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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76

[신라/불교유물]경주 이차돈 순교비 경주 이차돈 순교비 ★ 경주 이차돈 순교비(慶州 異次頓 殉敎碑) :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고자 건립한 석비(石碑). 건립연대는 신라 헌덕왕 9~10년(817~818년)으로 추정한다. 각각 별석으로 조성된 받침돌과 6면의 몸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돌 상단의 형태로 보아 원래 덮개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몸돌 제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새겨져 있다. 2019. 5. 21.
[신라/불교유물]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 경주시 남산 기슭 내남면 용장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석조 여래 삼존 입상.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63호. 2019. 5. 20.
[신라/유적]신라의 수도(경주) 신라의 수도(경주) 2019. 5. 20.
[신라/불교유적]경주 황룡사지 평면도 경주 황룡사지 평면도 ★ 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 삼국시대 신라에 있었던 사찰로,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현재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에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 또는 선덕여왕 14년(645)에 준공되었으며, 황룡사 9층목탑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소재. 사적 제 6호. 2019. 5. 20.
[신라/고분]6세기 신라의 굴식돌방 무덤(울진) 6세기 신라의 굴식돌방 무덤(울진) ★ 굴식 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 : 돌로 1개 이상의 널방을 짜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무덤으로, 앞방과 널방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앞방과 널방으로 구분하며, 널방의 벽과 천장에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한국의 삼국시대에 많이 축조되었다. 3~4세기 고구려와 백제. 5~6세기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등장하였다. 2019. 5. 19.
[신라/고분]돌무지 덧널 무덤의 구조(천마총) 돌무지 덧널 무덤의 구조(천마총) ★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 : 지상이나 지하에 시체와 껴묻거리를 넣은 나무덧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 흙으로 덮은 무덤. 목관을 수많은 돌덩이와 흙이 뒤덮고 있기 때문에 도굴이 어려워 많은 껴묻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규모가 큰 무덤은 거대한 언덕처럼 보인다. 주로 신라에서 만들었다. 금관총, 천마총이 대표적이다. ★ 천마총(天馬塚) :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경주의 고분. 지름 47m, 높이 12.7m. 신라의 대표적인 돌무지넛널무덤으로 5~6세기 경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천마도(국보 207호), 금관(국보 188호), 금모(국보 189호) 등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대릉원 내)에 있으며 무덤 내부를 복.. 2019. 5. 19.
[신라/고분]경주 사라리 고분군 130호분 경주 사라리 고분군 130호분 ★ 경주 사라리 고분군 (慶州 舍羅里 古墳群) :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무지돌덧널무덤 관련 생활유적. 청동기 시대부터 원삼국시대와 삼한시대 사로국의 무덤과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사로국의 문화와 정치․사회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019. 5. 19.
[신라상대/사상과학문]임신서기석 임신서기석 ★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의 언덕에서 발견된 자연석. 신라의 두 청년이 임신년(壬申年, 진흥왕 13, 552)에 충도(忠道)를 지키고 유교경전을 학습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보물 제1411호. 2019. 5. 15.
[신라]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신라의 비석. 6세기 진흥왕이 빛벌가야(현재 창녕지역)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이곳을 순시하고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지만 후반부는 비교적 명확하며, 왕을 수행한 관료의 직위, 소속 등을 판독할 수 있어 당시 지방행정조직 및 신분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축조 시기는 진흥왕 22년(561)으로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이며, 에도 관련기록이 있다. 국보 제33호. 2019. 5. 15.
[신라중대/정치] 단양 신라 적성비 단양 신라 적성비 ★ 단양 신라 적성비(丹陽 新羅 赤城碑)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적성산성 내에 있는 신라 시대의 비석.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히고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한 내용이 담긴 기념비로, 진흥왕 6~11년(545~550)경으로 추정한다. 높이 93cm, 폭 107cm, 아랫너비 53cm. 음각으로 글자를 새겼다. 윗부분의 일부가 잘려나갔으나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글자 수는 총 430~440자 내외로 완전히 해석한 것이 288자이다. 2019. 5. 15.
[신라상대/유물유적]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磨雲嶺眞興王巡狩碑) : 함경남도 리원군의 마운령에 있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이 568년 8월에 이곳을 돌아보고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이 비석으로, 진흥왕의 업적과 순시 목적, 비를 세운 연유, 왕을 수행한 사람들의 출신과 벼슬, 이름등이 새겨져 있다. 화강석을 네모로 다듬어 만들었으며, 높이 1.36m, 너비 45cm, 두께 30cm이고 갓돌은 배집 지붕 형식이다. 앞면에 26자씩 10줄, 뒷면에 25자씩 8줄, 모두 415자의 글이 새겨져 있눈데, 393자를 읽을 수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이다. 당시의 역사와 서예,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6세기에 발견되어 17세 한백겸이 에 고려 윤관의 비로 소개하였으나, 1929년에 최남선이 찾아내어.. 2019. 5. 14.
