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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상대8

[신라상대/정치행정]경주 남산 신성비 경주 남산 신성비 ★ 경주 남산 신성비(慶州南山新城碑) : 신라 진평왕 13년(591) 신라 도성인 경주의 남산에 산성(남산 신성)을 쌓을 때 축성 공사와 관련한 내용을 새겨 세운 비석. 지금까지 총 10개의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각 비문의 내용과 형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축성 시기, 공사 구간, 공사 인원, 관리자의 책임 여부 등이 기록되어 있다. 2023. 5. 1.
[신라/정치행정]포항 냉수리 신라비 포항 냉수리 신라비 ★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 : 경상북도 영일군(현재 포항시)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석비.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89년에 발견되었다. 자연석의 앞면, 뒷면, 윗면 삼면에 글을 새겼으며, 앞면 12행 152자, 뒷면 7행 59자, 윗면 5행 20자 등 총 231자가 쓰여져 있다. 비문은 지증왕을 비롯한 신라 6부의 대표 7명이 주민의 재산 상속 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다. 국보 제264호.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사무소 마당에 있다. 2023. 4. 7.
[신라/불교유적]경주 황룡사지 평면도 경주 황룡사지 평면도 ★ 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 삼국시대 신라에 있었던 사찰로,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현재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에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 또는 선덕여왕 14년(645)에 준공되었으며, 황룡사 9층목탑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소재. 사적 제 6호. 2019. 5. 20.
[신라상대/사상과학문]임신서기석 임신서기석 ★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의 언덕에서 발견된 자연석. 신라의 두 청년이 임신년(壬申年, 진흥왕 13, 552)에 충도(忠道)를 지키고 유교경전을 학습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보물 제1411호. 2019. 5. 15.
[신라상대/유물유적]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磨雲嶺眞興王巡狩碑) : 함경남도 리원군의 마운령에 있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이 568년 8월에 이곳을 돌아보고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이 비석으로, 진흥왕의 업적과 순시 목적, 비를 세운 연유, 왕을 수행한 사람들의 출신과 벼슬, 이름등이 새겨져 있다. 화강석을 네모로 다듬어 만들었으며, 높이 1.36m, 너비 45cm, 두께 30cm이고 갓돌은 배집 지붕 형식이다. 앞면에 26자씩 10줄, 뒷면에 25자씩 8줄, 모두 415자의 글이 새겨져 있눈데, 393자를 읽을 수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이다. 당시의 역사와 서예,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6세기에 발견되어 17세 한백겸이 에 고려 윤관의 비로 소개하였으나, 1929년에 최남선이 찾아내어.. 2019. 5. 14.
[신라상대/유물유적]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黃草嶺 眞興王 巡狩碑) : 신라 진흥왕이 568년(진흥왕 29) 황초령에 건립한 순수비. 함경남도 장진군에 있다. 진흥왕이 확장된 영역을 순시하면서 세운 것으로, 비를 세우게 된 연유와 의의, 진흥왕의 업적과 순회한 목적, 수행한 사람들의 직위와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의 신라의 영토 범위와 관직, 지명 등을 밝혀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비석은 화강석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비문은 12줄에 35자씩 420자이며, 글씨는 예서체와 해서체로이다. 높이 1.17m, 넓이 44cm, 두께는 21cm이다. 북한의 함경남도 함흥력사박물관 소장. 북한의 국보 110호. 2019. 5. 14.
[신라/정치행정]울진 봉평리 신라비 울진 봉평리 신라비 ★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비석. 1988년 발견되었다. 비무 일부가 마모되어 정확한 판독은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각장방형의 자연 화강암에 한 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예서풍의 10행 398자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작으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하다. 비문의 내용은 당시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지역 주민과의 분쟁과 이 처리 과정 및 결과 등이다. 6세기 신라의 영토, 율령체제, 왕권의 한계, 관료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국보 제242호. 2019. 5. 13.
[신라상대/불교유적]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경주 황룡사지 (慶州 皇龍寺址) ★ 경주 황룡사지(慶州 皇龍寺址) : 삼국시대 신라에 있었던 사찰로,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나 현재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에 시작하여 진흥왕 27년(566) 또는 선덕여왕 14년(645)에 준공되었으며, 황룡사 9층목탑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과 더불어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소재. 사적 제 6호. 2019.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