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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박해4

[근대/열강의침략] 병인양요 병인양요 ★ 병인양요(丙寅洋擾) : 고종 3년(1866)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삼아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7척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조선을 이것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대항했으며, 프랑스 해군은 40여 일 만에 물러났다. 프랑스는 천주교 박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2023. 6. 3.
[근대/사상과학문]베르뇌 신부 베르뇌 신부 ★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1814~1866)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선교사. 병인박해(1866) 때에 처형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이다. 2020. 7. 9.
[근대/정치]절두산 천주교 성지 절두산 천주교 성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 절두산 천주교 성지(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 한강의 동북쪽 강변에 있는 양화나루와 잠두봉 일원. 원래 나루터 양화진(楊花津)을 낀 명승지로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꼭 유람선을 띄웠다고 전해져 온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 함대가 양화나루(楊花津)까지 올라왔다가 돌아갔고,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양화나루 옆의 봉우리인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하여 1만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그 뒤로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 , 병인양요(1871) 등의 사건으로 살육은 6년간이나 계속됐고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로 기록된다. 1966년 순교 1.. 2020. 7. 7.
[근대/정치]병인박해 병인박해 ★ 병인박해(丙寅迫害) : 조선 말기(고종 3년, 1866)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 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고도 하며, 당시 6천여 명의 평신도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선교사 등이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선교사 리델은 청나라로 탈출해 천진 주재 프랑스 함대사령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에게 박해 소식을 전했고 이는 그해 11월 발생한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