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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조약9

[개화기/열강의침략]인천의 일본인 거류지 인천의 일본인 거류지 ★ 거류지 : 외국인들이 스스로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도록 조약에 의하여 외국인들에게 정해진 토지에서 거주하거나 영업을 하도록 토지를 빌려주고, 거기에 치외법권(治外法權)을 부여한 지역. 조선에는 교류와 무역을 위한 왜관이 있었다. 근대에는 불평등조약 체결과 열강의 침략으로 일본, 청(중국), 서구열강의 거류지가 늘어났으며, 그 중 일본이 거류지가 가장 많았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폐지되었다. 2020. 9. 20.
[개화기/열강의침략]부산의 일본인 거류지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 ★ 거류지 : 외국인들이 스스로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도록 조약에 의하여 외국인들에게 정해진 토지에서 거주하거나 영업을 하도록 토지를 빌려주고, 거기에 치외법권(治外法權)을 부여한 지역. 조선에는 교류와 무역을 위한 왜관이 있었다. 근대에는 불평등조약 체결과 열강의 침략으로 일본, 청(중국), 서구열강의 거류지가 늘어났으며, 그 중 일본이 거류지가 가장 많았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폐지되었다. 2020. 9. 19.
[개화기/인물] 민영환의 묘 민영환의 묘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8.
[개화기/인물]관복을 입은 민영환 관복을 입은 민영환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8.
[개화기/인물] 민영환 초상 민영환 초상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7.
[개화기/인물] 민영환 민영환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 종묘배향공신. 문과 급제 후 민씨 척족의 총아로서 여러 요직을 거쳤다. 독립협회를 후원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고위 관료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탄하며 을사늑략 체결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일제 헌병에 진압에 막혀 실패하자 11월 30일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020. 8. 27.
[개화기/국제관계]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연무당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연무당 ★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 :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이다. 1876년 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되었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근대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맺은 최초의 조약이며, 일본의 강압적 위협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5.
[개화기/국제관계]강화도 조약 체결 강화도 조약 체결 ★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 :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이다. 1876년 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되었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근대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맺은 최초의 조약이며, 일본의 강압적 위협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20. 7. 15.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운요호 사건(雲揚號事件, 1875) : 통상조약 체결을 위해 일본 군함 운요호가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조선 정부의 동태를 살피다, 조선 수비대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 :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이다. 1876년 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되었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근대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맺은 최초의 조약이며, 일본의 강압적 위협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때는 삭제하겠습니다 2017.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