재배하게 하고 북쪽에서는 가구당 5마리씩 양을 사육하게 한 것으로, 산미증식계획 실패를 대체할 식민지 정책이다. 한반도를 값싼 원료 공급기지로 삼아 일제의 병참기지로 만들고 경제대공황의 여파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2021. 2. 21.
[일제강점기/사회운동]일장기 말소 사건 일장기 말소 사건 ★ 일장기 말소 사건(日章旗抹消事件) : 193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의 지방판 조간 2면 및 조선중앙일보의 4면, 동아일보의 8월 25일자 2면에 1936년 하계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우승 사실을 보도하면서 일장기를 삭제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의 사장 및 주필, 편집국장 등이 사임하였고, 관련자가 구속되어 고초를 겪었다. 2021. 2. 10.
[근현대/친일파] 이병도 이병도 ★ 이병도(李丙燾, 1896~1989)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대학 교수, 저술가였던 정치가. 일제강점기 조선사 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사 왜곡과 식민사관 정립에 기여하였다. 1934년 진단학회를 창설하였다. 경성제국대학과 서울대학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에 수록되었다. 2021. 2. 9.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가네코 후미코 가네코 후미코 ★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 일본의 아나키스트, 한국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의 부인. 일본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출생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1912년 한국의 충청북도의 친척에게 맡겨져 자랐으며, 3.1 운동을 목격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지에 공감하였다. 1919년 일본으로 돌아와 사회주의자와 교류하며 아나키스트가 되었고, 1922년 박열과 함께 살며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일본을 비판하였다. 1923년 남편 박열과 함께 일본 황태자 암살 기도 혐의로 체포되어 1926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1926년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2021. 2. 8.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박열 박열 ★ 박열(朴烈, 1902~1974) : 한국의 아나키스트, 사회운동가. 학생 시절 3.1 운동에 참여하여 퇴학당한 후 일본으로 유학한 뒤, 아나키스트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3년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의 혼례식 때 암살을 기도한 혐의로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사망하였으나 박열은 22년을 복역하고 광복 후 풀려났다. 이후 일본에서 재일본조선거류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전신)을 조직하였고 이승만을 지지하였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하였다. 정부수립 후 위국하여 한국독립당 당무위원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6.25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2021. 2. 8.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한용운 한용운 ★ 한용운(韓龍雲, 1879~1944) :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으며, 불교 개혁과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신간회 창설하고 활동하기도 했다. 광복을 1년을 앞둔 1944년 병사하였다. 저서로 , 등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2021. 2. 7.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조명하 조명하 ★ 조명하(趙明河, 1905~1928) :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공무원(읍서기)로 잠시 일하다가 일본에 유학하던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타이완에 들렀다(1927). 일왕의 장인 일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가 타이완에 방문했을 때 독을 바른 단검으로 찔렀으며(1928년 5월 14일), 구니요시는 이듬해 1월 독이 퍼져 사망하였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10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당시 24세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021. 2. 7.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이봉창 이봉창 ★ 이봉창(李奉昌, 1900~1932)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10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상인으로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의 단원이 되었다. 1932년 일본에 건너가 쇼와 일왕을 폭탄으로 저격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1월 8일).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이 언도되었으며, 1932년 10월 10일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광복 후 유해를 봉환하여 1946년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 의사화 함께 안장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2021. 2. 6.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양기탁 양기탁 ★ 양기탁(梁起鐸, 1871~1938) : 한국의 언론인, 독립 운동가. 대한제국 때부터 애국계몽운동을 하였고 독립협회와 신민회 등의 창건에 참여하였으며,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1910년 이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였다. 1938년 중국에서 병사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유해를 봉환하여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2021. 2. 6.
[일제강점기/친일파] 최린 최린 ★ 최린(崔麟, 1878~1958) :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3.1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변절했다. 광복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병보석을 풀여났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선전기관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한 뒤 행방을 알려지지 않았다. 1958년 사망하였다. 2021. 2. 5.
[일제강점기/친일파] 최남선 최남선 ★ 최남선(崔南善, 1890~1957) : 한국의 문화운동가.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1907년 와세다 대학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인하여 퇴학 처분되어 귀국했다. 여러개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이후에도 잡지를 발간하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총독부의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로 변절하였다. 1957년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2021.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