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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서관/고려

[스크랩] 고려, 고구려 아닌 신라를 계승한 국가?

by hwawoon 2013. 7. 19.

고려, 고구려 아닌 신라를 계승한 국가?

[글마루=김지윤 기자] 고려 인종 23년(1145) <삼국사기>가 드디어 세상 빛을 보는 순간이다.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각자 펼친 역사서는 있었으나 삼국을 합쳐 놓은 역사서는 드물었다. 사실 삼국사기가 출간되기 이전 삼국사를 다룬 역사서가 존재했다. 사서(史書) 제목도 <삼국사>다.

이규보는 이를 ‘구 삼국사(舊三國史)’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총 책임자 김부식(1075~1151)은 <삼국사>를 비롯하여 기존 역사서들에 대해 “고기(古記)는 문장이 거칠고 졸렬하며 사적(事跡)이 빠지고 없어져 임금의 선악과 신하의 충사, 나라의 안위와 인민의 치란을 다 드러내 권계로 남기지 못하였다”라며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구복 명예교수는 “여기서 ‘고기’는 그 설명문으로 보아 단편적인 옛 기록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체재를 갖춘 책으로 <삼국사기> 편찬에 기초 자료로 이용됐을 ‘구 삼국사’를 지칭한 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부식은 단순히 <구 삼국사>의 문장이 이상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허술하기 때문에 <삼국사기>를 편찬했을까. 김부식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역사서를 만드는 임무를 맡았다. 인종은 김부식에게 삼국사 편찬을 명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늘날 학사 대부들이 ‘오경이나 제자의 서책(유교 경전)’과 진·한시대 이래의 역사서에 대해선 지식이 해박하지만 우리나라 일(역사)에 대해 전혀 무지하니 이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결국 <삼국사기> 편찬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역사관을 학사 대부 및 백성에게 심겨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구복 교수는 김부식이 사서를 편찬한 이면적인 이유가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측한다.

“(김부식은) 고려 초기에 고려왕조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서술한 <구 삼국사>를 다시 편찬하면서 신라를 계승한 국가로 서술하려 했다. 고려 초기 태조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기치를 내세웠고 이런 관점에서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 역사를 쓰려고 한 것이 <구 삼국사>의 편찬 동기였다고 이해된다. 고려 인종 대에는 경주 세력이 수상직을 장악할 정도로 커졌고, 큰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한 김부식이 신라 중심의 삼국사를 서술하고자 했던 것이 삼국사를 재편찬한 근본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고려가 신라의 통일왕국을 계승한 국가로 파악하는 역사 서술을 하게 된 것이다.”

고구려가 아닌 신라에 뿌리를 둔 新 삼국사의 기록은 본기(28권), 연표(3권), 잡지(9권), 열전(10권)으로 이뤄진 기전체(紀傳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왕과 정사를 중심으로 기록된 본기는 다시 신라본기(12권), 고구려본기(10권), 백제본기(6권)로 나뉜다.

아울러 저자는 책임자 김부식을 포함한 11명으로 책 말미에 그 이름이 기록돼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13세기 후기 2차로 판각된 ‘성암본’이다. 이 책은 권44~45에 해당하는 부분만 남아 있다. 조선 중종7년 (1522) 제작된 <삼국사기>는 명나라 무종의 연호 ‘정덕’ 연간에 간행됐다 하여 ‘정덕본’이라고 말하는 50권 전체가 오롯이 남아있다.

출처 : (사)문화살림 (위례역사문화연구회)
글쓴이 : 아름다운세상2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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