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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7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 북로군정서 북로군정서 ★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 1919년 북간도에서 만든 무장독립운동 단체. 대종교 계통에서 비롯되었으며, 1919년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서일 김좌진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중국 왕칭에 사관 양성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하였다. 2020. 12. 22.
[일제강점기/해외독립운동]1920년대 만주 지역의 독립 투쟁 1920년대 만주 지역의 독립 투쟁 2020. 11. 7.
[일제강점기/일제의탄압과만행] 간도참변 간도참변 ★ 간도참변(間島慘變) :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도 한다. 1920년 독립군 섬멸 계획 실패 및 봉오동 ․ 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 일대(만주지역)의 한국인들을 학살한 사건. 약 27일 동안 3,469명을 학살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실제 사망자는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노령 연해주에서도 이와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2020. 10. 26.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좌진 김좌진 ★ 김좌진(金佐鎭, 1889~1930) : 일제 강점기의 군인이자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치인. 충청남도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고 가노 해방 및 전답을 무상 분배, 교육사업과 언론운동을 펼쳤다. 무관학교 졸업 후 북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1917년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1918년 만주로 망명, 무오 독립선언에 하였다. 1919년 북로군정서 사단장과 사관연성소 소장을 역임하였고, 1920년 청산리 전투를 지휘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자유시 참변 이후 1925년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직 겸임한 신민부를 창건하고,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부교장으로서 정예사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대한민국 임시정.. 2020. 10. 26.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홍범도 홍범도 ★ 홍범도(洪範圖, 1868~1943) : 조선 말기의 의병장,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군인. 사냥꾼으로 활동하여 사격술에 능하였다. 1895년부터 의병 활동을 하였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었다. 1919년 간도 국민회의 대한 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국내로 잠입하여 일본군을 습격하였고, 후에 독립군의 통합운동을 벌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김좌진과 함께 부총재가 되었다.1920년 일본군이 봉오동을 공격해 오자 3일간의 전투에서 120명을 사살하고 최대의 전과를 올렸고(봉오동 전투), 청산리대첩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1927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하였으나,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당.. 2020. 10. 25.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청산리 전투에서 패하고 퇴각하는 일본군 청산리 전투에서 패하고 퇴각하는 일본군 ★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이라고도 한다. 1920년 10월 김좌진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간도에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벌인 전투. 일제는 중국 마적일 일으킨 훈춘 사건을 빌미로 만주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였고, 독립군은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길림성 화룡현 내의 여러 지역에서 교전하여 청산리 골짜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은 중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 2020. 10. 25.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청산리 전투 청산리 전투 ★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이라고도 한다. 1920년 10월 김좌진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간도에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벌인 전투. 일제는 중국 마적일 일으킨 훈춘 사건을 빌미로 만주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였고, 독립군은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길림성 화룡현 내의 여러 지역에서 교전하여 청산리 골짜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은 중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한국 독립군이 러시아로 건너.. 2020.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