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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역사문화탐방

석촌동 고분군

by hwawoon 2019. 11. 29.



 




석촌동 고분군

    

 



탐방장소 : 서울 석천동 고분군

탐방날자 : 20191021

    




 

   몇 년 만에 찾은 석촌동 고분군은 고즈넉했다. 주택가 가운데 자리잡은 자그마한 고분군은 몇 기의 돌무지무덤만 없다면 근린공원 같았다. 개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과 커피를 든 직장인들이 느긋하게 산책하고 있었다.

  



석촌동 고분군의 전경

(사진출처 : 경향신문)


  


  석촌동 고분군은 한성 백제의 왕실 묘역이다. 지금은 동네 근린공원 규모이지만 원래 묘역은 석촌역 일대까지 포함할 정도로 넓었고 크고 작은 고분이 300기 가까이 있었다. 석촌동(石村洞)이라는 지명이 왜 생겼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70년대의 강남 개발을 거치면서 몇 개의 무덤만 남고 모두 철거되어 주택단지로 변하고 말았다. 석촌동 고분군을 둘러싼 주택가의 땅밑에는 조사도 못한 채 묻혀버린 한성백제의 무덤 수백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석촌동 고분군의 도면

(사진출처 : 나무위키)




현재의 석촌동 고분군 일대 지도와 일제강점기 도면을 겹친 자료

(사진출처 : 나무위키)





    석촌동 고분군에는 1~5호분 돌무지무덤(積石冢)과 내원외방형 돌무지무덤(來圓外方形積石塚), 2기의 움무덤(土壙墓)이다. 현재 1호분과 내원외방형 무덤 주변은 발굴조사가 중이어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현재 발굴 조사 중인 1호분 일대





  3호분 부터 산책하듯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3호분은 남북으로 긴 형태의 고분군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고분으로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단 규모가 압도적이다. 동서 50.8m, 48.4m로 한 변이 최대 33m인 장군총보다 크다.




무덤 규모가 커서 카메라 앵글에 전체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다



     백제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웅변하듯이 무덤은 한눈에도 장군총을 닮았다. 아마 장군총처럼 7단 정도 되었다면 동양 최대 피라미드는 이 릉()일 것이다. 몇 기 안되지만 고분군의 돌무지무덤은 모두 3단인 것으로 보아 백제식 고분의 형식인 듯 하다
  백제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웅변하듯이 무덤은 한눈에도 장군총을 닮았다. 아마 장군총처럼 7단 정도 되었다면 동양 최대 피라미드는 이 릉()일 것이다. 몇 기 안되지만 고분군의 돌무지무덤은 모두 3단인 것으로 보아 백제식 고분의 형식인 듯 하다.


   3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땅을 다진 뒤 진흙을 깔아 다지고, 그 위에 돌을 쌓았다. 돌은 벽돌처럼 완벽한 사각형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다듬어 장방형이다. 평평한 무덤 위에는 깨진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장군총처럼 완벽하게 다듬지 않았지만 장방형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하였다 




   1980년대까지 무덤 위에 민가(民家)가 지어였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여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으나 4.5m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주검이 묻힌 곳을 발견되지 않았고 수습된 유물도 많지 않다. 무덤 주변에서 백제 토기 조각, 금으로 만든 달개(장식품의 일종), 중국 동진(東晉, 317~420)의 도자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축조 시기는 4~5세기 정도이고, 학계에서는 근초고왕(近肖古王, ? ~375, 재위 346~375)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3호분 남쪽에 나란히 있는 4호분과 2호분은 3호분보다 규모가 작고 교과서에서 실린 3단의 석축 위에 동그마한 봉분이 있는 형태이다. 전형적인 돌무지무덤인 3호분과 달리 흙으로 만든 뒤 겉을 돌을 쌓은 백제식 돌무지무덤이다. 이러한 무덤은 고구려 식 돌무지무덤이 변화하여 백제식으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촌동 고분군의 4호분




 

    4호분은 아랫단의 변이 17m 정도로 사각형의 3단 돌무지 무덤이다. 내부는 진흙을 다져 쌓은 흙무지무덤으로 겉은 돌무지무덤이다. 주검을 묻은 흔적 3군데가 발견되었고 벽골, 토기, 기와 조각등이 발견되었다. 껴묻거리(副葬品)이라 할만한 유물을 발견되지 않았다. 무덤은 4~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촌동 고분군의 2호분



 

  2호분도 4호분처럼 내부는 흙무지무덤이고 외부는 돌무지무덤이다. 25m × 20m 의 사각형 돌무지무덤으로 규모는 4호분보다 조금 크다. 무덤 서북쪽 모서리에서 나무널(木棺) 1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서 흙무지무덤을 만든 뒤 후에 무덤을 확장했음이 밝혀졌다. 3세기 경에 만들어진 굽다리 접시와 곧은입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2호분과 4호분의 아랫단에는 돌의 밀림을 방지하는 호석(護石)이 세워져 있다

 

 

   고분군의 가장 남쪽에 있는 5호분은 고분의 지름은 17m, 높이 3m로 고분군의 돌무지무덤보다는 규모가 작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봉토분으로 보이지만, 내부를 흙으로 다져 쌓고 그 위에 돌을 한 벌 깔고, 다시 흙을 덮은 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이다. 무덤 구조가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어 내부 구조는 발굴하지 않았다. 비슷한 형태의 무덤으로 가락동 1, 2호분이 있는데 구덩이(土壙) 안에 나무널(木棺)과 옹관(甕棺)을 안치하였다. 석촌동 5호분도 비슷한 형식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호분과 같은 즙석봉토분은 한강 중하류 지역의 무덤 양식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워낙 개발이 많이 된 지역이라 예단하기는 어렵다.

    




5호분은 평범한 봉토분처럼 보인다



 

   고분의 측면에는 2기의 움무덤(土壙墓)가 있다. 돌무지무덤에 비해 규모가 작고 형식도 단순하여 무덤의 주인공은 돌무지무덤에 묻힌 이보다 신분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시멘트를 발라 구덩이 형태를 보존하였다.




 

 

2호 움무덤(上), 3호 움무덤(下)





석촌고분군에서 발견한 세계측지계. GPS의 기준이 된다

 

 

 

   몇 년 만에 찾은 석촌고분군의 예전보다 훨씬 정비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둘러보는 데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작은 규모는 여전히 아쉽다. 500년 가까이 한강 일대를 지배한 한성백제의 왕실 묘역이 이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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