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배달 문화는 악습이다
몇 주전, <나혼자 산다(MBC)>에 출연중인 프랑스 청년 파비앙이 한국으로 여행 온 친구들(프랑스인)과 한강 나들이를 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이 프랑스 청년은 친구들은 한강으로 데려가 짜장면과 탕수육 등을 배달시켜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비앙의 친구들은 한강까지 배달되는 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파비앙은 한국의 배달문화를 극찬하며 한국 자랑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한국은 사랑하는 이국(異國) 청년은 참으로 훈훈했지만 한국의 배달 문화는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조금 씁쓸했다.
“나혼자 산다”의 한 장면
파비앙이 친국들과 한강에서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있다
한국의 배달 음식을 접하고 문화 충격을 받는 것은 파비앙의 친구들 뿐이 아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인터넷에도 한국의 배달 문화를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자국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외국인의 글은 적지 않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국과 같은 배달은 꿈도 꿀 수 없다.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또한, 오토바이나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도 필수이다. 배달음식은 음식값에 인건비, 각종 부대비용이 더해져 비쌀 수 밖에 없다. 테이크 아웃과 같은 값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배달 음식을 즐길 수 있으니, 한국의 배달 문화가 신기하고 부럽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그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배달문화의 이면은 아름답지 못하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음식점이 많아 경쟁은 치열하고 배달음식점도 많은데다가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인권 수준은 구미 국가에 훨씬 못 미친다. 배달음식점은 대부분 규모가 작고 영세하며 맛이나 품질보다는 싼 값으로 승부를 걸기 때문에 단가 낮추기에 골몰한다. 재료값은 이집이나 저집이나 고만고만하니 인건비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핵심이다.
30분 배달 보증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2011년)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은 “30분 배달 보증제” 폐지를 이끌어내었다
사장의 고민은 고스란히 배달원에게 전가되어 대다수의 배달원들의 형편없이 낮은 급료를 받으며 신속하고 빠른 배달은 강요받는다. 이러한 사정은 영세한 작은 식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도 큰 차이가 없다. 2011년 “30분 배달 보증제”를 지키려다 사망한 도미노 피자의 배달원의 죽음을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던지며 “30분 배달 보증제” 폐지를 이끌어 내었지만 배달원들의 처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의 배달원들의 현실은 집약적으로
보여준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한 장면
현실에서 김하늘과 같은 담임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거의 없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2012년, SBS)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한 학생에게 가게 사장은 “병원비도 못내고, 오토바이 수리비도 월급에서 제하겠다”고 화를 내는 장면은 한국 배달 문화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배달원의 대다수는 10대에서 20대 정도의 젊은이들이고 상당수가 미성년자이다. 이들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안전교육은 꿈도 못 꾼는 것이 현실이다. 드라마에서는 담임 김하늘이 사장에게 청소년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따지며 병원비를 해결해 주었지만, 현실에서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배달 앱은
한국 배달 시장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다
화제를 모은 배달앱 광고
파비앙과 친구들이 한강에서 먹은 짜장면은 배달원들의 낮음 임금과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운전 덕분이다. 부러운 것도 부러워해서도 안되는 것이며, 다른 나라로 확산되어서도 안 될 악습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러한 배달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장 비싸야 할 “사람값”이 여전히 싸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나혼자 산다' 파비앙, 한강서 음식 시키며 '배달문화' 자랑(스포츠월드, 2014년 5월 17일)
도미노피자 '30분 배달제' 전격 폐지배달 경쟁에 사고 잇달아 발생해 폐지 결정(이지경제, 2011년 2월 21일)
‘신사’ 김하늘 같은 선생님 어디 없나요?(뉴센, 2012년 7월 1일)
'배달의민족', TV 광고까지…류승룡 전속모델 계약(한국경제, 2014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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