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왜 사냐고 좀 묻지마라
어느날 인문학 강의를 보다가 화가 왈칵 나서 TV를 꺼 버렸다. 강의가 재미없어서가 아니었다. 강사는 예능에도 종종 얼굴을 내미는 유머 넘치는 사람이었고 강의는 꽤 재미있었다. 그러나, 강사가 “왜 사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짜증이 났다.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TV 인문학 강의(사진출처 : SBS)
인문학 강의를 좋아해서 새벽 3~4시에 하는 강의도 챙겨 보았다. 강사는 철학자, 저명한 교수, 여러 분야의 석학들이다.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이라 언변은 청산유수다. 혀에 날개라고 달린 것 같다. 청중들은 은혜 받은 신도 같은 표정으로 강사를 우러러본다.
나도 처음에는 그들의 달변에 감탄하며 TV를 보았다. 그러나, 꽃노래도 한 두번이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강의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언제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인간성 회복, 가치 있는 삶,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앉아있는 사람들은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찾으려고 머리를 굴리고 눈치를 본다. 어쩌다 용감한(?) 사람이 좀 엉뚱한 대답이라도 하면 훈계하듯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왜 사느냐?”고 물어대는 인문학자들의 클리셰를 듣다보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맨날 왜 사냐고 묻는데 왜 사는지 고민해 보고 이유가 없으면 죽기라도 해야 하나? 강단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그들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이 없으면 삶을 끝내기라고 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TV 속 학자들이 염세주의 철학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자살로 이끌고 정작 본인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았던 쇼펜하우어처럼 보였다(19세기에 72세까지 살았으니 엄청 장수한 것이다).
TV를 꺼버린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인문학 강의를 보지 않았다. 강의하는 사람만 달랐지 오십보 백보인 강의를 몇 년씩이나 들었으면 충분했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사진출처 : SBS)
그러다가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의 대사에 무릎을 쳤다.
사는데, 왜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거냐?
살아야 할 이유는 없어도 아침에 눈 떴으니 살고, 숨 쉬니깐 살고
왜, 사는데 의미가 없는 놈은 살면 안돼?
이렇게 사는 게 쪽팔린 거면 난 지금 쪽팔린 건데, 그래도 말이다 희선아, 나 살아있으깐 살고 싶다.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2회-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사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람도 태어났으니 살고 목숨이 붙어 있으니 산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답이 있다 해도 그것은 세상의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사실(Fact)”은 하나이지만 “진실(Truth)”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처럼.
왜 사냐고 묻지 좀 마라. 이왕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좀 괜찮게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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