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1운동8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최용신 최용신 ★ 최용신(崔容信, 1909~1935) :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농촌계몽운동가.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사리(현재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서 봉사하였다.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1931년부터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여 농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일본의 방해와 탄압으로 한계를 느끼고 일본에 유학하였는데, 병을 얻어 귀국하였다. 병마를 무릅쓰고 농촌계몽운동을 하다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소설가 심훈의 대표작인 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2021. 3. 28.
[일제강점기/일제의탄압과만행]일제강점기의 신문 검열 일제강점기의 신문 검열 ★ 3.1운동 이후 일제의 통치방식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뀐 뒤, 한국인의 고등교육과 신문 ․ 잡지의 출간과 언론활동도 허용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검열과 정간 ․ 폐간 등으로 한국인의 언론 활동은 철저히 탄압하였다. 2021. 3. 1.
[일제강점기/언론]조선일보 창간호 조선일보 창간호 ★ 일제강점기의 조선일보 :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고, 이 정책의 일환으로 1920년 한국인 민간신문 발행을 허가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조선일보이다(1920년 창간). 1920 ~ 30년대에는 을 지원하는 등의 항일 운동과 사회 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으나, 1936년부터 총독부의 개입으로 항일 성향이 줄어들었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정간을 당하였다가, 광복 후 복간되었다. 2021. 2. 28.
[일제강점기/언론]동아일보 창간호 동아일보 창간호 ★ 일제강점기의 동아일보 :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고, 이 정책의 일환으로 1920년 한국인 민간신문 발행을 허가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동아일보이다(1920년 창간). 초대 대표는 김성수였으며, , , 를 사시(社是)로 내세웠다. , , 등의 민족운동을 지원하였다. 으로 무기한 정간을 당하였고, 1940년 폐간되었다. 광복 후, 복간되었다. 2021. 2. 24.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가네코 후미코 가네코 후미코 ★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 일본의 아나키스트, 한국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의 부인. 일본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출생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1912년 한국의 충청북도의 친척에게 맡겨져 자랐으며, 3.1 운동을 목격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지에 공감하였다. 1919년 일본으로 돌아와 사회주의자와 교류하며 아나키스트가 되었고, 1922년 박열과 함께 살며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일본을 비판하였다. 1923년 남편 박열과 함께 일본 황태자 암살 기도 혐의로 체포되어 1926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1926년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2021. 2. 8.
[일제강점기/친일파] 최린 최린 ★ 최린(崔麟, 1878~1958) :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3.1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변절했다. 광복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병보석을 풀여났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선전기관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한 뒤 행방을 알려지지 않았다. 1958년 사망하였다. 2021. 2. 5.
[일제강점기/임시정부]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4월 11일 ~ 1948년 8월 15일) : 1919년 3월 1일 경성(서울)에서 선포된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의 임시 정부들을 통합하여 상하이에서 단일 정부를 수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하고 정치 체제는 '민주공화국'으로 하였으며,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입법·행정·사법의 3권.. 2020. 10. 24.
[근대/1차세계대전]파리 강화회담 파리 강화회담 ★ 파리 강화회담(회의)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이 패배한 동맹국에 관련하여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1919년 1월 18일 파리에서 열린 회담. 32개국에서 온 정치가들과 민족주의 세력이 참여하여 국제연맹 창립과 패전국의 식민지 박탈 등을 논의하였다. 결과는 독일과의 베르사유 조약 체결로 독일의 식민지 해체 및 전쟁보상금 부과 등의 광범위한 재제가 주된 내용이었다. 회담은 1919년 1월 18일에 개최되어 1923년 7월이 되어서야 완료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탄원서를 제출하고 외교활동을 전개했으나 회담에 참석하지 못했다. 2020.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