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제의침략16

[개화기]돈의문으로 입성하는 일본군(1904) 돈의문으로 입성하는 일본군(1904) ★ 돈의문(敦義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이다. 근대 이후부터 서대문(西大門)으로도 불린다.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으나 1915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현재 돈의문 자리에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2023. 12. 14.
[일제강점기/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광복군의 활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광복군의 활동 ★ 대한민국 임시 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4월 11일 ~ 1948년 8월 15일) : 1919년 3월 1일 경성(서울)에서 선포된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의 임시 정부들을 통합하여 상하이에서 단일 정부를 수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하고 정치 체제는 '민주공화국'으로 하였으며,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입법·.. 2021. 3. 7.
[일제강점기/무단통치]칼을 찬 교원 칼을 찬 교원 ★ 무단 통치(武斷統治) : 헌병경찰통치(憲兵警察統治).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의 일제의 식민 통치 방식으로, 헌병의 무력을 보여주는 등 조선인에게 압박을 가해 조선민족의 민족의식을 억눌렀다. 2020. 10. 1.
[일제강점기/무단통치]조선 태형령 조선 태형령 ★ 조선 태형령(朝鮮笞刑令) : 일제강점기 1910년대 무단 통치 상징 중의 하나로, 공식적인 형벌 제도 안에서 한국인에게 태형(笞刑)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법률. 3⋅1 운동 이후 폐지되었다(1920년 4월 1일). 2020. 10. 1.
[일제강점기/1940년대]고이소 구니아키 고이소 구니아키 ★ 고이소 구니아키(小磯 國昭, 1880~1950) : 일본의 육군 군인, 정치인. 제4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였으며, 1942년부터 1944년까지 8대 조선 총독을 지냈다. 2020. 9. 29.
[일제강점기/1930년대이후]미나미 지로 미나미 지로 ★ 미나미 지로(南 次郎, 1874~1955) : 일본의 군인, 정치가.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제7대 조선총독을 역임하였으며, 총독 재직 중 내선일체와 창씨개명령을 시행하였다.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혼선과 조선인의 반발로 1942년 총독직에서 해임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A급 전범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었다. 2020. 9. 29.
[일제강점기/1920년대]야마나시 한조 야마나시 한조 ★ 야마나시 한조(山梨 半造, 1864~1944) : 일본의 육군 대장으로, 1927년부터 1929년까지 4대 조선 총독을 지냈다. 2020. 9. 28.
[일제강점기/1920년대]우가키 가즈시게 우가키 가즈시게 ★ 우가키 가즈시게(宇垣 一成, 1868~1956) : 일본의 군인이며 정치인.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으로, 1927년 조선 총독을 역임했고, 1923년~1927년, 1929년~1931년에는 육군대신을 지냈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31년부터 1936년까지 6대 조선 총독을 역임했다. 2020. 9. 28.
[일제강점기/1910년대]하세가와 요시미치 하세가와 요시미치 ★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 : 일본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일본 제국 육군 원수를 역임했고, 1916년부터 1919년까지 제2대 조선총독을 지냈다. 2020. 9. 27.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 ★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 일본이 1910년 8월 29일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1945년 9월 2일까지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 조선총독부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에도 당분간 한반도 지역을 계속 통치하였고, 1945년 9월 3일부로 38도선 이남 지역을 미군정에게 인계하였고, 1945년 9월 28일 공식적으로 소멸되었다. 청사는 1995년 철거하였다. 2020. 9. 27.
[개화기/인물] 민영환의 묘 민영환의 묘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8.
[개화기/인물] 민영환의 유서 민영환의 유서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8.
[개화기/인물]관복을 입은 민영환 관복을 입은 민영환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8.
[개화기/인물] 민영환 초상 민영환 초상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7.
[개화기/인물] 민영환 민영환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7.
[개화기/정변및사건]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과 대신들(아관파천) 러시아 공사관의 고종과 대신들 (아관파천) ★ 아관파천(俄館播遷) :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 2020.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