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6 [삼국시대/가야] 가야연맹의 멸망 가야연맹의 멸망 ★ 가야연맹의 멸망 : 4세기말, 고구려의 침입으로 금관가야가 쇠락해져 가야연맹은 한동안 혼란스러웠으나, 5세기 후반, 내륙(고령)의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주도권을 잡고 후기가야연맹을 형성하였다. 대가야는 낙동강과 김해만 대신 섬진강 유역을 장악하고 새로운 무역항으로 이용하였으며, 삼국과 왜, 중국의 남제에도 사신을 보내었다(479). 그러나,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가야연맹의 소국들이 멸망해갔으며, 532년 금관가야에 신라에 항복하여 멸망하고 562년 대가야마저 신라에 정복되어 멸망하여, 가야연맹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24. 10. 13. [가야] 전기가야연맹 전기가야연맹 ★ 전기가야연맹(前期伽耶聯盟) : AD 1세기 경 김해의 구야국(금관가야)를 중심으로 국가연맹체를 계승하였다. 철(鐵)이 풍부하고 제철기술이 뛰어났으며, 철을 수출하였다. 금관가야는 김해 지역의 낙동강과 고김해만(古金海灣)이라는 천혜의 항구를 이용하여 왜와 한군현, 백제 등과 교류하며 해상무역으로 번성하였다. 4세기말, 고구려의 침입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가야연맹의 맹주는 대가야로 넘어갔다(5세기 후반). 2024. 9. 12. [삼국시대/가야] 가야 연맹 가야 연맹 ★ 가야(加耶, 伽倻) :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 연맹체이다. 변한의 금관가야(구야국)를 중심으로 변한의 12개 소국을 결집해 성립되었다. 금관가야가 이끈 가야 연맹을 "전기 가야 연맹"으로 부르며, 이후 400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금관가야가 약화되자 5세기 경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이 탄생하였다. 이후 백제와 신라의 경쟁 구도 관계 속에서 압력을 받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금괌가야가 멸망하고(532), 연이어 대가야가 멸망함으로써(562), 가야 연맹 전체가 멸망하였다. 2024. 9. 9. [삼국시대/가야/고분] 돌덧널무덤(석곽묘) (경남 김해 예안리 고분군) 돌덧널무덤(석곽묘) (경남 김해 예안리 고분군) ★ 돌덧널무덤(석곽묘 石槨墓) : 시신을 옮기는 널길 없이 돌로 네 벽을 쌓은 무덤이다. 한자로는 ‘석곽묘(石槨墓)’이다. 무덤 내부는 나무널(목관)을 넣을 수 있는 정도의 규모로 피장자의 착장품과 껴묻거리(부장품)가 있다. 한반도의 돌덧널무덤은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하부구조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 가장 성행하였으며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가야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굴식무덤이 보편화되는 6세기 중엽부터 쇠퇴하였다. ★ 김해 예안리 고분군 : 가야의 서민계층 집단 묘역. 300여기의 무덤이 있으며, 무덤의 형태는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석실묘 등 매우 다양하다. 또한,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다양하고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100.. 2019. 4. 27. [삼국시대/가야/토기] 금관가야의 토기 금관가야의 토기 2019. 4. 24. [삼국시대/가야/고분] 바람개비 모양 방패꾸미개(파형동기) 바람개비 모양 방패꾸미개(파형동기) ★ 바람개비 모양 방패꾸미개(파형동기 巴形銅器) : 바람개비 모양 청동기로 방패나 화살통, 활집 등에 부착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에서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3~6세기)에서만 출토되었으며, 최상위층의 무덤에서만 발견되어 신분 상징물로 유추한다. 일본에서는 야요이시대(弥生)부터 고훈시대(古墳) 전기(2․3세기~4세기)에 걸쳐 출토되어, 금관가야와 일본이 교역했음을 알 수 있다. 2019. 4.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