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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시대6

[백제/고분]의자왕 가묘 의자왕 가묘 ★ 의자왕 가묘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의 고분군 내에 조성된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 ★ 의자왕(義慈王, 599~660, 재위 641 ~ 660) : 백제의 제 31대 왕이자 마지막 왕.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젊은 시절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칭송받았으나 말년에 방탕과 실정을 일삼았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왕족들과 함께 당나라 낙양으로 끌려갔다. ★ 부여융(扶餘隆, 615~682) : 백제의 왕족이자 당나라 장군으로 의자왕의 아들 중 한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에 귀순하여 백제 부흥운동 토벌에 협조하고 당나라의 백제군공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백제 유민들을 약탈하였다. 당나라에서 광록대부 태.. 2022. 12. 17.
[백제/고분]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 부여 왕릉원(능산리 고분군) :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후기 고분들로 사비의 외곽성인 나성 밖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여러차례 발굴이 이루어졌다.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 부여)에 조성되었으며, 20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중에 벽화고분인 동하총(능산리 1호분)이 있다. 고분 왼쪽에는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의 가묘가 있으며, 1993년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으며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 사적 제 14호.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3.
[백제/유물]부여 목간(扶餘木簡) 부여 목간(扶餘木簡) ★ 부여목간(扶餘木簡) :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된 목간. 백제의 행정구역과 호구조가, 도랼형 등이 표기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12. 11.
[백제/건축]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후) 익산 미륵사지 석탑(복원후)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2. 9. 25.
[백제/정치]백제의 천도 백제의 천도 ★ 백제의 천도 : 백제는 5세기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잃고 475년 웅진(공주)로 수도를 옮겼으며, 538년 성왕대에 수도를 다시 사비(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9.
[백제/건축]익산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의 석탑으로 백제 무왕 재위 중(639년)에 만들어졌다.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원래는 미륵사지에는 3개의 금당과 탑이 있었으나 현재 서탑만 남아있다. 높이는 14.2m이며 파손되어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지만 원래 9층으로 추청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여 2019년에 완공하였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9.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