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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4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 북로군정서 북로군정서 ★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 1919년 북간도에서 만든 무장독립운동 단체. 대종교 계통에서 비롯되었으며, 1919년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서일 김좌진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중국 왕칭에 사관 양성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하였다. 2020. 12. 22.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김좌진 김좌진 ★ 김좌진(金佐鎭, 1889~1930) : 일제 강점기의 군인이자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치인. 충청남도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고 가노 해방 및 전답을 무상 분배, 교육사업과 언론운동을 펼쳤다. 무관학교 졸업 후 북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1917년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1918년 만주로 망명, 무오 독립선언에 하였다. 1919년 북로군정서 사단장과 사관연성소 소장을 역임하였고, 1920년 청산리 전투를 지휘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자유시 참변 이후 1925년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직 겸임한 신민부를 창건하고,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부교장으로서 정예사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대한민국 임시정.. 2020. 10. 26.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청산리 전투 청산리 전투 ★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이라고도 한다. 1920년 10월 김좌진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간도에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벌인 전투. 일제는 중국 마적일 일으킨 훈춘 사건을 빌미로 만주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였고, 독립군은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길림성 화룡현 내의 여러 지역에서 교전하여 청산리 골짜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은 중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한국 독립군이 러시아로 건너.. 2020. 10. 25.
[일제강점기/무장독립투쟁]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 봉오동 전투(鳳梧洞戰鬪)는 1920년 6월 6일~6월 7일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洪範圖) 등이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 한경세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 남양수비대 예하 1개 중대와 싸운 전투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무부는 봉오동 승첩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전사한 반면 아군은 불과 4명만 전사했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 북로독군부군은 청산리로 옮겨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하여 청산리 전투를 전개해 나간다. ★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 2017.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