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자강회 취지서
<한글>
근래 우리나라에 뜻있는 관리와 선비들이 독립의 기초를 위해 대한 자강회를 설립했으며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무릇 나라의 독립은 자강(自强)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자강을 배우지 못하고 인민이 스스로 우둔하여 국력이 쇠퇴하여 마침내 현재의 어려운 지경에 처하여 다른 나라의 보호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는 모두 자강의 방법을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완고한 마음으로 자강에 힘쓰지 않는다면 끝내 멸망하게 될 뿐이니 어찌 오늘 머뭇거릴 수 있겠는가.
아, 뜻있는 우국지사가 혹 하늘의 근심을 듣고 혹 땅의 통곡을 들어서 진실로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고 하나, 나라의 위기를 당하여 다만 눈물 흘리고 괴로운 한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나라에 무슨 이익이며 군주에게 무슨 보필이 되겠는가. 옛날 위(衛)나라 문공(文公)이 나라를 중흥한 것은 식산(殖産)이 그 기본이며, 프로이센이 떨치고 일어난 것은 학교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부흥의 생각을 잊지 않고 자강의 방법을 강구했기 때문에 대업을 이루어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삼천리 영토가 흠이 없고 2000만 민족이 스스로 살고 있으니, 만약 자강을 위해 분발하여 서로 협력하면 부강하게 되어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시급히 분발할 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강의 방법은 다름 아니라 교육진작(敎育振作)과 식산흥업(殖産興業)에 있다. 무릇 교육이 흥하지 못하면 민지(民智)는 미개해지고,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면 국부(國富)도 늘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민지를 깨우치고 국력을 양성할 방법은 오직 교육과 산업의 발달이지 않겠는가? 이처럼 교육과 산업의 발달이 유일한 자강의 방법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가난을 없애는 것이 자강의 목적이라면 먼저 국민의 정신을 배양하지 않을 수 없다. 단군과 기자 이래 4000년 동안 이어져 온 한국의 정신을 2000만 민족의 뇌수에 흐르게 하여 한 호흡 한 순간이라도 자국의 정신을 잊지 않게 한 후에야 자강의 마음을 단련하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열정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안으로는 조국의 정신을 기르고 밖으로는 문명의 학술을 배우는 것이 오늘날 시급한 일이다. 이것이 자강회를 설립한 이유다. 전국의 뜻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북받치지 않겠는가. 주저하지 말고 이 열정에 함께 하여 속히 자강과 국권 회복을 위해 분발하면 대한 독립의 기초가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니 어찌 온 나라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황성신문〉, 1906년 4월 2일
<원문>
近日我韓全國에 有志紳士等이 大韓國獨立의 基礎를 爲야 大韓自强會를 發起얏 其趣旨目的이 如左니,
夫邦國之獨立은 惟在自强之如何耳라 我韓이 從前不講於自强之術야 人民이 自錮於愚昧고 國力이 自趂於衰敗야 遂至於今日之艱棘야 竟被外人保護니 此皆不致意於自强之道故也라 尙此因循玩愒야
不思奮勵自强之術이면 終至於滅兦而乃已니 奚但今日而止哉아 嗚呼라 有志憂國之士가 或仰天太息며 或據地痛哭이 固是不能自己者나 然이나 楚囚相對에 徒下新亭之淚고 燕欹慷慨에 空懷不平之恨이 於國何益이며 於君何補哉아 昔衛文公之中興은 基本於殖產고 普魯士之振起 功在於學校니 彼皆無忘於興復之念而講求於自强之術故로 乃能成就其大業而遺蹟於後世者也라 今我韓은 三千里疆土가 無缺고 二千萬民族이 自在니 苟能奮勵自强야 團體共合이면 猶可望富强之前途而國權之回復也 라 迨此今日야 豈非汲汲奮發之時乎아
然이나 如究其自强之術이면 無他라 在振作敎育也오 在殖產興業也니 夫敎育이 不興則民智未開고 產業이 不殖則國富莫增나니 然則開民智養國力之道 亶不在敎育產業之發達乎아 是知敎育產業之發達이 即惟一自强之術已라 雖然이나 抑欲貧徹此自强之目的인 不得不先培養其國民之精神야 使檀箕以來四千年韓國之精神으로 灌注於二千萬人人之腦髓야 一呼吸一瞬息之頃이라도 不忘於自國之精神然後에야 方可鍊自强之心膽而作復權之活機也리니 內養其祖國之精神며 外吸乎文明之學術이 即今日時局之急務也此ㅣ自强會之所以發起者也ㅣ라 唯我全國有志諸君은 孰無慷慨回復國權之想哉아 請勿蹰踷고 同此血性야 亟亟奮發於自强之術而烝進於回復之途則大韓獨立之基礎가 必權輿於此矣니 玆豈非全國之幸福也哉아
〈皇城新聞〉, 1906年 4月 2日
대한자강회 월보
• 대한자강회(大韓自強會) : 1906년 3월 ~ 1907년 8월 21일
이준이 결성했다가 해산된 헌정연구회를 계승한 애국계몽 운동 단체이며 장지연, 윤효정, 윤치호 등이 주도하여 1906년 3월에 결성하였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 자강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고종의 강제 퇴위를 반대하였다가 통감부에 의해 1907년 8월 21일에 강제로 해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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