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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근대525

[일제강점기/3.1운동] 일제의 3.1 운동 탄압 일제의 3.1 운동 탄압 ★ 3·1 운동 :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5월까지 지속외었으며, 해외에서도 있어났다. 일제는 3.1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무단 통치가 해외에 알려졌고, 일제는 통치 방식으로 문화통치로 바꾸었다. 또한,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조직적으로 실행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2020. 10. 3.
[일제강점기/3.1운동]3.1운동 3.1운동 ★ 3·1 운동 :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5월까지 지속외었으며, 해외에서도 있어났다. 일제는 3.1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무단 통치가 해외에 알려졌고, 일제는 통치 방식으로 문화통치로 바꾸었다. 또한,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조직적으로 실행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2020. 10. 2.
[일제강점기/3.1운동]3.1운동 3.1운동 ★ 3·1 운동 :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5월까지 지속외었으며, 해외에서도 있어났다. 일제는 3.1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무단 통치가 해외에 알려졌고, 일제는 통치 방식으로 문화통치로 바꾸었다. 또한,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조직적으로 실행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2020. 10. 2.
[일제강점기/해외독립운동]해외의 독립운동 기지(만주) 해외의 독립운동 기지(만주) 2020. 10. 2.
[일제강점기/무단통치]105인 사건 105인 사건 ★ 105인 사건(百五人事件) : 일본이 한국의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사건들 중 하나로 1911년 발생하였다. 단순한 모금활동에 불과한 안명근의 체포사건을 1910년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미수 사건으로 조작하여 그러면서 이 사건에 관여했다 하여 서북 지방의 배일 기독교인과 신민회원을 다수 체포한 것이 안악 사건(安岳事件)과 백오인 사건, 즉 신민회 사건이었다. 2020. 10. 1.
[일제강점기/무단통치]칼을 찬 교원 칼을 찬 교원 ★ 무단 통치(武斷統治) : 헌병경찰통치(憲兵警察統治).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의 일제의 식민 통치 방식으로, 헌병의 무력을 보여주는 등 조선인에게 압박을 가해 조선민족의 민족의식을 억눌렀다. 2020. 10. 1.
[일제강점기/무단통치]조선 태형령 조선 태형령 ★ 조선 태형령(朝鮮笞刑令) : 일제강점기 1910년대 무단 통치 상징 중의 하나로, 공식적인 형벌 제도 안에서 한국인에게 태형(笞刑)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법률. 3⋅1 운동 이후 폐지되었다(1920년 4월 1일). 2020. 10. 1.
[일제강점기/경제수탈]토지 조사 사업 서류 양식 토지 조사 사업 서류 양식 ★ 조선 토지 조사 사업(朝鮮土地調査事業) :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 조사 사업. 근대적 토지소유권의 확립을 구실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의 토지 수탈이 목적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 이후, 조선 총독부와 일본인 소유 토지가 대폭 늘어났느며, 대지주 계층이 등장하고 영세 소작농이 대폭 늘었다. 특히 농민들은 세습적 경작권을 빼앗겨 더욱 빈곤해졌다. 2020. 9. 30.
[일제강점기/경제수탈]조선 토지 조사 사업 조선 토지 조사 사업 ★ 조선 토지 조사 사업(朝鮮土地調査事業) :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 조사 사업. 근대적 토지소유권의 확립을 구실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의 토지 수탈이 목적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 이후, 조선 총독부와 일본인 소유 토지가 대폭 늘어났느며, 대지주 계층이 등장하고 영세 소작농이 대폭 늘었다. 특히 농민들은 세습적 경작권을 빼앗겨 더욱 빈곤해졌다. 2020. 9. 30.
[일제강점기/경제수탈]동양척식주식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 ★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Oriental colonization Company) : 1908년 12월 18일에 설립된 일본의 기업. 일제가 조선의 경제 독점과 토지·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국책회사로 영국의 동인도 회사를 본뜬 식민지 수탈기관이다. 1945년 11월 10일 미군정에 의해 신조선회사로 개편되었다가, 1946년 2월 21일 신한공사(新韓公社)를 창립하였다. 2020. 9. 30.
[일제강점기/1940년대]아베 노부유키 아베 노부유키 ★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 1875~1953) : 일본의 육군 군인·정치인. 제36대 총리대신과 마지막 조선총독을 지냈다. 2020. 9. 29.
[일제강점기/1940년대]고이소 구니아키 고이소 구니아키 ★ 고이소 구니아키(小磯 國昭, 1880~1950) :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인. 제4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였으며, 1942년부터 1944년까지 8대 조선 총독을 지냈다. 2020. 9. 29.
[일제강점기/1930년대이후]미나미 지로 미나미 지로 ★ 미나미 지로(南 次郎, 1874~1955) : 일본의 군인, 정치가.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제7대 조선총독을 역임하였으며, 총독 재직 중 내선일체와 창씨개명령을 시행하였다.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혼선과 조선인의 반발로 1942년 총독직에서 해임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A급 전범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었다. 2020. 9. 29.
[일제강점기/1920년대]야마나시 한조 야마나시 한조 ★ 야마나시 한조(山梨 半造, 1864~1944) : 일본의 육군 대장으로, 1927년부터 1929년까지 4대 조선 총독을 지냈다. 2020. 9. 28.
[일제강점기/1920년대]우가키 가즈시게 우가키 가즈시게 ★ 우가키 가즈시게(宇垣 一成, 1868~1956) : 일본의 군인이며 정치인.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으로, 1927년 조선 총독을 역임했고, 1923년~1927년, 1929년~1931년에는 육군대신을 지냈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31년부터 1936년까지 6대 조선 총독을 역임했다. 2020. 9. 28.
[일제강점기/1920년대]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 ★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1936) : 일본의 해군 군인이자 관료, 정치가. 해군 대장과 해군 대신을 역임했다. 1919년부터 1927년까지 제3대,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제5대 조선총독부 총독을 지냈다. 2020. 9. 28.
[일제강점기/1910년대]하세가와 요시미치 하세가와 요시미치 ★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 : 일본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일본 제국 육군 원수를 역임했고, 1916년부터 1919년까지 제2대 조선총독을 지냈다. 2020. 9. 27.
[일제강점기/1910년대]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 ★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 正毅, 1852~1919) :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가, 외교관. 제18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1910년 5월부터는 제3대 한국통감이었고, 한일 강제 병합 이후부터 1916년 10월 14일까지 초대 조선총독이었다. 2020. 9. 27.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 ★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 일본이 1910년 8월 29일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1945년 9월 2일까지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 조선총독부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에도 당분간 한반도 지역을 계속 통치하였고, 1945년 9월 3일부로 38도선 이남 지역을 미군정에게 인계하였고, 1945년 9월 28일 공식적으로 소멸되었다. 청사는 1995년 철거하였다. 2020. 9. 27.
[일제강점기]일장기가 걸린 경복궁(1910년) 일장기가 걸린 경복궁(1910년) 2020.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