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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37

[개화기/대한제국및황실]환구단과 황궁우 환구단과 황궁우 ★ 환구단(圜丘壇) :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한다.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이다. 삼국시대의 제천의례에 기원하였고, 고려 초기부터 환구제(圜丘祭)로 제도화되었다. 조선 초기에도 제를 올렸으나 세조 때 폐지되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황제로 즉위하여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1897). 1912년 일본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으며, 이 건물은 1968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치되었다. 대한민국 사적 157호. ★ 황궁우 :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지은 환구단의 부속 건물. 일제가 철거한 환구단과 달리 현재까지 남아있다. 2020. 8. 22.
[개화기/대한제국및황실]양복을 입은 고종 황제 양복을 입은 고종 황제 ★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4~1907) : 조선의 제26대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2020. 8. 22.
[개화기/열강의침략]명성황후 장례 행렬 명성황후 장례 행렬 ★ 명성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1895)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 고종의 정비로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하고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다. 임오군란 일본 견제를 위해 청의 지원에 의존하였으나 청일전쟁 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했다. 처음에는 개항에 미온적이었으나, 점진적인 개화시책을 통해 친일 성향을 띤 급진 개화파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과 주조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공모에 의해 일본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다(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사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2020. 7. 26.
[근대/대한제국및황실]명성황후 영정 명성황후 영정 ★ 명성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1895)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 고종의 정비로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간섭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하고 민씨 척족을 기용함으로써 세도정권을 부활시켰다. 임오군란 일본 견제를 위해 청의 지원에 의존하였으나 청일전쟁 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했다. 처음에는 개항에 미온적이었으나, 점진적인 개화시책을 통해 친일 성향을 띤 급진 개화파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과 주조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공모에 의해 일본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다(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사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황후로 추봉되었다. 2020. 7. 25.
[근대/개화파] 김익남 김익남 ★ 김익남(金益南, 1870~1937) : 대한제국의 군인, 군의관, 일제 강점기 때의 의사. 한국 초기의 양의사들 중의 한명이며 일본에서 의학을 배워 조선에서 의술을 펼친 최초의 근대 의사. 1902년 대한제국 의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 군의장으로 있다가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멸망하자 망명하였다. 2020. 7. 16.
[근대/대한제국및황실]덕수궁 배치도 덕수궁 배치도 ★ 덕수궁(德壽宮) :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1907년(순종 1) 순종 즉위 후 궁호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개명되었다. 1611년 ~ 1615년에는 조선의 정궁이었고 1897년 ~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다. 원래는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임시로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광해군이과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였다. 1897년(고종 34)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궁궐다운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큰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여러 전각을 중건하였다. 원래의 면적은 현재보다 넓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 사적 .. 2020. 7. 4.
[근대/건축]덕수궁 석조전 동관 덕수궁 석조전 동관 ★ 덕수궁 석조전 동관(德壽宮 石造殿 東官) : 대한제국기 동안에 지어진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3충 석조 건물이다. 구한말 총세무사 브라운의 권유로 영국인 하딩(J. R. Harding)이 설계하고 심의석(한국인), 사바틴(러시아인), 오가와(일본인), 데이비슨(영국인) 등이 감독으로 1900년 기공하여 1909년 준공했다. 그리스 건축을 조형(祖型)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이른바 콜로니얼 스타일(식민지 양식) 건물로서 같은 모양의 건물이 18세기 이후 영국 식민지의 여러 곳에 세워진 바 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집무실과 외국사신들의 접견실로 사용할 목적에서 지어졌는데, 지하는 시종들이 대기하고, 1층 황제의 접견실, 2층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 2020. 7. 3.
[근대/대한제국및황실]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 덕수궁 중화전(德壽宮 中和殿) : 덕수궁의 정전(正殿). 1902년 지었으나, 1904년 화재로 다시 지었다.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원래 중화전 주변으로 회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으며, 현재 중화문 동쪽에 일부가 남아 있다. 보물 819호.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3.
[근대]동십자각 동십자각 위 : 밖, 아래 : 안 ★ 동십자각(東十字閣) : 경복궁 동남쪽 모서리에 설치했던 망루. 서십자각과 짝으로 이루었으나 서집자각은 1915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사적 117호(경복궁 부속). 2020. 7. 3.
[근대]숙정문의 모습 숙정문의 모습 ★ 숙정문(肅靖門) : 숙청문(肅淸門)으로도 불린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북쪽의 대문이다.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1.12 사태 이후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였다가 2006년 개방하였다. 2020. 7. 2.
[개화기]돈의문의 모습(1880년대) 돈의문의 모습(1880년대) ★ 돈의문(敦義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이다. 근대 이후부터 서대문(西大門)으로도 불린다.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으나 1915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현재 돈의문 자리에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2020. 7. 2.
[근대/대한제국및황실]순정효황후와 궁녀들 순정효황후와 궁녀들 순정효황후(순종의 계비)와 궁녀들 ★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1966) : 대한제국의 황후이자 일제 강점기의 이왕비, 이왕대비.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계후(繼后).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 인사인 윤택영의 딸이다. 1910년 10월 한일 합방 당시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으려고 고집하였으나, 숙부 윤덕영이 빼앗아갔다. 해방 이후에는 창덕궁과 정릉 수인재에서 거주하였다. 시호는 헌의자인순정효황후(獻懿慈仁純貞孝皇后)이며, 이는 정식 시호가 아니라 해방 후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올린 사시이다. 순종과 사이에 자녀는 없다. 1959년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법명은 대지월(大地月)이다. 2020. 4. 17.
[근대/대한제국및황실]상궁(尙宮) 상궁(尙宮) ★ 상궁(尙宮) : 조선시대 내명부(內命婦)의 궁관계층(宮官階層)에 속하는 정5품의 여관(女官). 2020. 2. 2.
[근대/과학기술]만세력(萬歲曆) 만세력(萬歲曆) ★ 만세력(萬歲曆) : 서양 역법을 도입하여 정조 6년(1782)에 간행한 <천세력(千歲曆)>을 광무 8년(1904년)에 개정하여 간행한 역법서.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1. 17.
[근대/대한제국및황실]유릉의 석물 유릉의 석물 ★ 홍유릉(洪裕陵) :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광무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릉인 홍릉(洪陵)과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 융희제과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인 유릉(裕陵)이 조성되어 있다. 사적 제207호.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소재. ※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 2019. 12. 22.
[개화기/정치]광무개혁 광무개혁 ★ 광무개혁(光武改革) : 1897년부터 1904년까지 고종이 시행한 개혁. 구본신참(舊本新參)을 원칙으로 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법률과 칙령 개정을 위해 황제 직속 특별입법기구인 교전소를 설치하고 1899년(광무 3년) 오늘날의 헌법과 같은 반포하여 황권의 절대성을 명시하였으며, 정치, 행정, 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복고주의에 기반한 보수적인 개혁의 성과는 미미하였고 열강 세력의 간섭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017. 5. 26.
열강의 이권침탈 열강의 이권침탈 2017.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