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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7

[삼국시대/가야] 가야연맹의 멸망 가야연맹의 멸망 ★ 가야연맹의 멸망 : 4세기말, 고구려의 침입으로 금관가야가 쇠락해져 가야연맹은 한동안 혼란스러웠으나, 5세기 후반, 내륙(고령)의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주도권을 잡고 후기가야연맹을 형성하였다. 대가야는 낙동강과 김해만 대신 섬진강 유역을 장악하고 새로운 무역항으로 이용하였으며, 삼국과 왜, 중국의 남제에도 사신을 보내었다(479). 그러나,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가야연맹의 소국들이 멸망해갔으며, 532년 금관가야에 신라에 항복하여 멸망하고 562년 대가야마저 신라에 정복되어 멸망하여, 가야연맹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24. 10. 13.
[삼국시대/가야/고분]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高靈 池山洞 三十二號墳 出土 金銅冠) : 5세기 대가야에서 제작한 금동관이다. 얇은 동판을 두드려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도금하였다. 중앙의 넓적한 판 위에 X자형의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매우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며, 신라 및 백제의 관모(冠帽)에 비해 고유성이 강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한민국의 보물 제2018호. 2024. 10. 3.
[삼국시대/가야] 가야 연맹 가야 연맹  ★ 가야(加耶, 伽倻) :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 연맹체이다. 변한의 금관가야(구야국)를 중심으로 변한의 12개 소국을 결집해 성립되었다. 금관가야가 이끈 가야 연맹을 "전기 가야 연맹"으로 부르며, 이후 400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금관가야가 약화되자 5세기 경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이 탄생하였다. 이후 백제와 신라의 경쟁 구도 관계 속에서 압력을 받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금괌가야가 멸망하고(532), 연이어 대가야가 멸망함으로써(562), 가야 연맹 전체가 멸망하였다. 2024. 9. 9.
[삼국시대/가야/인물] 우륵 우륵 충북 충주 탄금대의 우륵 동상 ★ 우륵(于勒, ?~?) : 대가야의 악사. 가야의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인 쟁(箏)을 참고하여 가야금(伽倻琴)을 만든 후,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금 12악곡을 짓도록 했다. 이후 신라 진흥왕(眞興王)에게 귀부하여 대가야의 음악을 신라에 전수하였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과 함께 한국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19. 4. 28.
[삼국시대/가야/고분] 대가야의 금관(복원) 대가야의 금관(복원)  ★ 대가야의 금관 :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6세기 경 대가야 시대의 황금 금관.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傳 高靈 金冠 및 裝身具 一括) 중 일부이다. 도굴되었던 유물오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았으나, 고령 지산동 고분군 45호분의 것으로 밝혀졌다.   높이 11.5㎝, 밑지름 20.7㎝. 넓은 띠의 아래위에 점을 찍었고, 녹색 곡옥으로 장식하였다. 띠 위에는 풀꽆 모양 장식을 달았다. 이것 외에 부속 장식이 더 있으나 어느 부분에 부착되었던 것인 확실하지 않다.   가야의 금관은 풀잎이나 꽃잎 모양을 장식하여 가야 문화만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 대한민국 국보 제138호. 2019. 4. 27.
[삼국시대/가야/고분] 고령 지산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 고령 지산동 고분군(高靈 池山洞 古墳群)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대가야의 무덤군. 200기가 넘는 크고 작은 무덤들이 있는데 윗부분은 대형무덤(지름 10m 이상). 가운데에는 중간크기의 무덤(지름 10m 안팎), 아래쪽에는 작은 무덤들이 모여 있다. 주산의 남쪽 제일 큰 무덤(47호분)이 금림왕의 능이라고 전해오며, 그 아래 큰 무덤들도 대가야의 왕릉이라고 전해온다. 대형고분에서는 철제 갑옷, 금동관 등이 출토되었으며, 순장(殉葬) 흔적이 있다. 사적 제79호. 2019. 4. 26.
[삼국시대/가야/토기] 대왕(大王)이 새겨진 뚜껑딸림목긴항아리 대왕(大王)이 새겨진 뚜껑딸림목긴항아리(有蓋長頸壺)    ★ 대왕(大王)이 새겨진 뚜껑딸림목긴항아리(有蓋長頸壺) : 몸체에 대왕(大王)이라는 글자가 오목새김된 뚜껑딸림목긴항아리(有蓋長頸壺). 제작 시기와 출토지를 알 수 없으나 대가야계 토기로 추정한다. 충남대학교 소장. 2019.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