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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진자료실/삼국~남북국366

[백제/고분유물]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금동관모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금동관모 ★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금동관모(瑞山富長里古墳群出土金銅冠帽)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의 널무덤 목관 내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제작 시기는 4~5세기로 추정한다. 백제의 왕이 서산 지역 유력자에게 하사한 것으로 추정하며, 당시 서산 지역이 지역의 주요 거점임을 보여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7.
[백제/국제관계]백강 전투(白江戰鬪) 백강 전투(白江戰鬪) ★ 백강 전투(白江戰鬪) : 663년 백강(현재 금강 하구)에서 벌어진 백제·왜의 연합군과 당·신라의 연합군이 벌인 전투.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하자 유민들은 부흥운동을 벌였고, 백제와 긴밀한 관계였던 왜(倭)는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였으며, 663년 대규모의 수군을 파병하였으나, 백강(금강 하구)에서 나당엽합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전멸하였다. 내분과 왜의 원군마저 패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결국 실패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6.
[백제/인물]계백 장군 묘 계백 장군 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소재 ★ 계백(階伯, ? ~ 660) : 백제 말기의 군인.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군사 5천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5만의 신라군과 네 차례의 전투를 벌인 끝에 백제군이 전멸하고 계백도 전사했다.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의 충신이라 불린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24.
[백제/고분]의자왕 가묘 의자왕 가묘 ★ 의자왕 가묘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군 내에 조성된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 ★ 의자왕(義慈王, 599~660, 재위 641 ~ 660) : 백제의 제 31대 왕이자 마지막 왕.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젊은 시절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칭송받았으나 말년에 방탕과 실정을 일삼았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왕족들과 함께 당나라 낙양으로 끌려갔다. ★ 부여융(扶餘隆, 615~682) : 백제의 왕족이자 당나라 장군으로 의자왕의 아들 중 한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에 귀순하여 백제 부흥운동 토벌에 협조하고 당나라의 백제군공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백제 유민들을 약탈하였다. 당나라에서 광록대부 태.. 2022. 12. 17.
[백제/고분벽화]동하총(능산리 1호분) 백호도 동하총(능산리 1호분) 백호도 ★ 동하총(東下塚, 능산리 1호분)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 중 하나로 백제에서 보기 드문 벽화고분이다. 화강암과 편마암을 다듬어 축조한 굴식돌방무덤이며 널방 벽에는 사신도(四神圖)가 천정에는 인동과 연꽃 구름 등이 그려져 있다. 백제 사비시대(538~660)에 축조되었으며 고분군 서쪽에서는 백제 왕실 절로 추정되는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6.
[백제/고분]동하총(능산리 1호분) 동하총(능산리 1호분) ★ 동하총(東下塚, 능산리 1호분)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 중 하나로 백제에서 보기 드문 벽화고분이다. 화강암과 편마암을 다듬어 축조한 굴식돌방무덤이며 널방 벽에는 사신도(四神圖)가 천정에는 인동과 연꽃 구름 등이 그려져 있다. 백제 사비시대(538~660)에 축조되었으며 고분군 서쪽에서는 백제 왕실 절로 추정되는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4.
[백제/고분]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후기 고분들로 사비의 외곽성인 나성 밖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여러차례 발굴이 이루어졌다.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 부여)에 조성되었으며, 20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중에 벽화고분인 동하총(능산리 1호분)이 있다. 고분 왼쪽에는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가 있으며, 1993년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으며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 사적 제 14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3.
[백제/유물]부여 목간(扶餘木簡) 부여 목간(扶餘木簡) ★ 부여목간(扶餘木簡) :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된 목간. 백제의 행정구역과 호구조가, 도랼형 등이 표기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1.
[백제/불교미술]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禮山 花田里 石造四面佛像)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조사면불상으로 백제의 유일한 사면불(四面佛)이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보이는 여래좌상이,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다. 서면과 북면은 머리가 많이 훼손되었고 4면 모두 손이 유실되었다. 불상 모두 머리부분에 불꽃과 연꽃무의 광배가 있다. 성왕이 무령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령왕릉이 완성된 뒤인 527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794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0.
[백제/정치]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백제왕 즉위 기사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백제왕 즉위 기사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1. 29.
[백제/건축]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후) 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후)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5.
[백제/건축]미륵사지 석탑 서탑 복원안 미륵사지 석탑 서탑 복원안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4.
[백제/건축]미륵사지 석탑 서탑 입면도(복원전) 미륵사지 석탑 서탑 입면도(복원전)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3.
[고구려/고분]우물(안악 3호분) 우물(안악 3호분)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7.
[고구려/고분]방앗간(안악 3호분) 방앗간(안악 3호분)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6.
[고구려/고분]외양간(안악 3호분) 외양간(안악 3호분)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5.
[고구려/고분]마굿간(안악 3호분) 마굿간(안악 3호분)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4.
[고구려/고분]고깃간(안악 3호분) 고깃간(안악 3호분) 벽화(위), 실측도(아래)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3.
[백제/공예] 칠지도 실측도 칠지도 실측도 ★ 칠지도(七支刀) :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인 철제 칼. 길이 74.9cm의 양 옆으로 모두 6개의 가지가 뻗은 모양으로 앞면에 35자, 뒷면에 27자의 금상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한다. 한국 역사학계는 칠지도가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일본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에 대한 증거라 주장하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3.
[고구려/고분]마차고(안악 3호분) 마차고(안악 3호분) 벽화(위), 실측도(아래) ★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다. 35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입구에 7행 68자의 글이 있는데, 동진의 연호 ‘永和十三年(357)’과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기록이다. 동수를 무덤의 주인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고국원왕이 유력하다.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길, 연실, 앞방, 뒷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방 좌우에는 조그만 옆방(側室)이 달려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각 방과 널길벽, 회랑벽에 그려져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 부엌·우사·마구, 무악의장대의 행렬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