[신라상대/유물유적]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黃草嶺 眞興王 巡狩碑) : 신라 진흥왕이 568년(진흥왕 29) 황초령에 건립한 순수비. 함경남도 장진군에 있다. 진흥왕이 확장된 영역을 순시하면서 세운 것으로, 비를 세우게 된 연유와 의의, 진흥왕의 업적과 순회한 목적, 수행한 사람들의 직위와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의 신라의 영토 범위와 관직, 지명 등을 밝혀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비석은 화강석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비문은 12줄에 35자씩 420자이며, 글씨는 예서체와 해서체로이다. 높이 1.17m, 넓이 44cm, 두께는 21cm이다. 북한의 함경남도 함흥력사박물관 소장. 북한의 국보 110호. 2019. 5. 14.
[신라/유물유적]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北漢山 眞興王 巡狩碑址) :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가 있던 자리. 원래의 비는 풍화가 심하여 1972년에 경복궁 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비석이 있던 자리는 사적 제228호 지정되어 표석이 세워져 있다. 2019. 5. 14.
[신라상대/정치]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위 : 앞면, 아래 : 뒷면 ★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北漢山 新羅 眞興王 巡狩碑) : 신라의 진흥왕이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한 다음 세운 비(碑) 중 하나로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 있었던 비석이다. 축조 시기는 진흥왕 16년(555년) 또는 29년(568)으로 추정한다. 조선 시대 김정희가 조사하여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내었다(1816). 보존을 위하여 경복궁 내에 옮겨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비신 높이가 1.54m, 너비가 0.69m, 두께가 0.16m. 국보 제3호. 2019. 5. 13.
[신라상대/정치]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北漢山 新羅 眞興王 巡狩碑) : 신라의 진흥왕이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한 다음 세운 비(碑) 중 하나로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 있었던 비석이다. 축조 시기는 진흥왕 16년(555년) 또는 29년(568)으로 추정한다. 조선 시대 김정희가 조사하여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내었다(1816). 보존을 위하여 경복궁 내에 옮겨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비신 높이가 1.54m, 너비가 0.69m, 두께가 0.16m. 국보 제3호. 2019. 5. 13.
[신라/정치행정]울진 봉평리 신라비 울진 봉평리 신라비 ★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비석. 1988년 발견되었다. 비무 일부가 마모되어 정확한 판독은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장방형의 자연 화강암에 한 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예서풍의 10행 398자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작으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하다. 비문의 내용은 당시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지역 주민과의 분쟁과 이 처리 과정 및 결과 등이다. 6세기 신라의 영토, 율령체제, 왕권의 한계, 관료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국보 제242호. 2019. 5. 13.
[신라상대/불교유적]경주 황룡사지 9층 목탑 탑자리 경주 황룡사지 9층 목탑 탑자리 ★ 황룡사 9층 목탑(皇龍寺九層木塔) :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당에서 귀국한 자장율사의 건의로 황룡사에 세운 목탑으로 신라 중심으로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백제의 공장 아비지를 청하여 조성하였다. 기록을 추정하면 60~80m 높이의 초대형 건축물이었으나,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지금은 탑의 초석(礎石)만이 남아 있다. 2019. 5. 10.
[신라상대/불교유적]경주 황룡사 복원도와 복원 모형 경주 황룡사 복원도와 복원 모형 경주 황룡사 복원도 경주 황룡사 복원 모형 ★ 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 삼국시대 신라에 있었던 사찰로,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현재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에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 또는 선덕여왕 14년(645)에 준공되었으며, 황룡사 9층목탑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소재. 사적 제 6호. 2019. 5. 10.
[신라/공예]토우장식장경호(부분) 토우장식장경호(부분) ★ 토우장식장경호(土偶裝飾 長頸壺) : 신라시대 만들어진 목항아리(장경호). 목과 어깨 부분을 토우로 장식하였다. 1973년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30호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며, 토우는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 성행위를 하는 남녀,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등을 묘사하고 있다. 높이는 34cm, 국보 제195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2019. 5. 9.
[신라상대/불교유적]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경주 황룡사지 (慶州 皇龍寺址) ★ 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 삼국시대 신라에 있었던 사찰로,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현재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에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 또는 선덕여왕 14년(645)에 준공되었으며, 황룡사 9층목탑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소재. 사적 제 6호. 2019.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