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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뒷면/원장님의교육이야기

지리 때문에 미치겠다

by hwawoon 2018. 7. 16.








지리 때문에 미치겠다

    


 


<1909년 일본이 한국 호남 지역의 의병을 대대적으로 토벌하였다. 이 작전으로 국내의 의병운동이 크게 위축되었었다. 이 작전의 명칭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느 고등학교 1학년의 중간고사 한국사 문제이며(주관식 단답형), 답은 <남한대토벌>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쓴 답은 <만주대토벌>이었다.

 

답을 왜 이렇게 썼어?”

대토벌은 알겠는데 앞 부분이 생각이 안나서요.”

만주대토벌이라고 했어?”

의병들은 만주에서 많이 싸웠잖아요.”

문제에 호남 지역 이라고 나와 있잖아!”

,호남이 어디예요?”

뭐라고!”

    




(사진출처 : KBS 무자식 상팔자)

 

   이 대화는 절대 지어낸 것이 아니다.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어느 고등학생과 실제로 나눴던 대화다. 중간고사 문제 풀이를 하다가 뒷목 잡고 쓰러질 뻔 했다. 어떻게 고등학생이 호남이 어디인줄 모를 수 있을까? 더욱이 그 학생은 성적이 낮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 중 3 학생은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의 무역을 설명하기 전에 대서양과 태평양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찾아가며 알려줘야 했다. 덕분에 30분이나 수업을 더 했다. 공부 많이 시켰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던 그 아이의 어머니의 자녀의 상태를 알면 절대 웃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수업은 시험 특강이라 길게 이야기할 수 없어 기초가 부족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나는 여러 번 뒷목을 잡았다. 영호남이 어디인지 모르는 학생은 부기지수였고, 영국이 지중해에 있는 줄 알았다는 학생, 백지도에 지명을 적어보라고 하면 태평양과 인도양에 동해와 서해라고 쓰는 학생.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고등학생들의 지리 실력은 정말 처참했다.

 

   정말 지리 때문에 미치겠다.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해도 지리 때문에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졌다. 시험에 지도나 지리지식이 필요한 문제가 나오면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학생이 운이 좋아 찍은 것이 맞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가 안 나오길 비는 수 밖에 없다. 사회계열 과목은 지리만 잘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반대로, 지리를 못하면 반은 포기해야 한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기본적인 지리 지식을 테스트 한다. 별 것은 아니다. 지명이 없는 대한민국 지도와 세계지도를 주고 제 위치에 지명을 써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특별시와 광역기, (), 오대양 육대주 등. 테스트 결과는 대부분 처참하다. 테스트를 보여주면 당연히 학부모는 놀라기는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자녀의 기초적인 사회 지식이 부족해서 1, 2개월짜리 단기 특강은 효과가 없으니 조금 길게 보고 차근차근 공부할 것을 권하곤 한다. 수업을 진행하며(주로 한국사) 지리 지식을 익힐 수 있도록 틈틈이 연습을 시키겠다고 말하고, 내가 아니라 다른 학원이나 과외를 하더라고 이것을 꼭 익혀야 하니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말해도 반응은 거의 똑같다.

   “국영수 할 시간도 빠듯하니 한 두달 안에 끝내주세요.”

   한숨이 나온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고학년이 되면 손댈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시간도 없고, 나도 가르칠 재간이 없어 그냥 돌려보낸 적도 꽤 많다.

 

   사회에서의 지리의 위치는 수학에 비교하자면 도형과 비슷하다. 초등학교 3~4학년에 처음 배우는 도형(고교 교과과정에는 기하라는 과목으로 독립했다)이 수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도형을 모르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도형 문제가 시험에 안 나오기를 빌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학부모들은 자녀가 삼각형 넓이를 못 구한다고 하면 기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충청북도나 경상남도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왜 별로 놀라지 않을까?

 

   학생들의 실력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교육 환경의 변화에 따른 구조적 문제도 있을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의 가치관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나? 나는 그냥 일개 과외 선생인 것을. 그저 나와 만나는 학생들만이라도 좀 나아졌으면 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지리 때문에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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