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작농4

[일제강점기/경제수탈]일제의 식량 수탈 일제의 식량 수탈 산미증식계획으로 증산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항구에 쌓아놓은 모습 ★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 : 일제가 일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일본의 식량공급지로 만들고자 실시한 정책으로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실시되었다. 일제는 쌀 생산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증산량보다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 한국의 소작농이 몰락하고 화전민이 증가하였다. 일본에서는 쌀 가격 폭락으로 일본 농촌 경제가 악화되어 1934년 중단되었다. 2021. 2. 21.
[일제강점기/경제수탈] 미곡 생산량과 수탈량(산미증식계획) 미곡 생산량과 수탈량 (산미증식계획) ★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 : 일제가 일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일본의 식량공급지로 만들고자 실시한 정책으로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실시되었다. 일제는 쌀 생산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증산량보다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 한국의 소작농이 몰락하고 화전민이 증가하였다. 일본에서는 쌀 가격 폭락으로 일본 농촌 경제가 악화되어 1934년 중단되었다. 2017. 6. 5.
[일제강점기 / 경제수탈] 일제강점기의 농민 구성 변화 일제강점기의 농민 구성 변화 2017. 6. 3.
[일제강점기/경제수탈] 토지조사 사업 이후 농민의 변화 토지 조사 사업 이후 농민의 변화 ★ 조선 토지 조사 사업(朝鮮土地調査事業) :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 조사 사업. 근대적 토지소유권의 확립을 구실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의 토지 수탈이 목적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 이후, 조선 총독부와 일본인 소유 토지가 대폭 늘어났느며, 대지주 계층이 등장하고 영세 소작농이 대폭 늘었다. 특히 농민들은 세습적 경작권을 빼앗겨 더욱 빈곤해졌다. 2017.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